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 <탑건: 매버릭>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화제인 트렌드가 있습니다. 뉴트로죠. 80~90년대에 유행한 레트로 패션 등이 현재의 감각에 맞게 재구성되어서 인기를 끄는 걸 말합니다. 아날로그 감성이 풍기는 문화에 신선함을 느껴 그것을 재해석하여 만들어지는 유행이죠. 사실 너무나도 익숙해진 풍경이라 뉴트로 열풍이라고 지칭하면 새삼스럽기까지 하죠.
다만 뉴트로 혹은 영트로 현상에 얽혀 있는 시간관념은 주목할 만합니다. 뉴트로 열풍을 보면 사람들은 과거에 긍정적인 의미를 새겨 넣는 듯 보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디어의 보고로 여기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래와 새로움은 과거와 익숙함의 변형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패션뿐만 아니라 문화적 성취만 봐도 모든 새로운 것은 과거에서 비롯되니까요. 큰 인기를 끈 HBO 드라마 <하우스 오브 더 드래곤>만 해도 잉글랜드 역사 중 무정부시대를 판타지로 재구성한 결과죠.
한편으로 과거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낡은 흑백 사진처럼 생동력 없는 이미지로 인식되기도 하죠. 미래에 뒤처진다는 이유로 과거의 유산은 흔히 존재와 의미를 부정당합니다.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장에서 직원의 자리는 키오스크가 대신하고, 종이 영수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메신저 알람이 대신합니다. 현재에서 과거의 모습을 철저히 지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 넣을 때 우리의 미래는 만들어지죠. 이는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폐기할 때 현재가 등장하고, 거기서 한 발짝 더 진보할 때 미래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과거가 현재 우리의 삶에서 과연 어떤 의미일지는 난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인 셈이죠. 그런데도 가치관을 확립하면서 도움은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스펜서>와 <탑건: 매버릭>을 함께 볼 때 시야가 트이는 듯한 인상을 받는 이유죠. 두 영화는 모두 과거를 스크린 위로 불러오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눈앞에 나타난 과거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두고 엇갈린 의견을 제시합니다.
여느 때처럼 별장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복싱데이까지 삼일 간의 연휴를 보내기로 한 영국 왕실. '다이애나 왕세자비(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왕실의 일원으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별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시작부터 편안하지 않다. 새롭게 별장을 담당하게 된 지배인 '그레고리 소령(티모시 스폴)'의 눈을 빌린 시어머니와 남편의 집요한 감시 속에서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였던 앤 불린의 환영을 볼 정도로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다이애나. 그녀는 유일한 말벗인 의상 담당자 '매기(샐리 호킨스)'와 두 아들에게 의지하며 간신히 예정된 행사들을 버텨내지만, 과거 어린 시절의 자유로운 기억은 그녀의 답답한 현재와 상충하며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힌다.
20세기의 신데렐라 불렸던 다이애나 스펜서. 보수적인 영국 왕실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로 수많은 가십의 주인공이었기에 그녀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의 다섯 번째 시즌에서도 중심인물로 등장할 예정이고요. 달리 말하자면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소재로 한 작품이 신선함을 담보할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에 파블로 라라인 감독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만난 <스펜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린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를 포기합니다. 대신 다양한 상징을 토대로 15년에 걸친 왕실 속 그녀의 삶을 단 삼 일 내에 농축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하죠. 특히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서로 다른 타임라인을 스크린 위에서 교차해 그녀의 삶을 요약합니다. 새로울 미래를 그리기 위해 살아 숨 쉬는 과거에 저항하며 현재를 살아야 했던 한 개인의 고통을 생생히 전달하죠.
살아있는 과거인 영국 왕실의 위압감
<스펜서> 속 다이애나는 계속해서 영국 왕실과 트러블을 겪습니다. 찰스 왕세자의 불륜을 묵과하고 오히려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을 압박하는 왕실에 반기를 들죠.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이 개인과 과거라는 시간의 싸움이라는 점입니다. 본질적으로 영국 왕실은 살아있는 과거이자 숨 쉬며 움직이는 의례이기 때문이죠.
에밀 뒤르켐은 종교의 내용에 깊은 의미와 활력을 주며, 종교가 목적하는 바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라고 의례를 규정합니다. 의례가 단순한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신앙을 창조하고 또 주기적으로 재창조하는 수단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종교 의례는 역사적으로 권위가 인정된 행동 양식을 반복하며 종교의 의미와 상징성을 표출하고 강화하는 기능을 맡습니다. 예를 들어 미사나 예배에서의 성찬 전례는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한 최후의 만찬을 반복하는 행위입니다.
영국 왕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군주제는 과거 영국의 화려함을 상기시키는 상징이자 영국인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가능한 과거의 관습을 유지하며 상징성을 유지하려 하는 이유입니다. 일원들 개개인의 개성과 삶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보수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죠.
영화는 이처럼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현존하는 과거인 영국 왕실의 본질을 영리하게 보여줍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엘리자베스 2세가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 단적인 예시죠. 카메라 앞에 모인 가족 중에 다이애나와 그녀가 두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표정의 변화조차 없습니다. 마치 밀랍 인형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존재할 뿐입니다. 예법에 따라 진행되는 길고 복잡한 식사 시간에 다이애나가 강한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것 역시 존재 자체가 의례인 영국 왕실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다이애나의 리액션
영국 왕실의 본질이 드러난 덕분에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다이애나의 리액션은 자연히 주목받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희망찬 미래를 위해 사투를 펼치는 그녀의 고통은 더 절절하게 느껴지죠. 초반부에 엘리자베스 2세 혹은 찰스 왕세자와 같은 주요 인물은 딱히 등장하지 않습니다. 설령 모습을 비추더라도 카메라는 그들을 원거리 혹은 뒷모습 위주로 비추죠.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최소한의 순간이 아니면 왕실 관련 인물은 카메라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됩니다. 식사 시간이나 가족 모임이 있을 때 행사의 중간은 건너뛰고 곧장 다이애나의 반응을 보여주는 식이죠. 어찌 보면 상당히 절제된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왕실과의 갈등으로 인한 그녀의 고통은 극대화되죠. 드레스를 입은 채 구토하는 그녀의 언밸러스한 모습만 보더라도 아픔은 생생히 느껴집니다.
찰스가 선물한 진주 목걸이를 바라보는 다이애나의 시선도 다르지 않죠. 그녀는 목걸이를 착용한 거울 속 자기 모습과 수백 년 전 헨리 8세에게 버림받은 천일의 여인 '앤 불린'을 겹쳐 봅니다. 목걸이에 담긴 과거의 무게가 그녀를 짓누르죠. 앤 불린은 왕실에 걸맞은 왕비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진 인물입니다. 다이애나처럼 과거를 갱신하기 위해 존재하는 왕실의 일원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던 사람이죠. 이는 앤 불린의 유령이 시간을 넘나들어 나타나며 다이애나를 만나는 이유입니다. 결국 <스펜서>는 생명력을 잃고 과거의 유산인 의례 속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의례에 짓눌리는 그녀
그 외에 영화 속 다양한 요소들도 과거에 억눌린 삶의 처절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실 별장으로 가던 중 어릴 적 자신이 자란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잃어버린 다이애나. 아무도 그녀를 돕지 못하는 가운데 과거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허수아비와 들판만이 그녀에게 위안이 되죠. 어린 시절의 다이애나는 발레리나를 꿈꾸는 자유로운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왕실이란 공간에 묶인 채 그 압박을 견뎌야 하죠. 허수아비에게 다가가 옛날에 입혀줬던 옷을 벗기는 그녀를 지켜보다 보면 허수아비가 다이애나의 현재 상황인 거처럼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왕실의 강력한 법도와 규율을 간접적으로 체험시키며 다이애나가 느꼈던 압박감을 고스란히 전해주기도 합니다. 저택에 들어간 다이애나가 몸무게를 재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재미로 시작된 왕실의 규칙이라는 몸무게 재기에 다이애나는 강한 반감을 표합니다. 찰스와 엘리자베스 2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녀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죠.
과거는 또 다른 과거로 딛고 일어설 수 있다
<스펜서>는 다이애나의 아픔과 고통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녀의 희망을 노래하며 한 발짝 더 나아가죠. 현존하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녀의 과거 기억입니다. 삶에 대한 의욕을 거의 잃다시피 한 그녀는 답답한 왕실의 저택을 벗어나 탁 트인 들판으로 나가려고 하죠. 간신히 저택을 빠져나온 그녀는 스펜서 가문의 옛집을 찾아냅니다. 어느덧 폐가가 다 되어버린 옛집에는 앤 불린의 유령(환영)이 다이애나를 기다리고 있죠.
다이애나가 앤을 마주하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는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현재 자기 모습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그녀는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죠. 마치 과거와 현재를 지나 새로운 미래를 암시하듯이요. 앤 불린의 불린 가문과 혈연적으로 이어진 '스펜서' 가문의 과거,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되기 전에 한 개인으로 삶을 즐기던 '스펜서'의 과거를 다시금 떠올리며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그 결과 왕비의 자리보다 자신의 이름을 갖기로 한 새로운 다이애나 스펜서가 모습을 드러내죠. 그러니 억지로 꿩을 사냥하며 왕실 내에서 원치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 아들들을 그녀가 구해내는 장면은 짜릿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과거로서 과거와 현재를 이겨내며 희망에 가득 찬 그녀의 모습은 모두가 알고 있는 비극을 영화적으로 기억하는 장처럼도 느껴집니다. 그렇게 <스펜서>는 비극 대신 개인으로서의 삶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한 여성의 희망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데 성공합니다.
비행을 계속하기 위해 진급을 거부하고 현역 파일럿으로 남은 '피트 매버릭 미첼(톰 크루즈)' 대령. 그는 최신형 전투기 다크스타의 시험 비행 도중 독불장군답게 사고를 저지르고, 자신이 졸업한 탑건 학교의 교관으로 전출을 간다. 오랜만에 도착한 학교에서 우라늄 시설 폭격 작전에 투입될 12명의 파일럿을 훈련시키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그는 옛 연인인 '페니(제니퍼 코넬리)'를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과거에 순직한 동료의 아들인 '루스터(마일즈 텔러)'가 12명의 파일럿에 속한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훈련은 난항을 겪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빨라진 작전 일자 때문에 매버릭과 그의 파일럿들은 더욱 패닉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이 가르친 동료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본인의 목숨을 걸고 그들을 생환시키기 위한 비행에 나선다.
톰 크루즈와 함께 36년 만에 돌아온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 'Top Gun Anthem'과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이 들리는 가운데 함재기들의 이착륙을 비추며 시작한 영화는 곧장 매버릭에게 포커스를 맞춥니다. 신형 극초음속 전투기 개발 사업인 '다크스타'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던 매버릭은 마하 10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폐기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죠. 이에 독단적으로 마하 10 시험 비행을 완수해내면서 다크스타 프로그램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매버릭의 행동에 격노한 '케인(에드 해리스)' 소장은 그를 탑건 학교로 전출시켜버리면서 그의 노력이 무의미해질 거라고 일갈하죠. 어차피 드론이 파일럿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매버릭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탑건: 매버릭>의 오프닝이 전편을 쏙 빼닮은 이유
전편을 빼닮은 오프닝 시퀀스와 뒤따라 나오는 짧은 대화는 긴 세월을 기다린 속편인 <탑건: 매버릭>을 설명하는 완벽한 도입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적 액션이 그 어느 때보다 박력 넘치고 강렬한 이유, 마침내 당도한 속편이 향수와 동시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로 무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 장면에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매버릭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원한다면 별을 두 개는 족히 달았을 미 해군의 전설적인 파일럿이지만 수많은 훈장이 방증하듯이 매버릭도 과거의 영웅입니다. 케인 소장의 지적대로 충실한 드론이 등장한 시대에 명령에 불복하는 파일럿이 있을 자리는 이제 없죠. 다크스타를 몰고 마하 10에 도달한 것이 전설의 건재함을 보여준다면, 마하 10 이상에 도전했을 때 전투기가 폭발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이 서 있을 자리가 없다는 걸 암시하는 듯합니다.
사실 매버릭의 위기는 개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매버릭과 케인 소장의 충돌이 유인 전투기와 드론 사이의 논쟁과 대립에 국한되지 않으니까요.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이는 과거와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가깝죠. 이에 <탑건: 매버릭>은 통념을 벗어난 대답을 내놓습니다. 과거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야 한다고 말하죠. 순간마다 반복되고 있는 과거를 직시해야 비로소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주제 의식으로 무장합니다. 마치 "시간 자체도 하나의 둥근 고리"라던 니체의 영원회귀 신화처럼요. 이는 영화는 2막이 매버릭이 30여 년 전에 졸업한 탑건 학교에서 펼쳐지는 이유입니다. 과거로 되돌아가고, 과거를 새로 겪으면서 온몸으로 자기 말을 증명하도록 만들죠.
실제로 <탑건: 매버릭>은 전편의 구조, 장면, 상황을 되풀이합니다. 시간대만 달라졌을 뿐 사실상 동일한 상황 속에 매버릭을 던져 놓죠. 사고를 친 후 탑건 학교로 좌천되고, 탑건 학교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깊이 좌절하지만, 끝내 극복하고 실전에 투입되는 흐름이었던 전편의 구성을 고스란히 따라갑니다. 물론 오마주로 가득한 구성은 영화 전체를 진부한 클리셰 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죠. 그러나 <탑건: 매버릭>은 파일럿으로서의 매버릭, 인간으로서의 매버릭으로 나누어 과거를 반복하면서 그 함정도 피해 갑니다.
파일럿이자 인간으로서 매버릭이 마주한 과거들
우선 파일럿으로서 매버릭은 과거의 사건들을 다시 직면합니다. 교관이 된 그는 적국의 우라늄 원자로를 파괴하는 작전을 12명의 파일럿에게 교육해야 합니다. 작전을 검토하던 그는 작전 중 가능한 모든 사건이 본인이 실전에서 직접 경험해 본 사건들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훈련 과정에서도 그는 자신의 과거를 조우해야 합니다. 그는 한데 모인 최고의 파일럿들에게 기초적인 도그파이트 훈련을 지시하죠. 이때 30여 년 전 자신이 그랬듯 윙맨을 희생해 적을 격추하는 전술을 구가하는 파일럿을 오랜만에 상대합니다.
그의 훈련 역시 과거의 반복이죠. 그는 2분 30초라는 작전의 시간제한을 수없이 반복 학습합니다. 실제 작전과 같은 상황 속에 그들을 거듭 던져 놓죠. 이미 겪었던 상황을 출발점에서 다시 경험하도록 만들고, 결승점에서는 이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파일럿들을 숙달시킵니다. 누군가는 처참히 실패하고, 누군가는 팀원과의 불화로 실패하고, 누군가는 신체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지만 같은 훈련을 반복하면서 파일럿들은 조금씩 차이를 만들어내죠.
한 인간으로서의 매버릭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돌아올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탑건 학교에 귀환한 그는 학교 근처 바에서 ‘페니’ 벤자민과 재회합니다. 전편에서 헤어진 여자 친구로 언급되었던 그녀와의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나가죠. 매버릭 특유의 미소를 짓지 말라는 페니와 굴하지 않는 매버릭의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페니는 전편의 여주인공이었던 쿠거가 그랬듯이 좌절에 빠진 매버릭을 수렁에서 구해주기도 하죠.
무엇보다도 매버릭은 자신을 몇십 년째 괴롭히던 트라우마를 마주합니다. 그는 전편에서 전투기를 탈출하던 도중 윙맨이자 절친이었던 구스를 사고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문제는 훈련받을 12명의 파일럿 중에 구스를 똑 닮은 그의 아들 루스터가 속해 있죠. 바에서 아버지의 애창곡이었던 "Great Balls of Fire"를 부르는 루스터를 지켜보면서 매버릭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생생히 느낍니다. 그래서 그는 작전의 성공만큼이나 루스터를 살려서 귀환시키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죠.
문제는 매버릭에게만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루스터는 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했던 매버릭을 향해 적대감을 숨기지 않습니다. 또 자신을 지켜주려는 매버릭의 관심도 외면하죠. 이렇게 과거의 트라우마 안에 함께 갇힌 이들의 골은 훈련 중 함께 추락하는 듯한 장면만큼이나 깊어집니다.
매버릭의 과거를 새롭게 색칠하는 액션 시퀀스
영화의 3막에서 훈련 교관이었던 매버릭은 끝내 직접 작전에 투입됩니다. <탑건: 매버릭>의 박력 넘치는 액션 시퀀스가 눈 호강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건들이 얽히고설킨 가슴 벅차오르는 드라마인 이유죠. 물론 20여 분간 쉼 없이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는 그 자체로도 인상적입니다. 수없이 연습한 작전을 실행하는 순간의 가슴 멎을 듯한 긴장감, 작전 이후 뒤따르는 지대공 미사일과의 목숨을 건 사투, 전투기 간의 살 떨리는 도그파이트까지. 고막을 때리는 굉음과 눈을 사로잡는 회피 기동과 폭발이 한데 뒤엉키기 시작하면 좀처럼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죠.
그러나 액션을 정녕 뜨겁게 만드는 건 매버릭과 루스터의 트라우마 극복기입니다. 매버릭은 구스처럼 죽을 위기에 빠진 루스터를 구합니다. 루스터도 생각하지 말고 본능을 따르라는 매버릭의 조언을 따르며 매버릭을 구해내죠. 또 그들은 생환하기 위해 2인 1조로 함께 전투기를 조종하죠. 여기서는 오래전 매버릭과 구스의 팀플레이가 겹쳐 보입니다. 죄책감과 원한이 쌓인 두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마침내 해소된 것이죠.
결국 매버릭의 액션씬은 과거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는 것, 인간은 시간이라는 고리 안에서 특정 순간으로 계속 되돌아온다는 명제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영원 회귀하는 그 시간의 고리 내에서도 매번 접하는 사건에는 새로운 의미가 깃들 수 있다고도 말하죠. 끝없이 되풀이되는 순간의 무게와 책임을 견뎌낼 때,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초인'이 되어 과거와 트라우마의 늪에서 벗어나고 새 미래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같은 사건을 마주해도 다르게 채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 이것이야말로 매버릭의 오랜 동료인 아이스맨이 남긴 "과거를 잊을 때가 되었다"라는 충고의 진의겠죠.
적군의 F-14 톰캣을 탄 채 귀환을 시도하는 매버릭과 루스터의 모습도 같은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사실 F-14 톰캣은 절대 적군의 5세대 전투기를 이길 수 없는 고물이죠. 필연적으로 미래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유산인 셈입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과 사건에 인간이 새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듯이, 이 도그파이트에서도 전투기가 아니라 파일럿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두 파일럿은 시간의 흐름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최신 전투기와 치열한 싸움을 펼치죠. 이는 영화의 결말에서도 다시 한번 반복되는 장면입니다. 1950년대에나 쓰던 P-51 머스탱을 함께 타고 노을 지는 현재를 즐기는 매버릭과 페니. 다시 만난 옛 연인과 과거의 유산 안에서 사랑을 꽃피우는 장면은 도입부가 던진 물음에 대한 완벽한 응답이죠.
<탑건: 매버릭>이 완벽한 시네마인 이유
사실 <탑건: 매버릭>은 발전한 기술력을 제외하면 시대에 맞게 무언가를 바꾸려고 애쓴 영화는 아닙니다. 그저 과거에 좋았던 점들을 더 멋지게 만들어서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보여줬을 뿐이죠. 그래서 영화는 좋아진 기술력을 자랑하는 만큼이나 오래전 감성으로 가득합니다. 누르스름한 시각적 묘사와 영화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장면들은 80년대의 흐름과 분위기를 그대로 재연해내며, 이는 노을 속에 올라오는 토니 스콧 감독을 향한 추모의 메시지로 완성되죠.
하지만 그 덕분에 관객들은 과거의 매력을 알아서 즐기고 새롭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탑건: 매버릭>이 그저 추억을 되풀이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원동력이죠. 과거를 폐기하는 대신 반복하는 현재가 얼마나 가슴 뜨거울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면서 다음 이야기는 또 무엇일까 하고 자연히 꿈꾸게 만듭니다. 이처럼 영원 회귀의 시간 속에서 <탑건: 매버릭>은 할리우드의 힘을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신화를 써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