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22화 / 2장(우연인가 운명인가)
장편소설 빛의 여정 22화 / 2장(우연인가 운명인가)
네이즈의 외침과 부름에 모든 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시테온과 루네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무슨 일인가 싶어 로이딘을 바라보았고 로이딘은 머리가 하얘져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몰랐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건지 뛰어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감각없이 네이즈의 앞으로 걸어갔다. 네이즈는 로이딘이 자기 쪽으로 오자 손에 쥔 조각과 로이딘을 번갈아 확인하고 있었다. 조각은 로이딘이 다가올 수록 빛을 점점 강렬하게 뿜어내는 중이었다. 데센과 7명의 사제들도 자기들 앞에 돌을 가져 와 선별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로이딘이 걷고 있는 것과 네이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로이딘이 앞으로 걸어 오자 험상궃던 네이즈의 표정이 오히려 다시 환해지며 웃기 일보 직전처럼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 때문에 로이딘은 더더욱 소름 끼쳤고 두려웠다. 걸음을 멈추고 네이즈 앞에 선 로이딘은 땀이 흘러 내렸다. 돌을 주우느라 흘린 땀인지 지금의 상황으로 식은 땀이 느껴지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네이즈가 마침내 멈춘 그에게 한 발 더 다가서며 말했다.
"아, 숭고하도다 참된 신민이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잠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마른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로이딘.. 로이딘입니다"
"로이딘? 아 그래.. 여기까지 와서 함께하니 고생이 많소. 그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고향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아보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임을 알고 있소?"
"그렇습니다"
전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네이즈는 만족스러운 대답인지 더욱 어깨를 피고 몸을 세워 로이딘에게 불씨 운반자로써의 위엄을 뽐내려하는 듯 했다. 가까이 서 네이즈를 본 로이딘은 그가 자기 또래임을 알아챘다.
"그래, 로이딘?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를 알고 있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는 로이딘을 기다리지 않고 네이즈가 자문자답을 했다.
"아냐 됐어. 내가 설명해주지. 자네는 방금 이그네움을 발견 한 거야. 그것도 보통의 이그네움이 아닌거지"
보통의 이그네움이 아니다? 로이딘이 찾을 땐 전혀 고체기름의 이그네움같지 않아 보였지만 네이즈는 로이딘이 찾은 수정이 이그네움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네이즈는 손을 내밀었다.
"자 그것을 이리 내놓게. 자네의 공로는 일이 끝나고 크게 치하해주겠네"
로이딘의 하얀 머릿속에, 아무런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마치 숨겨진 자의식이 외치는 것만 같았다.
"절대로 그걸 넘겨선 안돼, 하지만 이게 뭐라고? 조각을 준다고 뭐가 달라지나 방금 본 글씨? 그냥 꺼내라고만 하지 않았나?" 온갖 잡생각과 계산, 그리고 넘겨줄지 말지에 망설임의 시간이 길어졌다.
네이즈는 로이딘에게 한 번 더 재촉했다.
"뭐하고 있나? 숨겨서 가져가기라도 하려했던 모양인가? 넘기게.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야"
망설임이 길어지자 호위대장이 네이즈 옆으로 다가와 큰 덩치로 압박하는 듯 했다. 호위병 몇 명도 로이딘 근처로 와서 혹시 모를 소란에 대비하고 있었다. 로이딘은 결정했다. 문득 뭔지 모르지만 이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그는 허리에 매달린 자기의 주머니를 열었다. 빛이 나는 조각을 두 손가락으로 꺼냈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 손으로 꼭 쥔 채 팔을 뻗으려 할 때였다. 네이즈가 들고 있던 조각이 더 강하게 빛나고 동시에 로이딘이 들고 있던 조각도 똑같이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로이딘은 눈이 부셔 네이즈 어깨 너머 뒤를 보게 되었다. 거긴 네이즈가 방금 전만 해도 기댔던 벽이었고 벽면엔 돌바닥에서 본 글씨가 환히 빛난 채 다시 나타났다.
"눈을 감아라 당장! 내 너를 인도하리라"
글귀를 보자마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로이딘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각자 들고 있던 조각에서 순식간에 한번도 보지 못한, 온 세상을 덮어 버릴 만큼, 하얀 빛이 조각에서 터져 나와 가득 채워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맹렬한 빛으로 비명을 질렀다. 두 눈을 감았던 로이딘도 눈꺼풀 너머로 빛의 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악! 내 눈!"
네이즈의 비명이 로이딘의 바로 앞에서 생생히 들려왔다. 사방에서 자신의 눈을 외치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호소하고 있었다. 로이딘은 질끈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로이딘만이 제대로 서 있는 채, 사람들은 손으로 두 눈을 부여 잡으며 괴로워하고 소리를 질러대거나 땅을 뒹굴었다. 덩치를 자랑하던 호위대장도 이름 값도 못하고 바닥에서 뒹굴며 눈을 연신 비비고 있었다. 로이딘은 갑자기 시테온과 루네가 걱정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로이딘은 보자마자 달려가서 가장 먼저 앞에 있던 루네를 먼저 살폈다. 그가 루네의 팔을 붙잡고 흔들려 하자 드러눕고 두손으로 눈을 붙잡던 그녀가 갑자기 씻은 듯이 얼굴이 펴졌다.
"뭐야, 로..로이딘?"
"괜찮아? 잠깐만 시테온도.."
그는 시테온에게도 달려가 그를 붙잡고 이름을 외쳤다. 마찬가지로 시테온도 정신이 차려지고 눈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테온은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그러면서 놀라움이 담긴 욕을 해댔다.
"이런 빌어먹고 망할 젠장, 일이 터져버렸구나!"
로이딘은 시테온의 직감에 대해 다시 한번 믿게 되었다. 시테온도 자신의 직감이 들어 맞음을 깨달았다. 로이딘 본인도 지금의 상황을 어떡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으나 다시 일어서 네이즈쪽을 바라보니 벽에 다른 문장이 환하게 쓰여 있었다.
"너의 조각과 네이즈가 가진 조각 모두 챙겨서 서둘러 나가라. 곧 사람들의 눈이 회복될 것이다. 여길 나가자 마자 매여진 말을 타고 크리네스를 벗어나라 당장. 내가 계속 너희를 인도하리라"
로이딘은 피데라의 글귀를 읽고 시테온과 루네에게도 당장 나가야 한다며 타일렀다. 그러자 시테온이 놀라며 대답하길
"세상에나 이 사람들 좀 봐바. 로이딘? 아니다 일단 뭐? 그래 나가야겠지"
"그런데 이렇게 가는 게 맞아? 그냥 끝날 일이 아니었어? 이러면 우리 못 돌아간다고!"
루네가 도망치는 것을 망설여하자 로이딘은 말했다.
"조각을 가지고 있는 이상 어떻게 될지 몰라, 넘겨주려 했어도 이미 일은 터져버렸다고. 일단 가면서 설명할 게" 루네는 난감해하다가 일단은 마음을 묻은 채로 시테온과 함께 로이딘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눈을 부여잡으며 소리를 계속 외치고 있었고 네이즈는 사방을 기어다니며 누워있는 사람을 만지다가 호위대장의 큰 덩치를 붙잡았다가 홧김에 밀어내며 로이딘이 없음을 알자 그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어디있느냐? 돌아와라 어서! 이 망할 반드시 네놈을 찾아내서 심판하리라!"
자기 바로 앞에 떨어진 조각도 회수하지 못하는 네이즈를 내버려두고 로이딘은 네이즈가 가지고 있던 조각을 주웠다. 곧장 시테온과 루네와 함께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들은 입구에 매어놓은 말 세 마리의 고삐를 풀고나서 각각 탄 채로 만신전 밖으로 달려 나가기 직전, 서로 짧게 대화를 나누더니 다른 말들의 고삐도 부여잡은 채 함께 달렸다. 혹시나 말을 타고 쫓아 올지 몰라 다른 말들도 데리고 가기로 했던 것이다.
밖에 서 있던 호위병들도 안쪽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통을 열고 염장대구를 정리하던 호위병도 들고 있던 대구를 내던지고 눈을 만졌다. 하지만 소금을 만지던 자신의 손 때문에 배로 고통 받고 있었다. 눈이 멀어버린 만신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뒤로한 채 로이딘 일행은 북쪽으로 내달렸다.
23화에서 계속... 2장 끝.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