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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Dec 02. 2016

아까워하는 마음 버리기

100가지 물건 버리기  프로젝트

100가지 물건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제일 먼저 뭘 버릴까 고민했다. 

일단 쓰레기부터 버리자! 결심하고 집 안을 휘휘 둘러보던 찰나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 김치 한 박스 보냈거덩. 우체국 택배로 보냈으니 내일이면 도착할끼다."

아이고, 작년에 주신 김치가 아직도 김치냉장고에 쟁여져 있는데~ 안 보내주셔도 되는데~

속마음이야 그렇지만 김장하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싶어 그저 감사하다, 잘 먹겠다 거듭 인사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김치냉장고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버리게 된 건 묵은 김치다. 

김치냉장고 뚜껑을 여니 한 통은 안에서 얼마나 발효(?)됐는지 뚜껑조차 잘 안 열린다. 

한참을 낑낑대고 겨우 열었더니 푹 익은 내 가 진동하네. 

누가 준 김치인가 봤더니 작년 이맘때 아래층 애기엄마가 준 김장김치다. 

근데 간이 너무 약해서 우리 입맛엔 맞지 않아 안 먹고 냅뒀는데... 역시나 너무 익어버렸다. 

과감히 그것부터 정리하기로 한다. 음식물 쓰레기봉투 2개가 꽉 찬다. 

미안해요~ OO 엄마.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려서... 근데 우리 입맛엔 영 안 맞네요. 

속으로 아깝다, 미안하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안 먹고 쉬어빠진 김치들을 연신 비워내니 

커다란 김치통 2개가 생겼다. 

이 정도면 내일 김치가 도착해도 수납은 문제없겠지. 휴~ 한숨 돌렸다. 


우리 친정엄마는 김치 욕심이 대단하다. 누가 김치 준다고 하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달려가 

잔뜩 이고 지고 온다. 차도 없이 대중교통으로 말이다. 그만큼 엄마의 김치 사랑은 대단했고

나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누가 김치 준다 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는다. 

그래서 우리 집 김치냉장고엔 친정엄마표, 시어머니표, 윗집 아랫집 아기 엄마표 김치가 섞여있다. 

아랫집 아기 엄마가 준 김치도 버리자니 너무너무 아깝고 미안했지만 

물건 버리기를 결심하면서 제일 중요한 건 '버리는 걸 아까워하는 마음'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과감하게 버릴 수 있었다. 

앞으로 이건 다른 물건을 버릴 때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첫 번째 원칙이다. 


김치를 버리고 나니 김치냉장고도 한결 여유가 생겨서 채소랑 과일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간만에 쩐내 나는 김치냉장고도 박박 닦아 청소하고... 개운하다. 

한 시간 계획했는데 거의 딱 맞게 정리한 것도 기분 좋다. 

이게 주부의 마음인 건가? 살림엔 영 젬병이던 내가 비워내고 청소하는 재미를 느끼다니. 

첫날인데도 벌써 뭔가 잘될 것 같고, 내가 뭔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온다. ㅎㅎ

내일은 또 뭘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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