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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용병은 필요없다? 3부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821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팔백 이십 일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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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글은 중세시대 용병의 사례 중 바랑기안 친위대에 대해 서술하다 도중에 끝마쳤다. 계속 이어 가보도록 하자. 1122년에 벌어진 베로이아 전투는 그간 페체네그와 매번 싸웠으나 끝장을 내지 못했던 동로마 제국에서 황제가 작정하고 직접 출정한 전투였지만 반대로 굉장히 위험했다. 황제가 생포되거나 전사라도 한다면? 당시 황제였던 요안니스는 전투가 지지부진하자 친히 바랑기안 친위대 천 여명 정도를 이끌고 정면 돌격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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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대의 특징은 말을 타고 이동은 하지만 말에서 내려 양손으로 잡는 장대도끼를 들고 달려가 적들을 박살내버렸는데 페체네그가 당연히 바보가 아닌지라 친위대 돌격을 막으려고 그들에게 화살을 퍼부어댔다. 또한 친위대가 나타났다는 건? 황제가 나타났다! 어떻게든 돌격을 막으려 하고 반격을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친위대의 사슬갑옷이 매우 두꺼워 화살이 쉽게 박히지 않았고 친위대가 도착한 방어진지는 말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도끼로 페체네그가 옮기기 힘들어 할까 봐 친절하게(?) 수레를 직접 부수어주면서 방어진지를 뚫어버렸다. 동시에 그 안에 있던 페체네그 부족민들은 도륙이 났고 전장의 궁기병들은 진지에서 화살을 계속 수급받았으나 더 이상 어려워지자 최후의 발악을 해야했다. 바랑기안 친위대는 전투가 끝나기까지 활약하면서 승리를 거머 쥐었고 이 전투로 페체네그 부족 전체가 멸망 또는 흡수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아무튼 이런 바랑기안 친위대의 취업 성공은 당시 척박한 북쪽 땅의 바랑인들에게는 그들의 사가(기록)에 오를 정도로 슈퍼스타 혹은 성공한 사나이들로 알려졌다. 이들은 계약 완수 후 고향으로 금의환향했고 평생 떵떵거리며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면 돌아와서, 마키아벨리의 용병 무용론은 어쩌면 이러한 사례들과 결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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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용병이나 바랑기안 친위대들은 모두 용병의 성공사례이지만 반대로 이탈리아의 용병같은 경우 배신과 질 나쁜 성적만 가져다 주었다. 헌데 이는 용병 시스템 자체의 문제보단 환경의 문제가 컸다. 성공사례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어 잘 나갔던 것이고 바랑기안 친위대 같은 경우 황제가 아니면 이들은 제국 내 먹고 살 길이 없는 체류 외국인인 동시에 잠재적인 정적들에게 제대로 찍혀 있어 황제에게만 충성해야 했다. 반면 이탈리아는 너도 나도 아쉬우면 다른 곳으로 고용되면 그만인 오로지 돈의 논리로만, 부차적인 장치 없이 움직이는 용병들이라 질적인 하락이 이어졌다.


당시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공화정의 자국군을 만든다해도 크게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단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근현대에 들어오면서 애국심 그리고 나라의 개념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그때는 15~16세기다.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은 가족 혹은 마을(도시), 신과 군주에게만 충성이란 개념이 유효했지, 내가 보지 못한 어떤 이들과 내가 같은 한 국가의 일원이라는 애국심은 희박했다. 또한 그가 언급하는 롤모델인 로마제국과 시민국가였던 그리스도 때마다 용병을 상시 애용했다. 직업 군인, 상비군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원이 소비되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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