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는 아기돼지 삼형제가 산다. 큰볼기근(대둔근), 중간볼기근(중둔근), 작은볼기근(소둔근). 각자의 대표상품이 있고 주(主)-부(副)의 역할도 있다. 사이좋게 지내는 삼형제를 보고 있노라면 몸의 주인으로서 생긴 거나 하는 짓이나 그렇게나 흐뭇할 수가 없다.
우리 몸은 반원을 그리는 골반 뼈가 양쪽에 있다. 그 아치(arch)를 따라 손으로 만져보면 이렇게나 위에 붙었나, 하고 깜짝 놀란다. 바지가 흘러내려가지 않도록 잡아준 것에도 감사해진다. 반원, 아치, 이 라인(장골 능선)을 말하는 이유는 둔근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서다. 엉덩이 뒤편은 대둔근이, 옆은 중둔근이 붙어 사이좋게 땅을 갈랐다. 소둔근은 중둔근 속에 파묻혀 장골능선 땅에는 욕심이 없다.
대둔근은 장골 능선부터 시작해 다리뼈 옆면에 들러붙는다. 그러니 넓대대하게 대각선을 이룬다. 허리춤부터 허벅다리까지 연결된 셈이다. 600개가 넘는 우리 몸의 근육 중 가장 큰 근육이니 그만한 대접은 해야 마땅하다. 통상 뒤에서 봤을 때 엉덩이 아랫부분인 ‘3’자만 신경 쓰는데 엄연한 번지수인 허리부근의 대둔근까지 자극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생긴 걸 보면 주로 다리를 뒤로 뻗을 때나 바깥으로 회전할 때 수축한다는 그림이 그려진다.
중둔근은 대둔근보다는 위, 바깥쪽의 장골 능선부터 시작해 다리뼈의 공(head) 모양 밑에 있는 큰 결절에 가서 붙는다. 피자 한 조각이 옆면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다리를 옆으로 벌릴 때 자극된다. 티 안 나게 일하고 티 안 나게 고생하는 스타일이라 낀 세대인 중둔근에 더 애착이 간다. 종일 앉아 있느라 뭉치고 한 다리로 설 때 버텨주기 때문이다. 학도 아닌데 한 다리로 설 일이 뭐 그리 많아서, 할 텐데 걸음처럼 발 하나로 땅을 딛는 경우는 일상에 널렸다. 공기만큼이나 고마운 줄 모르고 넘어갈 법한 근육이라 잠들기 전에 폼롤러나 마사지볼로 반드시 풀어준다.
소둔근은 중둔근을 걷어내야 보인다. 깊숙이에 있어 만져지지도 않아 형님들에 비해 존재감이 크진 않다. 중둔근 치마폭에 쌓여 시작점은 비슷한데 다리뼈 앞쪽에 있는 작은 결절에 붙는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비켜서 붙는 모습이 참 신비롭다. 그렇다보니 다리를 오므리거나 안쪽으로 돌리는데 쓰인다. 대둔근과는 반대로 작용해 작다고 무시하면 다리가 밖으로 나돌 것 같다.
그렇다고 대둔근, 중둔근, 소둔근이 칸막이 쳐 놓고 각자도생만 하는 건 아니다.
대둔근이 다리를 뒤로 뻗거나 밖으로 돌릴 때 중둔근도 관여된다. 중둔근이 옆으로 다리를 벌릴 때 대둔근은 오므리는 걸 도와준다. 다리 하나로 중둔근이 버틸 때 반대쪽은 대둔근이 잡아준다. 그래서 걸음은 엉덩이가 책임져야지 무릎에게 전가시킬 일은 아닌 게다. 소둔근이 대둔근에 대항해 다리를 안으로 향할 때 쪽수에 밀릴까봐 중둔근이 돕는다. 그게 또 감사해 소둔근은 중둔근이 다리 벌릴 때 거든다. 어느 한 놈만 차별할 수가 없다.
서로서로 돕는 근육 유전자로 ‘두레’라는 것도 역사 속에서 뼈를 묻은 건 아닌지. 왜 중죄를 지었을 때 형별로 ‘곤장’을 택했을까. 아이들 체벌로도 볼기짝을 때린다. 근육 크기만큼 큰 벌을 주었다는 엄포인지는 몰라도 몸의 입장에서는 토닥토닥 두드려 모실 곳이다.
넓은 곳이라고 근육에 탐 난 나머지 엉덩이에 붙은 지방을 경멸할 것까지는 없다. ‘지방’ 방석이 없었다면 대둔근은 문드러졌을 테니. 마시멜로 같은 지방 덕에 좀 더 깊은 곳에 대둔근이 단단하게 자리잡는 것이다. 다만, 이 지방이 엉덩이 주름 부근인 아래 지방(地方) 보다는 윗 부분에 포진되는 게 좋다. 애플힙을 찬양하는 건 지방이 위에 분포할수록 걸을 때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외출할 때 난 한 마리의 학이 된다. 척추관협착증으로 엉덩이를 바닥에 내려놓기가 힘들었었다(양반다리를 할 수 없었다). 이제는 둔근 느끼느라 엉덩이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는다. 엉덩이 근육이 총동원 되어 바지, 스타킹, 레깅스, 양말...과 함께라면 학이 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