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테린이(테니스+어린이) 시절, 코트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구력 1년 반인 지금도 곧잘 합니다. 테니스 경기에서 주어지는 두 번의 서브는 포인트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테린이는 오히려 부담입니다. 서브를 넣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 다 놓치는 경우가 허다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파트너에게도, 묵직한 서브를 기다리고 있던 상대방에게도 미안해집니다. 서브가 안 들어가면 재밌게 테니스를 치러온 이들의 권리를 빼앗은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테니스는 뻔뻔해져야 느는 것 같습니다. 불쑥,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죄송하다'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미안함을 느꼈으면 정중히 표현하되 속으로는 '그래도 내 방식대로 할 거다'는 뚝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죄송함이 쌓이면 위축되고, 움츠려 들면 테니스는 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동작을 작게 가져갈 때도 있지만 의도된 동작과 '쫄아서' 나온 동작은 차이가 큽니다. 호쾌한 서브, 강한 스윙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홈런을 맞아봐야 삼진도 꽂을 수 있다
잠깐만 야구 이야기로 새겠습니다. 야구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테니스 서브에 대한 두려움을 풀어주는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키워준 할머니에 보답하기 위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고 마운드에 오르는 신인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그는 구단에서 보내준 호주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돌아온 그는 타자들을 아웃시키지 못하고 볼만 내줍니다. 그러자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미션을 하나 준다. 스트라이크를 시키지 못할 거면 홈런을 맞고 내려와라" 그리고 신인 투수가 홈런을 맞자 백단장을 포함해 모두가 웃습니다.
이유는 "스트라이크를 맞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을 스트라이크를 맞으면서 깨뜨린 까닭입니다. 제게도 신인 선수에게 조언한 투수 코치와 같은 어른이 있었습니다. 그는 "네트에 걸리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 자신 있게 스윙해라"라고 말해줬습니다. 이 한 마디에 긴장도 다소 풀렸고,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어른이 주변에 있다면 복이지만, 늘 곁에 있지도 않습니다. 제게도 복이 따라와 주는 경우도 극히 적었습니다. 그래서 제 속에 어른을 하나 만들어봐도 좋았습니다. "괜찮다. 뻔뻔해져라. 자신 있게 하자" 이렇게 말하는 어른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