장편소설 빛의 여정 20화 / 2장 (우연인가 운명인가)
장편소설 빛의 여정 20화 / 2장(우연인가 운명인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지 지켜봤던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 앞에 놓인 돌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과도할 정도로 많이 담아 가면서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적당히 쉬엄쉬엄하려 꼼수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선별을 받기 위해 3개 조로 나누어진 사제들 앞에서 3개의 대기줄이 있었고 47명의 사람들은 계속 주워 담고 가져와 선별 받기를 반복했다. 신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만신전의 바닥에는 사방팔방 부서지고 내려 앉은 지붕과 허물어진 벽에서 튀어 나온 돌들이 가득했다. 무릎을 꿇고 돌을 주워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영원한 추위가 오기 전의 호밀을 추수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로이딘도 주저 앉거나 무릎을 꿇어 쌓여진 돌들을 하나하나 담으며 허물고 있었다. 잡은 돌들의 외관을 보아하니 특이할 게 전혀 없어 보였다. 만신전의 벽과 기둥 색과 똑같은 모난 돌들이었을 뿐이다. 도대체 무슨 수작이길래 다 똑같아 보이는 돌들을 어느 것은 가지고 어느 것은 버리도록 시키는 걸까? 주저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니 살짝 빈혈이 찾아오는 것 같았고 힘이 빠져나갔다. 돌을 채워 가져간 로이딘도 사제 앞에서 똑같이 선별을 받고 나서 나머지 돌들은 치우러 나갔다.
입구와 벽에는 거리를 두고 호위병들이 서 있었고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터 한켠에 돌을 버리는 장소에도 호위병이 서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들도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도무지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뿌린 채 버려지는 돌들만을 멍 때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밟고 있는 이 땅이 크리네스, 이제는 로이딘의 고향땅이나 다름없었지만 타지로 잡혀와서 노역을 하고 있는 느낌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다시 들어간 만신전 내부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돌을 담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뒤 섞인 채 열띤 노동현장이 되어 있었다. 로이딘은 들어오면서 뒤섞인 채로 일하는 사람들 중 루네의 모습을 보았고 그 쪽으로 자연스레 진입해 몸을 숙였다. 루네는 놀라지도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돌을 줍고 담았다. 하지만 로이딘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 만이네"
자신에게 한 소리가 맞는 지 잠깐 머뭇거리던 로이딘이 대답했다.
"그래 안녕,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루네는 말 없이 팔을 쭉 뻗어 돌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바닥에 깔은 가죽에 돌을 쌓았다.
"시테온을 만났어. 내가 왠지 이곳으로 올 것 같다는 말을 하니까 불씨 운반자가 말했던 돌 줍는 일이란 표현을 가지고 신전을 허물거라 예상했던 모양이야"
"그럴 만도 하지 지금 신전 안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도 불경한 거야"
"여튼 아무 탈이 없었으면 좋겠어. 내일이면 나가려나?"
로이딘은 궁금했다.
"뭐가 되었든 후딱 끝내고 빨리 돌아가고 싶어"
루네도 동의하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모은 돌을 든 채 선별 받으러 사제들에게 향했다.
"아무튼 혹시 모르니 촉각을 곤두세우도록 해, 이게 뭐하는 건지도 모르는 거잖아"
루네는 로이딘에게 말을 던지고 갈 길을 갔다.
시테온도 신전 구석에서 돌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 루네 곁으로 온 로이딘은 눈치가 보여 앉은 자리에서 일단 돌을 주어 담아야만 했다. 담고 옮기는 일이 생각보다 버거웠다. 얼마만큼 담아 가져오라는 말은 없었지만, 돌 하나하나가 조약돌이 아닌 이상에서야 무너진 지붕에서 떨어진 조각들은 대 여섯개만 담아 왕복하면 팔이 뻐근하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돌을 잡으니 굳은 살 없는 이들은 손이 얼얼하기까지 했다.
다시 돌을 버리고 들어온 로이딘은 이제 시테온이 있는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은 무너진 내린 지붕에서 비켜나 시야를 가리지 않았고 안쪽으로 신상들이 보이는 위치였다.
다시 몸을 숙여 인기척으로 인사를 하는 로이딘을 향해 시테온이 짧은 인사와 함께 작업을 이어나가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다만 결코 시선을 안쪽에 위치한 신상으로 향하지는 않은 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사람들이 있는 입구와 사제들, 바닥으로만 두었다.
"어릴 때 돌 던지기 빼고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주워 담는 건 오랜만이야"
"그러게, 단체로 소꿉장난을 하러 온 거 같아. 근데 넌 왜 구석까지 와서 주워? 가운데도 널리고 널렸는 데"
로이딘은 물었다.
"자 봐바"
시테온이 돌을 줍는 척 하면서 살짝 바닥에서 돌을 든 채 신상쪽을 가르키고 담았다.
"신상들이 안 쪽에 있어, 지금은 무너져 내린 유적지나 다름없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 신전을 이루는 재료들을 없애고 가지고 가려하잖아. 그리고 아보와 피데라가 우리 작업을 응시하고 있어"
로이딘은 시테온이 저번에 했던 표현을 다시 할까봐 물었다.
"그래서 불경하다고?"
시테온은 문득 고개를 들고 다시 로이딘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직감이라는 게 있지,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
21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