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cheating'
편견도, 선입견도 인간과 함께 태어났다고 하죠. 생존과 번식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던 옛 선조들은 겉모습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구분하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엇갈렸습니다. 우리가 옛 선조보다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다고 보는 학문 분과죠. '진화심리학'에선 선조들의 옛 지혜였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휴리스틱(heuristics)'이란 어려운 말도 붙입니다. 감 또는 직관입니다.
경상도 땅에서 정치를 하면, 빨간색을 입고 나와야 당선된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보수 정당의 텃밭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요. 제가 태어난 경상북도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경상북도 영주에서 처음 생겨나서 유교가 퍼졌고, 그래서 지금의 보수가 된 걸까요. 주변의 친척들도 보수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지난 대선 기준, 저희 집은 각자 선호하는 후보가 달랐습니다) 보수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구별 짓기의 정도인 것 같습니다. 보수는 자유, 진보는 평등을 말합니다. 잘 와닿지 않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면 조금 쉬워집니다.
보수는 자유롭게 사람을 잘 구별해내는 본능에 솔직하고, 진보는 본능을 거슬러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를 추구한다
섣부른 정의를 내린 건 놀랍게도 요즘 MZ세대에 유행하는 'MBTI' 때문입니다. MBTI는 사람의 성격 유형을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 16가지(2X2X2X2)로 나눕니다. 사실, 사람을 볼 때 편견이 없이 보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마다 숨겨진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누구나 단점이 있습니다. 그 단점도 저와는 잘 맞을 수 있다고 꽤 귀하게 여겨왔습니다. MBTI가 나오면서 달라졌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도 모르게 MBTI로 잘 맞는 사람, 잘 안 맞는 사람을 구별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MBTI를 벗어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을 쉽게 구분해내는 안정감에 빠진 걸까요. 이러는 이유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재미로 보는 MBTI가 재미로라도 유행하는 이유는 세상 살기가 갈수록 힘들기 때문 아닐까요.
서로를 알아가는 데도 시간을 조금이라도 재촉해야 해서, 아니면 흉흉한 세상 내 편과 네 편을 빨리 구분해내야 살 수 있어서. 아무튼 수 천, 수 만 년의 세월 동안 인류는 진보한 걸까요. 문득 이런 느낌이 듭니다. 인류가 달에 가든 화성에 가든 우리는 살아내면 그만이지만.
장점을 잃어간다고 겁내는 건 아닙니다. 다만 소중한 인연을 놓치는 건 두렵습니다. 제가 MBTI로, 저를 MBTI로 누군가 구별해낼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