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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Feb 12. 2020

<조조 래빗>, 유쾌하고 따뜻해서 더 참혹한

<조조 래빗> 리뷰

1.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한 마을에는 소심하고 겁 많은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가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나치에 흠뻑 빠져있던 조조는 '상상 속 친구 아돌프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의 응원 속에 독일 소년단에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잘 적응하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집 안에서 숨어 지내던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멕켄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미처 알지 못하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전쟁은 참혹하다. 승전과 패전에 관계없이,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사랑, 꿈, 희망을 파괴한다. 그렇기에 전쟁을 다루는 영화들도 끔찍한 순간을 묘사할 수밖에 없다. 그저 누구의 시점에서 전쟁을 다루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질 뿐이다. 지금껏 많은 영화들이 다양한 시점에서 전쟁을 묘사했다. 직접 참화를 경험하는 병사들, 수많은 병사들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택을 내려야 하는 장군들과 정치인들, 전쟁을 뒷받침하는 후방의 여성들까지. 그리고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은 또 다른 관점에서 전쟁을 묘사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확립한다. 바로 아이의 시점이다. 



2. <조조 래빗>은 코미디 영화이며, 특히 온갖 방식으로 히틀러와 나치를 조롱하고 비웃는다. 우선 폴리네시아계 유대인 혼혈인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본인이 아돌프 히틀러를 연기한 것부터 지독한 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히틀러가 조조에게 집을 불태우고 윈스턴 처칠에게 뒤집어 씌우라고 말하는 장면, 게슈타포와 독일군 장교들이 하일 히틀러라는 인사말을 끝없이 반복하는 장면 등도 비슷한 맥락에서 등장하는 유머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유머들이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순수하면서도 때로는 따뜻하게도 느껴지는데, 이는 영화가 철저히 어린아이의 시점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중 코미디적 요소들은 단순히 웃음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이는 특히 조조와 히틀러의 관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조조에게 히틀러는 가장 친한 친구이며, 히틀러는 겁 많고 소심한 아이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우울한 순간에 웃음과 위로를 주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후 조조가 배고픔에 시달리는 동안 혼자 만찬을 즐기거나, 맹목적인 사랑을 강요하는 등 영화가 진행될수록 히틀러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모습을 보인다. 1차 세계 대전과 대공황으로 인해 완전히 나락에 빠졌던 당시 독일인들의 심리를 이용해 권력을 잡고, 그 후 사리사욕을 채우며 독일을 패망으로 이끈 히틀러의 실제 역사 속 행보가 적절히 반영된 셈이다. 이처럼 웃음 안에 뼈아픈 역사적 진실을 담아낼 줄 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훌륭한 블랙 코미디다.



3. 한편 히틀러와 조조의 관계,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엘사와 조조의 관계에 주목해보면 이 영화는 곧 조조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영화는 나치와 유대인이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인물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조조에게 던지는데, 그가 답을 찾으면서 겪는 일련의 과정을 중점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전적으로 조조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며, 이 대목은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로지가 특히 빛나는 대목이다. 사실 로지는 조조가 누구를 선택하면 좋을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나치를 동경하는 조조를 안타까워할지언정 자신의 의견을 조조에게 강제하지도, 주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조조의 세계와 그의 이야기를 지켜주기 위해 고민하고 갈등하며 희생한다. 조조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 덕분에 비록 조조의 아픔과 성장이 극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가 엘사와 함께 미소 지으며 추는 춤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과정들은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들이 믿어 의심치 않던 세상과 현실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고, 자신의 친구와 보호막을 잃으면서도 진정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가치를 찾아야만 한다. 단지 조조의 성장은 전쟁으로 인해서 그 과정이 너무나도 비극적으로 변하고, 훨씬 앞당겨졌기에 "10살짜리가 전쟁과 정치에만 관심이 있다"는 로지의 대사처럼 안타까울 뿐이다.



4. 동시에 이 영화는 전쟁 영화다. 다만 전쟁에 대해서 철저히 제한된 정보만 주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 속 전쟁은 철저히 조조의 시점에서 묘사되며, 구체적인 전황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대사로 짧게 암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쟁이라는 소재가 본질적으로 갖는 참혹함이라는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로지, 샘 록웰이 연기한 클렌젠도프 대위, 그리고 잠시나마 모습을 비추는 게슈타포는 조조의 소동극이자 동화로 남을법한 이 따스한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영화는 더욱 참혹하다. 작중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와 히틀러의 만행처럼 이미 익히 알려져 있는 사건들은 직접적인 형태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저 인기를 좀 얻고 싶고,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소년의 순수한 마음이 일상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치의 사상과 결합되는 광경은 그 자체로 기괴하고 소름 끼친다. 신나게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조조의 모습이 히틀러에게 열광하는 독일인들의 실제 모습과 연결되는 영화의 오프닝, 조조의 집을 점검하러 나온 게슈타포의 따뜻한 모습,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아이들까지 전쟁에 투입시키는 장면들이 특히 그렇다. 장면 하나하나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장면을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희생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스크린에서 직접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영화 감독들에게 관심이 많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변화도 눈여겨 볼만 하다. 그는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로 유명세를 얻은 바 있는데, 라그나로크의 경우 호평을 받으면서도 토르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스토리가 특유의 유머 감각에 다소 묻힌 것 같다는 평도 들었다. <조조 래빗>을 전작과 비교해보면 그가 유머와 진지함 가운데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완전히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조조 래빗>은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그중 각색상을 수상했다. 물론 원작을 읽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각색상을 받은 데에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쟁과 어른들의 논리에 희생되는 아이들, 어떻게든 그들을 지키려는 어른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아프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 상을 예술을 하고 싶고, 춤을 추고 싶으며 또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바친다"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각색상 수상소감이 기억에 남는 이유다. 



E(Exceeds Expectations, 무난함)

눈물보다 가슴 아픈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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