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통해 배우게 된 것 7.
난소암 의심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가 전해졌다. 심지어 건너건너 이야기를 듣고 몇 년 만에 연락을 준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평소에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그러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하면 뭉치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다. (웃음)
친정과 시댁의 식구들, 친구, 선배, 후배, 비즈니스 파트너, 심지어는 우리 엄마 친구, 우리 남편 친구의 와이프까지 별의별 관계로 엮인 다양한 인연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응원해줬다. 그리고 그들 중 그 누구도 요즘 암은,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래라는 위로를 한 사람이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너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겠느냐, 그 마음을 차마 헤아릴 수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잘될 거다. 너는 김진희니까 그렇게 정해져있다.'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 한결 같이 나를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가운데, 희안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우리 남편의 멘탈을 제일 걱정해준 부분이 나를 웃게 만들어줬다.
특히 가족들이 정말 모두 꽁꽁 뭉쳐서 나를 지켜주려고 했다. 이렇게까지 보호 받는 기분을 불혹의 나이를 넘어 느꼈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내 동생, 우리 아가씨, 친척 어른들은 물론, 사는게 바빠서 연락을 자주하지 못했던 사촌들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나를 보러 우리집에 찾아왔다. 어렸을 때 내가 좋아한 간식을 사들고 말이다.
수술 전에 다들 살도 빠지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살이 쪘다. 안 그래도 뚱띠라 살이 찌면 안되는데, 살이 쪄버려서 큰일이다. 수술 전에 체력 만들고 가야 한다고 흑염소나 한우를 먹이는 등 보양식 투어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매주 홍삼과 별의별 건강보조식품, 한우가 집에 배달되었다. (참고로 홍삼이나 건강보조식품은 간 수치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수술 전에는 먹으면 안됨!)
더불어 지금의 걱정은 '수술 후에 느껴질 아픔'에 대해서만 걱정하는 정도로 심리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무사귀환을 바래주는데, 이쯤되면 드래곤볼 원기옥 아닌가...이쯤되면 우주가 감탄해서 수술이 잘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있는 상태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 현금 등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한 걱정과 위로, 사랑을 가득 담은 선물들을 보내왔다. 마치 연예인들이나 받는 조공을 받은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이렇게까지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었나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이렇게 받은 사랑을 더 갚지고 멋지게 모두에게 갚아야하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따라서 나의 수명은 필연적으로 장수 확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물 받고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달되는 다양한 종류의 물적, 심적으로 넘쳐난 선물들 덕분에 매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내 사람들의 사랑으로 치유하고 회복하면서 처음 마음 먹었던대로 현재까지, 암에 나의 일상을 빼앗기지 않고 D-day까지 올 수 있었다.
오늘은 에이치얼라이언스 광화문 사무실에 출근해서 할 일들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지니컴퍼니의 일도 마무리했다. 수술하고 디지털노마드로 업무 F.U이 가능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11월 2주차나 될테니 정리할 것들이 꽤 많았다. 주말은 그냥 널부러져서 뒹굴거리고 싶어서 미리 입원짐을 쌌다.
기내용 캐리어 안에 병원에서 미리 챙기라고 안내해준 물품들을 먼저 챙겼다. 아산병원은 보호자 1인만이 입원실에 상주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병원에서 가능한 다 챙겨가고 부족한 건 원내에 있는 슈퍼마켓과 쇼핑 공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 보호자가 되어 줄 동생이 덮고 잘 이불 : 병원에서는 보호자용 침구는 제공해주지 않는다고...내 동생은 원래 베개를 사용하지 않는 관계로 안 챙겼지만 쓰는 분은 챙겨가셔야 함
칫솔과 치약, 보호자의 세면도구 : 환자는 씻을 수가 없기 때문에...칫솔과 치약 정도만 챙겨가면 됨
입는 생리대 : 부인과는 속옷 대신 입는 생리대를 챙겨오라고 하는데, 양을 넉넉히 가져가는게 좋다고 함
미끄러지지 않는 편한 슬리퍼 : 수술 후 회복을 위해서 걸어다니는게 중요해서 안정감 있는 슬리퍼로 찾아야 함
빨대 : 물 먹으려면 이게 필요함
이 외에는 기존에 수술을 한 분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세안을 따로 하기 보다 토너 패드를 들고 가서 얼굴을 닦는게 낫다고 해서 토너 패드를 챙겼고, 몸을 닦는 용도의 바디 티슈와 바디 로션 샘플, 립밤, 미스트 등을 챙겼다. 그리고 충전기를 챙겼고 동생의 짐(갈아입을 옷과 속옷 등은 동생이 챙겨오기로 함)이 들어갈 공간을 조금 비워놨다.
노트북, 태블릿 등은 원래는 챙겨가서 동생을 아바타로 써먹어서 일을 할 생각이었지만 입원 기간이 짧기도 하고 무슨 내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내 몸이 우선이지 싶어서 일을 줄여버리고 미리 다 해놔버렸기에 가져가기 않기로 했다. 이전에 수술할 때는 호기롭게 음악 듣겠다고 이어폰도 챙겨갔는데, 음악 들을 정신 그딴 건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마찬가지로 챙겨가지 않기로 했다.
보험 청구에 필요한 서류는 남편이 동생에게 따로 보내기로 했고 나는 병원비를 결제할 신용카드의 한도를 확인하고 높여놨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에서야 수술 시간이 낮 12시로 확정(상황에 따라 1-2시간 지연될 수 있다고 함)되었다.
관련해서 병원에서 각종 안내 문자와 전화가 쏟아졌다. 순서대로 잘하면 되고 전문가 말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수술 동의서를 썼을 때의 무서운 말들이 떠오르니 갑자기 심장이 벌렁벌렁 불안해진다.
하지만 잘 해내야만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면서 나 자신을 다독일 수 밖에 없다. 다시금 그동안 받은 응원 메시지와 선물 기록들을 꺼내보며 기분 회복을 하면서 텐션을 유지시킬 수 밖에! 다시 한번 모든 내 사람들 땡큐 & 럽유~♥
얼마 전, 엄마 아빠랑 데이트를 하는데 아빠가 자긴 태어나서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고 했다. 아빠는 요즘 나 아픈 거 빼고는 아무 걱정도 없고 행복한 일 밖에 없다며, 더더더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다. 나만 괜찮아지면 아빠는 인생 최고의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며. 그래! 내가 언능 나아서 아빠를 완벽한 행복으로 이끌어야겠다. 이미 아픈 걸로 불효는 많이 저질렀으니 빨리 낫고 효도 좀 해보자, 나 시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