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9화 / 2장 (우연인가 운명인가)
장편소설 빛의 여정 19화 / 2장 (우연인가 운명인가)
호위대장이 데센의 뒤를 따라 만신전 안으로 들어갔을 무렵, 로이딘은 생각을 정리했다. 돌 캐는 채석장이라고 하기엔 이치에 맞지 않은 장소에 도착했고, 만약 신상들과 함께 만신전을 부수는 작업이라면 크리네스 사람들이 신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을 스스로 손을 더럽히며 파괴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연 순순히 사람들이 명령을 따르게 될 까? 소요사태가 일어날 까 걱정 되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만신전 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대체 무엇을 한다는 것일까? 여러 시나리오를 떠올려 보았지만 네이즈나 누군가가 나와서 자신들을 향해 무엇을 시키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공터 앞 만신전은 가까이에서 보면 이런 황무지에서 보기 힘든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멀리서 다른 마음을 품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지붕이 날아가 안을 보게되는, 얼음에 묻히고 갈라진 땅과 지붕 돌더미에 묻힌 유적지에 흥밋거리가 없어 그냥 지나치도록 위장한 듯 보였다. 돌을 깎아 기둥을 세우고 돌을 쌓아 벽을 세운 정성어린 건물에는 이제는 사람의 발길이 끊겨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자연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 까? 로이딘도 잠시 시선을 거두고 모닥불을 함께 쓰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네이즈가 안에서 나왔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고정되자, 로이딘도 알아차리고 바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네이즈가 사람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호위대장도 덩달아 나오더니 부대장 한 명을 불렀다. 사람들의 잡담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모두가 말이 멈추고 적막이 생길 때쯤, 네이즈는 자신의 목소리를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의 자주색 스톨과 바지 무릎 부분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자, 우린 도착지에 왔소. 본격적으로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지 알려드리겠소."
네이즈의 발표에 68명의 시선이 네이즈 한 사람에게만 고정되었다. 부대장과 호위대장은 입구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이즈는 살짝 상체를 돌면서 왼손으로 만신전을 가르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신전을 지금부터 들어가면 바닥엔 흩어진 주먹만한 돌들이나 돌 파편들이 널려 있을 것이오. 여러분은 신전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돌덩이 하나하나 모아 그것들을 가져와서 선별 받아야하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며 바닥이 깨끗해지면 그제서야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이오"
네이즈가 말을 마치자 로이딘은 조금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고작? 진짜 돌만 줍는 일이야, 청소하는 거야?"
시테온이 언급한 불경한 짓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부수지는 않지만 부숴진 것들을 주워 담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의 "돌 줍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다만 교단 사람들과 네이즈는 타지의 폐허까지 사람들을 끌고와서 사방팔방 떨어져있는 돌을 왜 주우라는 건지 알수 없었다.
아침의 해는 하늘을 향해 떠오른 지 오래였고, 잠시 후 모든 사람이 들어간 만신전 내부는 입구에서 보는 것보다 안쪽의 공간이 훨씬 컸다. 밖에 경비를 보는 몇 명의 호위병 외에는 모든 이가 실내에 들어왔으나 여전히 넓었다. 바닥은 돌조각들로 헤집어져 있었다. 또한 돌바닥엔 파여진 구덩이가 있었고 옆에는 흙과 부산물이 함께 쌓여있었다. 지붕에 떨어져 나와 바닥에 나뒹구는 돌 조각도 예외는 없는 것 같았다. 네이즈가 내부로 들어오는 중에 큰 돌덩이들은 무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신경써서 채집할 돌은 주먹만한 짜잘짜잘한 돌들이었다. 입구 맞은 편에 신들의 석상이 서 있는 방향으로 만신전 돌 의자에 8명의 사제들이 3개씩 나눠 앉았다. 지금부터 돌들을 채집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며 가져온 돌들을 선별하기 위함이었다. 네이즈는 벽에 기댄 채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신전 안으로 들어갈 때 호위병들이 야영할 때 사용한 가죽이나 저질 천을 마차에서 꺼내 사람 인원수대로 잘라서 한 사람씩 나눠 주었다. 돌덩이를 모아 담으라는 용도였다.
행과 열을 유지한 채 4명씩 묶였던 조들은 해체되었다. 각자 이리저리 쌓이고 흩어진 돌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금새 손이 빠른 누군가는 들 수 있을 만큼 돌을 채우고 사제들의 앞에 가져다 내었다. 사람들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슬금슬금 곁눈 질을 했다. 앉아있던 사제 3명이 주어온 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유심히 살피는 사제 앞에 주어온 사람은 내심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제는 돌을 하늘로 들어올려보면서 누가봐도 굴러다니는 돌임에도 마치 보석을 감별하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살폈다.
그러다 사제 중 한 명이 자기네 뒤쪽으로 깔린 자루에 몸을 돌리며 돌 중 어느 것은 넣었고 어느 것은 다시 앞으로 내던졌다. 반복된 행동을 하고나니 가져온 사람 앞에 아무렇게나 던져 되돌아온 돌들이 훨씬 많았고 원래 있던 양보다 크게 줄어들 지 않았다. 선별을 마친 사제 중 한 명이 말했다.
"앞에 있는 돌은 밖에 나가 치우고 와라, 그리고 돌아와서 계속 담고 확인받도록"
가져온 사람은 기분이 나빴다. 앞에 있는 사제들이 몇 개는 자기들 뒤로 빼고 나머지는 아직 확인받지 않은 돌들을 피해 자기 주변으로 아무렇게나 던지며 어지럽힌게 모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이 주변에 던져진 돌을 다시 회수해 모아서 밖으로 버리러 나갔다. 그걸 지켜본 로이딘 옆에 어떤 사람은 농담을 던졌다.
"무슨 감자 사러 온 인간들처럼 보이네"
20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