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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Apr 21. 2020

내 몸은 자연산 100%

- 순도 100% 근육 결은 자연스런 삶을 불러 온다 -


최근 기사 중 ‘자연산 유아교육’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 왔다. 대부분 음식 앞에 많이 붙는 ‘자연산’이란 말이 교육과 나란히 하니 호기심을 자극했다. 유아교육학계의 원로라 칭하는 임재택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가 쓴 글이었다. 아이들은 ‘토종닭’처럼 풀어놓고 자유롭게 키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연으로 나가 뛰어놀다 보면 다 배우게 되니 가둬놓은 양식 말고 자연산으로 키우라 했다.(육아신문 베이비뉴스, 2020.2.19.)


운동을 한 이후 얼굴 좋아졌단 소리를 종종 들었다. 피부색과 표정이 밝아졌단다. 원주 이전 후 종종 이용했던 회사 헬스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직원이 나이를 거꾸로 먹느냐며 추켜세우기도 했다(헬스장 조명과 이마부터 타고 내려오는 땀방울이 광택 효과를 불렀다). 갈수록 거울 보는 횟수가 줄어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볼 기회는 없었다. 빈 말인지 아닌지 확인 작업 들어갔다.



오늘은 어제보다 얼마나 더 푸르러졌을까. 갯버들은 날마다 거울을 본다.


운동 전과 몸무게는 동일하다. 볼 살도 그대로다. 달리기 이후 불타는 고구마 얼굴색도 그대로다. 얼굴 안에 옹기종기 모인 눈 코 입 정렬도 서운할 정도로 그대로다. 달라진 점은 피부 결이다. 땀 배출이 많은 탓에 여드름 개수가 줄었고 분출구 직경도 줄었다. 맨 얼굴과 마주한 새벽 운동에서나 달리기를 마친 이후에는 얼굴에 꽃이 존재했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마냥 그 울긋불긋한 여드름 자국들이 숨었다. 화장품 분칠 속에 숨던 그 여드름 자국들 말이다. 운동을 멈추지 않으니 크고 작은 붉은 자국들은 술래가 끝내 찾지 못했다.


학창시절부터 다 커서까지(마흔이 다 큰 건 아니지만) 여드름을 달고 살았다. 얼굴에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여드름투성이라 달고 살았다기보다 수면, 변비, 호르몬 등의 물리적 현상과 사서 걱정하는 소심함, 꽁한 성격이 여드름을 달고 산 것 같다. 성격 좋아진 건 연구가 더 필요하고 일단 여드름 나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기미 주근깨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금처럼 너덧 시간을 잤다면 아마도 백발백중 유니콘이 됐을 것이다. 뾰루지 10개가 모인 크기의 왕 여드름이 콧등에 자주 생겼다. 뾰루지는 보는 사람 지루할까봐 턱, 볼, 이마에 골고루 담합을 펼쳤다. 성질 건드리는 날에는 양 손가락이 가만 두질 않아 휴지 쪼가리를 붙여 흐르는 국물을 막곤 했다.


운동 한 이후부터 뺑덕어멈 점 같은 여드름은 멸종했다. 운동 전 얼굴이 사암(모래가 뭉쳐서 단단히 굳어진 암석)이었다면, 규암(사암이 변성 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공극(孔隙)이 없고 깨진 표면이 평탄한 암석)으로 변한 걸까.


몸무게가 그대로인 이유는 지방이 줄고 근육이 늘어서다. 저지방고단백 우유를 광고하는 것처럼 인바디(Inbody) 성분이 변했다. 부피가 줄어 덜렁대던 살이 몸에 찰싹 안긴다. 이 때문에 살 빠졌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덜렁이 성격마저 나아진 것 같다. 근육 압착력으로 자세도 펴진다. 자세가 좋아 보인다는 말에 한 몫 한 건 아닌가싶다.


이 착각에서인지 이젠 화장품 바를 때도 양손가락으로 두들기는 운동을 한다. 얼굴이 하도 당겨 할수없이 발랐던 사람이 신명나게 얼굴 난타까지 벌린다. 미간에 잡힌 팔자 주름까지 다리미질 하게 생겼다.


운동은 인공이 아닌 자연산 100% 미모를 보장한다. 운동하는 자체가 인공, 가역적 행위 아니겠느냐 할 수도 있겠다. 몸을 꼼짝하지 않는 사람의 방목 개념으로 보면 좋겠다. 우리 안에 가둔 소와 푸른 초원에 놓아기른 소의 신진대사가 달라 결이 다른 것처럼. 그렇다고 성형외과나 피부과 진료 예약을 막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예방이 우선이고 그럼에도 안 되는 경우를 치료라고 이해하리라 본다. 병원 없는 사회를 꿈꾸는 이시형 ‘국민 의사’가 습관이 가장 좋은 약이라 강조한 것처럼.


바다나 산에서 나는 음식들을 다룰 때 자연산 100%라는 광고를 많이 한다. 이와 더불어 주성분이 차지하는 비율을 강조하기 위해 순도 100%라는 말도 많이 내세운다. 양식이 아닌 자연에서 저절로 생산되는 ‘자연산’, 물질이 화학적으로 얼마만큼 순수한가를 나타내는 ‘순도’, 과연 내 마음은 몇 퍼센트의 순도를 지녔을까. 내 정신은 얼마만큼의 인공을 배제한 자연산일까.


운동으로 몸의 자연산을 맛보았다면 이젠 안으로 들어갈 차례다. 내면 성분에 여전히 ‘철’이 부족한 걸 보니 자연산 교육의 수혜자는 내가 아닐까싶다. 이제라도 아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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