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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Oct 14. 2019

디즈니, 이때부터 얄팍했군요

<말레피센트> 리뷰

신비의 왕국 '무어스'에 사는 요정, '말레피센트(안젤리나 졸리)'. 그녀는 우연히 무어스를 찾은 인간 '스테판(샬토 코플리)'과 사랑에 빠진다. 이후 벌어진 인간과 요정들 간의 전쟁에서 말레피센트는 승리하지만, 출세의 욕망으로 가득했던 스테판에게 배신당해 날개를 잃는다. 말레피센트는 무어스의 왕이 되어 그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스테판의 딸 '오로라(엘르 패닝)'의 세례식에 쳐들어가 오로라가 16살이 되는 순간 진정한 사랑을 찾기 전까지 영원히 잠드는 저주를 건다. 그리고 이 저주가 실현될 때까지 오로라를 지켜본다.  


<말레피센트>는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속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비틀어 만든 작품으로, 원작과 다른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 번째는 필립 왕자가 영웅으로, 말레피센트가 빌런으로 등장한 원작 애니메이션과 달리 말레피센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오로라와 필립 왕자 간의 운명적인 이성애적 사랑을 대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겨울왕국>처럼 가족애를, 그것도 대체 가족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특징도 있다. 이처럼 원작을 두 가지 방향에서 적극적으로 각색해 제작한 영화가 바로 <말레피센트>인데, 그 각색의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점이 이 작품의 결정적인 단점이다.



우선 <말레피센트>는 빌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도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하는데 실패했다. 최근에 개봉한 <조커>와 비교하면 문제점이 더 명확해진다. 영화 속 조커는 분명히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빌런이다. 그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영웅에 자리에 대신 놓고,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의 화법으로 빌런의 입장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 결과 <조커>는 영화의 화법과 내용 간의 괴리로 인해 선과 악의 기준이 흔들리면서 혼란스럽고 퇴폐적인, '악'의 매력을 보여줬다.


반면에 <말레피센트>는 빌런인 말레피센트의 정체성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악역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피해자이자 인간과 요정 세계의 반복을 없애줄 영웅이다. 즉, <말레피센트>는 빌런의 악행과 그 이유를 '악'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원래 선했던 인물이 피해를 입고 타락했다가 다시 회개하는 식으로 스토리를 구성했을 뿐이다.


그 결과 영화는 전형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을 보여주는데 그치며, 굳이 빌런을 선역으로 내세웠어야 할 명확한 이유를 보여주는 데도 실패한다. 일반적인 판타지와는 다른 다크 판타지의 외연은 갖췄지만, 장르의 특성을 살리지는 못했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의 말레피센트가 악역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잘 보여준 캐릭터라는 점에서, 실패가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영화의 주제의식인 가족애를 묘사하는 방식도 최선의 선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대체 가족을 소재로 삼았는데, 이 선택 자체는 훌륭하다. 주연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가 세 아이를 입양했던 개인사와도 잘 맞아떨어지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변화한 사회 상을 반영하겠다는 의도도 문제 될 것이 없으니깐.


다만 문제는 대체 가족 간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굳이 기존의 혈연관계로 이어진 가족관계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한 사회적 집단의 권리를 지켜주고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다른 집단의 권리를 빼앗거나 그 지위를 깎아내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만약 디즈니가 진정으로 다변화된 사회 상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방식이 적절한 묘사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스테판 왕의 비뚤어진 부성애 강조하면서 말레피센트의 애정과 사랑을 정당화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제작의도와 스토리텔링 방식 간에는 괴리가 발생다.


사실 이는 <말레피센트>부터 <미녀와 야수>, <알라딘>까지 디즈니 라이브 액션 영화들의 전체적인 문제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변화를 주려고는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도 단순하다 보니 변화를 심도 있게 반영하지는 못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이다. 실제로 디즈니 실사화 영화들은 영화의 상징이자 중심인 특정 주인공에게 영화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부여할 뿐(자스민처럼), 주인공의 변화나 성장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거나 그 외의 캐릭터들을 활용하지 않다.


 

작중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지나치게 쉽고 편리하다. 영화에 내레이션이 등장하는 횟수가 많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말레피센트>말레피센트의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서 그녀의 심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거의 전적으로 내레이션에 의존했다. 그 결과 영화는 그녀의 화려한 액션이나 활약상을 제시할지언정 그녀의 변화나 성장에 깊이 몰입할 여지는 만들지 못했다.


주인공인 말레피센트가 이러하니, 다른 캐릭터들이 제대로 구축되었을 리가 없다. 오로라는 동화 속 공주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할 뿐 영화 안에서 내면적인 고민이나 성장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철저히 스토리 전개를 위한 수단에 그친 것이다. 필립 왕자를 비롯한 나머지 인물들도 스테레오 타입에 불과하다. <드래곤 길들이기>를 연상시키는 생동감 넘치는 비행 장면과 화려한 무어스의 전경처럼 CG나 영상미는 화려했지만, 이조차도 영화의 본질적인 단점을 가리지는 못했다.


결국 <말레피센트>는 평범했던 동화와 원작을 비틀어서 빌런에게 발언권을 줬다는 시도, 평면적인 캐릭터마저도 소화해내는 졸리의 카리스마, 화려한 영상미와 의도는 좋았던 주제의식만이 남은 디즈니의 평범한 가족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부터 2019년 현재까지 디즈니 실사화 영화들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디즈니가 다양성 반영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얄팍한 수로 상업성만 신경 쓴다는 의심도 지우기 어렵다.



A(Acceptable, 무난함)

조금 신선하고 조금 뻔한 영화들을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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