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치열한 성장의 기록이다. 주인공의 유년시절부터, 청년,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여 참전하는 이야기까지로 맺음을 짓는다. 이 소설속에는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친구로써 어려움에 처하거나, 방황할 때 그리고 성장을 할 때마다 앞에 나타나 싱클레어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소설 속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해 있어 한 번 읽어서 모두 샅샅히 알아내기가 힘들다. 당연하다. 소설의 본질은 보물 찾기고 은폐와 폭로의 미학이니깐. 거장일수록 그런 것을 더 내밀히 깊게 잘 감추니까. 소설에 나타난 상징들은 수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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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다가온 그 의미들을 생각하며 느낀 점을 정리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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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의 균열
대부분 어릴 적 우리는 밝은 세계에 속해있다. 밝은 세계란 부모님과 친지들, 가족의 울타리 아래서 사랑받고 자라며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란 세계관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알던 밝은 세계에 균열이 간다. 그리고 그 틈으로 밝은 세계와 대비되는 어둡고 차가운 세계가 우리에게 스며든다. 그런 것은 폭력, 미움같은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귀신과 같은 영적인 세계일 수도 있다. 때로는 믿음직스러웠던 아버지의 무너진 모습이라든지, 가족의 죽음같은 충격일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의 세계관은 일정한 형태로 지탱하지 못하고 계속 균열이 가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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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
데미안을 읽기 전에 누군가 이 책의 이야기를 꺼내면, 이 문구를 들면서 아는 체를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 수 많은 인문학 서적에 인용됬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극복해야 된다는 니체의 '위버멘쉬(초인)'란 관념과 같은 이야기기에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써먹으려 기억해 놓았었다. 알이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지칭한다. 소설에서 데미안은 본인이나, 주인공 싱클레어를 카인의 표적을 지닌 사람들이라 말한다. '카인의 표적'이란 내가 생각하기에 남들과 같은 피상적인 길을 거부하고 치열하게 내면으로 침잠하며 자신만의 길을 탐색하고 걷는 사람을 일컫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카인의 표적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 카인의 표적을 지닌 싱클레어는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남들과 같지 못했다. 가족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그 자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지 못했고, 친구들과 잘 사귀지도 못했으며, 고독에 몸을 떨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갖고 내내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 여정에서 여러 스승을 만나며 그의 세계는 더욱 균열이 갔으며, 그 순간마다 그는 그를 둘러싼 낡은 세계의 알껍질을 벗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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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브락사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 문구에 나오는 아브락사스는 신과 악마가 합쳐진 존재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에 아브락사스란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서양의 이원론에서 탈피한 자신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선과 악의 대립에서 벗어나, 선과 악은 공존한다는 일원론적 개념. 신과 악마는 모두 자기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연결이 된다. 인간이 선하면서 악한 존재다. 어린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보면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반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보면 보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그리고 이런 고정되지 않은 본성 덕분에 인간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운명이 주어진다.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삶을 만들어 갈 수있다는, 신 중심적인 사고의 탈피. 니체의 사상과도 연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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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학문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는 다분히 동양적인 요소가 깔려있다.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관계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이고, 알을 깨고 나옴은 대오각성(大悟覺醒)과 연결된다. 그의 이야기였음직한 이 소설은, 어느 누구가 읽던 자신의 유년과 대비해보는 하나의 거울같은 소설이 아니였을까란 생각이 든다. 나의 유년시절과도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연결되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 누군가 이 책을 애독서로 삼아, 열번 이상을 읽었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읽어보니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