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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Oct 12. 2019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아닙니다

<걸캅스> 리뷰

페미니즘이 무엇일까.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노력이다. 페미니스트들은 현재 사회제도나 질서가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다고 가정하고, 여성들의 지위가 남성들에게 귀속되어 있으며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여성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들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느리더라도 자신들의 목소리와 자유를 키우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꾸준히 현재 진행형이며 이는 결코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기도 하다. 부당한 대우를 철폐하기 위해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모두의 합의하에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니깐. 


페미니즘이 사회 안에서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볼 때, 관건은 그 방향성이다. 크게 봤을 때, 남성들과 동등해지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인지 아니면 남성들을 적으로 삼고 타도할 것인지로 나눌 수 있으며, <걸캅스>(2019)는 후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회를 비추려고 시도했다.



잘 나가는 형사였지만 지금은 경찰서 주무관으로 일하는 '박미영(라미란)'과 강력반에서 사고 치고 짐짝 취급을 받으며 징계를 받는 '조지혜(이성경)'. 이들은 우연히 몰래카메라 범죄를 당한 여성의 사연을 알게 되고, 다른 이들의 지원 없이 직접 몰래카메라 범죄자들을 체포하려고 한다.  


<걸캅스>는 작위적인 스토리를 전개하고 디테일을 설정해 철저히 남성을 끌어내리고자 노력한다. 영화 속 남성들은 범죄자 혹은 무능력자다. 거리의 모든 남자들은 공유되는 몰카 영상들을 거리낌 없이 시청한다. '조지철(윤상현)'은 사법고시생인데, 무능력한 백수로 그려지며 미영과 지혜에게 병신이라며 온갖 구박을 받는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주인공들에게 거듭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남성 경찰들은 진급에 눈이 멀어서 몰래카메라 범죄를 알고서도 수수방관하는 비겁한 새끼들인 데다가 여성들의 지휘 지시 없이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멍청이들이다. 남성 범죄자들은 박미영을 보면 쫄아서 오줌이나 지리는 겁쟁이들이고. 


이러한 묘사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여성들의 불만을 반영하고 또 화풀이 내지는 대리만족의 기능을 한다. 특히 몰카 범죄에 관련해서는 수사와 처벌에 있어서 소극적이거나 미흡한 부분이 많은 현실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의도나 메시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할 뿐이다. 



남성들과 여성들의 젠더 역할을 바꿨지만 <걸캅스> 속 주인공들이 진취적이거나 능동적인 인물들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는 내내 답답하거나 조마조마할 뿐이다. 이유는 간단한다. 단순히 인물들의 성별만 바꿨을 뿐, 본질적으로 남성우선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중 결국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범죄자를 잡는 것은 남성 경찰들이고, 남성 경찰서장의 개입이 없었다면 몰카 범죄는 해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남녀의 스테레오 타입을 반복하고 여전히 남성이 권력의 정점에 있다. 또한 미영과 지혜의 수사 과정은 적합하지도 않고, 운과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결국 <걸캅스>는 의도와 달리 '여성들은 남성의 보호와 도움 없이는 제대로 된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다.  


여성이 사화적으로 약자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를 드러내는 장치로서의 페미니즘도 분명 유의미하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은 있다. 여성들의 권리와 사회적 위치를 신장시키기 위해 남성들을 끌어내리고자 한다면, 대상이 되는 그 남성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남성들의 위치를 대신할 사람들이 과연 여성이어야만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남성들 중에서도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과 아닌 이들이 있고, 단순히 남성 중심적 사회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서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페미니즘 담론을 소비하는 영화들이 충분히 고민해볼 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에서 작위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젠더를 바꾸는 것은, 결코 페미니즘을 미디어화하는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없다. 남성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채 캐릭터의 성격도 부각하지 못하고, 스토리도 진부하며, 코미디물이지만 참신한 유머도 없는 괴작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걸캅스>가 증명하고 있다. 


<미쓰백><벌새>가 남성의 자리를 여성으로 대신하고 남성을 깔아 내려서 성공하고 칭찬받은 것이 아니라 시점부터 남성 중심의 시각을 벗어난 다양성을 보여주었기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 반증이다. 페미니즘이 단순히 문제제기를 하는 도구를 넘어서서, 사회를 바라보는 대안적인 인식론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에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걸캅스>는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다.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무난한 졸작일 뿐이다(의도는 아닐지 몰라도 관객의 입장에서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를 소비하고 평가할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 담론을 다루는 데 있어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걸캅스>의 기획은 시의성도 적절하고 소재의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 <조선 명탐정>과 <탐정>처럼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버디 형사물을 여성 주인공 영화로 바꾸는 시도는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만들기도 했다. 단지 이 영화는 스스로 그 기대를 걷어찼을 뿐이다. 



D(Dreadful, 끔찍함)

소재가 지닌 최소한의 가능성도 던져 버린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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