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살과 1살의 동반여행
2023년 8월 28일 ~ 29일, 할머니한테 전화 한 통 잘 안 하는 놈이 올여름은 왠지 모르게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가고 싶었다. 코로나 동안 제대로 뵙지 못해서인지, 최근에 몸이 쇠약해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할머니와의 여행은 1달 전부터 준비했다. 나의 든든한 동료! 동생과 함께 준비했다. 동생은 숙소를 예약하고 요양병원에 연락해서 휠체어 대여와 할머니가 외박이 가능한지를 체크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리조트 근처에 맛있는 식당들과 둘러볼 곳을 조사했다. 막상 할머니를 모시고 간 날은 조사했던 것들이 불필요하긴 했다.
5년 전 할머니를 모시고 갔던 경험 때문인지 나는 당일에 가서 몸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여행을 가이드할 생각이었다. 나의 생각은 할머니를 모시러 요양병원에 간 당일 잘못 됐음을 깨달았다. 6개월 전에 뵙던 할머니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져있었다. 골격이 커서 덩치는 커 보이지만 예전보다 훨씬 살이 빠져계셨고,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차에 타는 내내 잠만 주무신다. 말씀도 잘 못하신다. 죽도 잘 넘어가지 않으시다며 뱉어내신다. 단백질과 하루영양분 가득 담겼다는 음료를 그나마 꿀꺽꿀꺽 삼키신다. 화장실도 혼자가지 못 하신다. 변도 잘 나오지 않아서 고통스러워하신다. 피부는 가렵다며 계속 긁으신다. 혼자서는 주무시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으시다.
할머니는 명절과 생신 때만 뵀다. 기억에는 가물하지만 어렸을 적 아빠의 빚으로 인해 빚쟁이들을 피해 할머니집에 잠깐 있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시거나 그런 적은 없다.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당연히 내가 없었겠지만... 그래서 엄청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의 유년시절 할머니댁에서의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평생 동안 한결같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모습. 자식들이 속 썩여 가슴 아파하시는 모습, 아픈 다리를 끌면서 밭일을 하시는 모습 왜 이런 모습들이 마음속에 인화된 사진처럼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모습들이 나를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혹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죄책감을 덜기 위한 나의 만족으로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한테 이 정도까지 했어. 괜찮아. 자기 위로를 위해서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간 것이었을까? 할머니가 계속 요양병원에 계신 게 불쌍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무엇 때문인지 솔직한 나의 마음을 모르겠다.
군산에 있는 할머니 요양병원에서 그나마 가까운 소노벨 리조트에서 바다를 보면서 동생의 딸(조카)을 보여드리면서 함께 식사하는 게 이번 여행의 테마다.
세상에 서기 위해 다리에 힘을 꽉 주지만 픽하고 쓰러지는 조카와 세상에 너무 오래 서있어서 다리에 힘이 퓩하고 빠져버려서 픽하고 쓰러지는 할머니와의 첫 만남. 치아와 장기들이 튼튼하게 생성되지 않아서 분유와 모유밖에 먹지 못하는 조카와 치아와 장기들을 너무 오래 사용해서 단백질 음료밖에 먹지 못 하는 할머니. 샤워를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조카와 할머니. 기저귀를 차고 많은 시간을 꾸벅꾸벅 자는 모습. 시작과 끝은 이렇게 닮아 있는 게 많다.
이 여행이 할머니와 마지막 여행이었다. 여행 후 반년 있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이 크게 나지 않았지만 화장을 하고 할어버지 옆에 안치시켜드린 저녁, 고모들과 할머니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참았던 울음들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가 매일 걸레질하던 방바닥에 앉아서 정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었다. 할머니집은 요양병원에 계시느냐고 오랜 시간 비워있었지만 어렸을 적 할머니가 이 집에서 행동했던 모습들이 계속 떠올랐다.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에 항상 과도가 있었고 그 과도로 할머니는 무수히 많은 과일들과 밤을 깎아 주셨다. 다리가 좋지 않아 싱크대에 기대서 조기를 지지던 모습, 저녁 8시면 꼭 일일드라마를 보셨던 모습, 자식들 준다고 가을이면 딴 감을 우리던 모습 등 할머니의 흔적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다시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오자.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조카라는 새 생명이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인간의 시작과 끝은 참 닮은 점이 많다. 인간은 그렇게 나약하게 태어나 나약하게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