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더니 생기는 일 _2

by 까칠한 팀장님






"나는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

배치를 잘 해서 디자인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 더 적성에 맞구나! "



내가 배운 전공을 활용하여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기 위해 이리 저리 알아보며 4학년을 다 보냈던 것 같다(누구나 그렇겠지만,,,). 당시에는(1995년) 신문에서 구인 광고를 보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손으로 적어(글씨를 이쁘게 적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했다) 등기우편으로 제출하거나, 학교 또는 학과를 통해 들어 오는 구인 요청을 교수님께 추천 받아 이력서를 제출했다. 언제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할 때를 대비해 포트폴리오도 충분히 준비했다.



11.jpg 이리저리 배치하며 코디하는 즐거움 (출처 : 핀터레스트)




다만 아쉬운 것은,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실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보통 패션회사에서 디자이너가 10여명 정도라면 코디네이터나 디스플레이어는 1~2명 정도라고 보면 된다. 1명이 관두지 않는 한 자리가 나기는 어렵고, 알음알음 알아가다 보니 출장이 많은 직업이라 장기적으로 일하기 힘들다는 정보들만 들려왔다.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친구들이 수시로 면접을 보러 다니는 동안 내 마음은 참 외롭고 쓸쓸했다. "이렇게 열심히 만든 포트폴리오를 보여줄 데가 없구나." 그러면서도 열심히 수정하고, 또 다듬으며 나를 위한 자리가 있을거라는 믿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2월 어느 날, 대학원 시험을 끝내고 학교에서 조교 업무를 배우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삐삐가 왔다.(삐삐라니!)



" J 회사에서 부산에서 일 할 디스플레이어를 구한대, 학과 사무실에 팩스가 왔는데, 빨리 지원해 봐! "


단기 계약직이었지만 이리저리 따질 이유가 없었다. 일단 부산에서 먼저 뭔가 작은 경력이라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음이 급했다. 이력서를 넣고 불편한 정장을 입고 첼로 만큼이나 큰 포트폴리오를 들고 면접을 봤다. 현직에서 일하시는 분이 우리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출신이었다는데 " 구인 요청 팩스를 시각디자인학과에 넣었는데, 잘못 넣었나, 왜 의류학과에서 왔지?" 라는 말만 들었다.



1996년, 1월부터 나의 첫 일, 첫 잡(Job)이 시작되었다.


첫 명함이 나왔고, 졸업하기 전에 뭔가 일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부분도 있었고, 하면 할수록 놀랍고 신가한 일 투성이였다. 무엇보다 내가 매장에 가서 윈도우의 마네킨을 바꾸고 매장 내부를 연출할 때, 매장에서 너무 잘 해주셨다. 상품 하나하나를 정리해서 도와주시고, 매장의 특성, 손님의 특성 등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또, 내가 매장을 한 번 디스플레이 하면 매출이 훅 오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냥 마네킨 옷 입히고, 컬러별로 아이템별로 동선 봐서 진열하면 되는데, 이게 특별한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내게는 무난한 일이었지만 전문가의 영역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하는 일이 많고, 부산 근교의 작은 도시, 대구까지 이동하며 일하는 것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내가 브랜드의 큰 일을 하는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열심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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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각적인 연출을 하고 싶었다 (출처 : 핀터레스트)





6개월 정도 일을 했을 때, 반복되는 매장 이동과 혼자 매장을 이동하며 일하는 외로움이 커져갔다.

마침, 한 선배의 선배의 추천으로 E회사로 이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일은 정말 힘들다고 했다.

당시 나는 좀 더 다양한 일을 배우고 싶었고, 무엇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이 일에 관련하여 좀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다. 브랜드가 많은 회사의 캐주얼 브랜드라 그런지 VMD(비주얼머천다이저)도 많았고 위로는 선배들, 옆으로는 할께 일하는 동료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하나하나 새로 배웠다. 아니 찾아서 일했다. 일이 주어지면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다. 일을 하면서 모른는 것을 물어 보면 짧게 대답해 줄 뿐, 여기저기 묻기도 하고 어떻게든 찾아가며 일했다. 혼나기도 하고 칭찬 받기도 하면서 일했다.


본부장님이 우리팀 이번 기획 좋았다고, A브랜드에게 우리팀 자료를 보내라고 하셨다. 팩스를 넣으려는데 선배가 복사를 10번 정도 해서 흐리게 해서 보내라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보내고 나니 흐려서 글씨가 잘 안보인다고 A브랜드 VMD에게 전화가 왔다. 다시 보내겠다고 하며 두어번 또 흐린 복사물을 보냈다. 받아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가뜩이나 사진도 많은 자료인데 흐리게 복사를 한 사진투성이 자료를 참고해야 하니,,,


선배들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열심히 만든 자료를 날로 먹으려 하면 안되지..."

직장 생활이란 이런 것인가...아휴...


매장이 나오면 인테리어랑 집기 체크하고, 타 부서랑 협의하고 수정하고, 팀장님께 보고 하고 비주얼 플랜을 구성했다. 계절이 바뀌어 신상품이 나오면, 어떻게든 나의 디자인을 적용하고 싶어서 잡지와 자료들을 모았고 저렴하게 제작하기 위해 거래처와 제작소등을 찾아 다니기도 했다. 힘들게 일 한 만큼 실력이 쌓이고, 커리어가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때는 주 6일 근무하던 때라 토요일에 출근해서 업무 정리하고 퇴근하여 집에 오면 보통 4시였다. 간단히 저녁 먹고 자면 12시간 이상은 몰아서 잤다. 주일은 교회 다녀 와서 좀 쉬었다가 다시 월요일 출근 생각을 했다. 머릿 속에는 온통 일 생각 뿐이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늘 잡지를 끼고 다녔고 시간만 나면 백화점이나 매장을 다니며 시장조사를 했다. 해외 여행을 가더라도 면세점이나 관광지의 백화점을 보러 다녔다.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가끔 '슬럼프'가 찾아 오기 전까지는...




slump

1. 운동 경기에서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좋지 못한 결과를 내는 상태가 길게 계속되는 일

2.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거나 나빠지는 것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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