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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Oct 18. 2019

<말레피센트 2>, 얄팍한 디즈니의 실패한 속편

<말레피센트 2> 리뷰

이 장면이 안 나올 때 알았어야 했다


1.  '말레피센트(안젤리나 졸리)'가 '오로라(엘르 패닝)'의 저주를 푼 지 어언 5년. 말레피센트는 여전히 저주스러운 마녀로 지내고 있었다. 한편 무어스의 여왕이 된 오로라는 얼스테드 왕국의 '필립(해리스 딕킨슨)' 왕자의 청혼을 수락하지만, 필립의 어머니인 '잉그리스(미셸 파이퍼)' 왕비는 둘의 결혼을 계기로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 한다. 말레피센트와 오로라가 잉그리스의 음모로 인해 위험에 빠진 가운데, 말레피센트의 종족인 '다크 페이'가 등장하면서 요정과 인간은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디즈니 성의 측면을 보여주는 오프닝 로고. <말레피센트>(2014)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장면이다. 마치 빌런을 주인공으로, 빌런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는 야심 찬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말레피센트 2>(2019) 오프닝에서 디즈니 로고가 정면으로 나오자마자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이유가. 단언컨대 <말레피센트 2>는 현재 디즈니가 보여줄 수 있는 하한선을 찍은 영화다.

 


2. 디즈니 고유의 오프닝 로고가 등장한 후, 15분이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말레피센트 2>는 이야기의 동력을 상실한다. 영화 내에서 서스펜스를 일으킬 요소가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서스펜스는 등장인물과 관객들의 정보 격차에 의해 생기는 긴장감으로 스토리 전개의 원동력이 된다. 등장인물만 혹은 관객들만 아는 정보가 각각 적절히 주어질 때 관객들은 인물을 걱정하기도 하고, 인물들의 행위를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영화에 몰입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서스펜스가 매우 약하다.


<말레피센트 2>는 정보를 애써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말레피센트가 "다시 빌런이 되었다"는 초반부의 내레이션이 무색하게 영화는 곧장 잉그리스 왕비의 정체와 계획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말레피센트와 오로라에게는 피해자 이미지를 덧입힌다. 관객들은 러닝타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갈등 구도, 조력자와 적대자, 빌런의 계획 등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패를 다 알게 된다. 관객은 모든 것을 알고 인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방향적인 서스펜스가 러닝타임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인물들의 대사나 행위가 답답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늘어난다. 자연히 영화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지루해진다. 잉그리스의 계획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오로라가 음모를 파헤치는 장면이 스릴 넘칠 리가 없다. 심지어 이 영화의 전개는 각종 클리셰로 범벅이 되어 있다. 출생의 비밀, 주인공의 좌절과 조력자의 희생을 통한 각성, 전편에서 보여준 가족이라는 진정한 사랑까지. 서스펜스도 없고, 반전과 서프라이즈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영화의 전개 덕분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고저 없이 평이하게 진행된다.    


 

3. 평이한 영화의 구조를 의식해서였을까. <말레피센트 2>는 양적인 측면에서 영화의 재미를 살리기 위한 시도를 한다. 원래 주인공들에 새로운 요정들, '코널(치웨텔 에지오프)'과 '보라(에드 스크레인)' 같은 다크 페이들, 잉그리스 왕비와 필립 왕자의 호위 대장 등 더 많은 인물들을 추가시켜서 스토리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이미 수많은 속편들에서 이루어졌고, 대부분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러닝타임은 한정되어 있는데 다루어야 할 내용이 늘어나다 보니 영화가 소화불량에 걸린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기존 주인공들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다 보니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영화에 이입할 여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영화 내에서 인물들이 울고, 절규하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 감정이 스크린 밖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말레피센트는 전편만큼 매력적이지 못하고, 엘르 패닝과 미셸 파이퍼처럼 뛰어난 배우들이 배역을 맡았음에도 오로라나 잉그리스 모두 인형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하이라이트 전투 시퀀스와 영화의 결말부에는 늘어난 인물들로 인해 생긴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 영화는 전투 장면에서 스펙터클, 오로라와 필립의 성장, 말레피센트의 카리스마, 왕비의 사악함, 요정과 인간 간의 화해, 가족애 등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다가 정작 중심이 되어야 말레피센트를 놓친다. 이렇게 중심이 사라진 채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장면들을 느슨히 이어 붙이다 보니 마지막 하이라이트마저도 그저 심심할 따름이다. 결국 <말레피센트 2> 또한 외적으로 팽창하면서 내실이 없어지는 속편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메시지와 미적인 디테일만은 분명 인상적이다. <말레피센트 2>는 오로라-말레피센트, 오로라-왕비의 관계를 대비시키며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혈연은 아니지만 뿔을 숨기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챙겨주는 것이 진짜 가족인지, 아니면 혈연으로 맺어졌음에도 화려한 보석과 장신구로 치장해가면서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 가족인지를 묻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 가족 개념의 붕괴가 적절히 반영된 대목이자, 전작에서 일방향적으로 제시되었던 오로라와 말레피센트의 관계가 보다 입체적으로 제시되는 부분이다.


또한 흑과 백을 대조시키는 색상의 활용 시의 디테일은 역시 디즈니라는 감탄을 불러내기 충분하다. 흑과 백을 대조시키면서 잉그리스나 왕비와 말레피센트의 캐릭터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왕비의 경우 개인 공간을 검은색으로, 외적으로 드러내는 의상은 흰색으로 표현하면서 선한 척하는 빌런임을 드러낸다. 반대로 말레피센트의 경우에는 정체성과 힘을 되찾는 공간을 흰색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의상을 검은색으로 묘사하며 악한 것처럼 보이는 선역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선역과 악역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색상을 뒤섞은 시각적인 다채로움은 충분히 즐길만하다.  



5. 디즈니는 고전 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로 리메이크하는 이른바 라이브 액션 영화들을 대거 제작하면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말레피센트>, <정글북>, <미녀와 야수>, <알라딘> 그리고 <라이온 킹>까지. 하지만 상업적 성공과는 별개로, 이러한 작품들이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원작 애니메이션과 별 차이가 없거나, 페미니즘 같은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얄팍하게 삽입해 영화적인 완성도가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말레피센트 2>는 디즈니 라이브 액션의 얄팍함이 속편에서 문제가 되어 터져 버린 참사다. 사실 시리즈의 첫 편이면 실사 리메이크라는 화제성과 과거의 향수를 자극해 관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스케일만 키우는 속편이라면 제아무리 디즈니라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이쯤 되면 디즈니도 향후 계획에 대해 조금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디즈니의 방향성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실패한 속편, <말레피센트 2>다. 



D(Dreadful, 끔찍한)

배우랑 의상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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