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7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17화 / 2장 (우연인가 운명인가)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7화 / 2장 (우연인가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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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아보의 사제들은 크리네스의 만신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7,8미터 정도 되어보이는 돌 기둥들에 에워 싸여진 신전은 사람들의 기억에 묻히고 영원한 추위와 함께 눈과 얼음에 묻혀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언덕에서 아래 평지로 내려가는 위치라 그런지 지하에 숨겨진 유적지와 같아 보였다. 만신전의 지붕은 파괴되어 있었다. 그 여파로 안에 있던 석상들과 비석들이 돌더미에 묻혀져 온전한 확인이 어려웠다. 열려있는 하늘에서 진눈깨비들이 흩날리며 기둥과 남아있는 석상, 벽에 쓰여진 문구들에 달라붙고 녹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도착한 사제들이 만신전에 들어와 기둥 만큼 높은 석상들을 살펴보았다. 흠없이 깎인 신들의 석상(이하 신상)은 만든 이의 피와 땀이 서려 있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크리네스의 여러 부족들이 숭배하는 신상들이 돌더미에 묻혀져 있어 온전한 신상은 몇 없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신상들은 변함없이 눈을 뜨고 아래에 오랜만에 찾아온 순례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제들은 저 멀리 디고에서 온 만큼 아보와는 또 다른 낯선 이교의 신들을 구경했다. 파괴된 신상들을 어느정도 연구자의 자세로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그들은 무언가 우월감에 취해 마치 아보가 심판했다고 믿는 듯 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힘없는 신들의 석상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각자 하나씩, 담당하는 신에 대해 이리저리 살폈다. 만신전에는 8개의 신상이 놓여져 있었고 그중 2개의 신상만이 온전한 채로 서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아보, 석상 하단엔 "대자연의 정령, 질서와 심판의 아버지"라고 적혀있었다. 첫 방문한 사제들은 그에게 절하며 나머지 신상들을 뒤로 한 채 기도했다. 그리고 탐탁치 않은 이교의 남은 신상 하나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석상에 적힌 그의 이름은 피데라. "하늘의 광명, 영광의 아버지". 피데라의 신상은 저 높이 빛을 뿜는 지팡이를 오른 손으로 들고서는 왼 손으로 대지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느 다른 남성 신들과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머리 뒤에는 후광이 섬세히 조각되어 있었다. 뻗친 후광의 작은 빛 줄기 조각들이 지붕이 내려앉았던 난리통에도 부수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사제들의 눈에는 아니꼬와 보였다.


담당한 사제외에는 피데라에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만신전 안에 있는 글귀들이나 도움이 될 만 한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있었다. 대게 아보의 문구에는 미소를 띄고는 눈을 감은 채 기도를 올렸지만 부수어진 석판이나 벽에 쓰여진 문구가 다른 신의 것이라고 하면 금새 훑고 지나갔다. 이들은 네이즈가 크리네스로 출발할 무렵, 거의 동시에 순례자의 쉼터에 위치한 이곳 만신전으로 향했다. 사제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즈가 끌고온 이들에게 만신전 안에서 무엇을 해야할 지 알려줄 것이다.


한편, 네이즈가 이끄는 무리는 다시 점심을 지나 오후 내내 걷고 또 걸었다. 무리 중 따분함에 정신을 놓은 채 하품을 대놓고 크게하는 사람이 있다가 뒤늦게 눈치를 챙긴 모양인지 그 이후엔 조용해 졌다. 네이즈는 뒤쪽의 무리가 뭐라 떠들든 상관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갔다. 눈에 띄게 전날과 오늘 다들 걷는 모양새가 달라보였다. 뭔가 몸에 무리가 생긴 사람도 보여 잠시 그 사람만 따로 이탈시켜 뒤에서 걷게 하는 등, 너무 급히 출발한 댓가가 보이지 않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다들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정확히 따지면 내일 정오 쯤에 도착할 목적지만을 바라보면서 꿋꿋이 걷고 있었다.


진눈깨비가 흩날렸으며 창공은 희뿌옇고 바람은 매서웠다. 옷으로 잠시 뺨까지 가려가며 추위를 이겨내며 또 시야를 가리는 진눈깨비를 팔로 눈 앞을 가려가며 걸었다. 어째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날씨가 더 심각해지는 것 같았다. 네이즈는 문득 그런 상황이 신이 용납하지 않는 게 아닐까?란 의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은 아보의 뜻이고 여기는 이교도의 영토였다. 그래서 오히려 그가 신의 뜻을 왜곡하고 있음으로 결론지으며 마음을 달랬다. 옆에서 안장을 탄 채 미동도 않는 호위대장의 거친 피부에 눈이 닿든지 말든지, 바람이 오든지 말든지 호위대장은 별 상관없어 보였다. 다만 눈가는 조금 충혈되어 피곤 해 보인듯 했다.


그렇게 또 얼마를 갔을 까? 이번에는 사방팔방 확인한 뒤에야 머물러도 좋을 것 같다는 호위대장의 의견을 듣고서야 쉬게 된 네이즈와 일행은 어느 동굴에서 눈과 바람을 피했다. 71명이 들어갈 정도로 큰 동굴은 아니어서 운이 좋지 못한 호위병과 몇 몇 사람들은 입구에서 자야만 했다. 해가 금방 졌고 눈바람이 더욱 더 거세졌다. 입구와 말을 매어놓은 주위에는 이그네움을 지폈고 더 맹렬히 타게 만들었다. 동굴 안쪽에 있던 로이딘은 어젯밤과 같은 동료와 함께 하루종일 걷고 또 걷다가 오늘 또 다시 눈을 붙였다. 내일 오전 중으로 도착할 그곳이 만신전이라는 소릴 들은 로이딘은 시테온이 덧붙인 불경함이 혹시 만신전을 곡괭이로 부술 생각인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무너져 내리고 반쯤 옛날 사람들의 기억으로 잊혀진 유적과도 같은 신전을 곡괭이로 찍어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란 생각도 들었다. 앞에서 끌고가는 불씨 운반자인 네이즈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그러다가 마음을 접고 머리 굴려봤자 어차피 내일이면 알게되겠지란 생각을 한 채 눈을 감았다. 오늘은 말 많던 동료들도 날씨가 좋지 못한 날의 행군으로 지친 모양인지 금새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아니면 거센 눈바람의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18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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