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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5. 2020

비둘기 날개 달다

- 매일 3분으로 '인체 비(飛)례도' 남기다! -

한창 운동에 혈안 되었을 때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에만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단타성 근력운동과 장타성 유산소운동 말이다. 이 두 가지만 손에 넣으면 몸이 톱니바퀴처럼 착착 굴러가며 갑옷 두른 기분일 것 같았다. 피곤으로 담근 장아찌 몸이 아삭한 샐러드 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조급증에 매질을 했다. 하루 일과 중 운동 비중이 적은 날은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하며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저울질 했다.


두 마리 토끼만 잡으면 몸이 아플 일도 없고 지칠 일도 없겠거니 했다. 그런데 몸은 세상천지 맑은 날인데도 궂은 날씨처럼 굴었다. 반찬 만들 때 깜빡 하고 간을 치지 않은 그런 맛이랄까. 뭔가 개운치 않은 몸이 매일을 달렸다. 2% 부족한 그 무엇은 바로 유연성이었다. 발레리나처럼 사지를 찢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명색이 운동도 시작했는데, 관절 가동범위가 정상 그라운드에서는 놀아줘야 면이 설 게 아닌가. 아니 체면이고 간에 앉은뱅이 일상이 그대로 반영된 몸뚱이 틀은 깨야 직성이 풀리겠다. 리셋 몸으로 하루를 열어야지, 켜켜이 누적된 몸으로 아침을 맞이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스트레칭이다. 몸은 얼마나 순수한지 ‘난 정적인 무대를 살았소.’ 하며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의자에 앉은 자세며 모니터만 응시한 자세며 하다못해 어느 방향, 어떤 각도로 치중했는지까지 인화한다. 평소 자세 하나하나를 가차없이 Ctrl+C 하는 게 몸이 하는 짓이다. 찌뿌둥함을 달고 살았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거북함이 늘 서려 있었다. 일터에서 앉은 자세로 버텨야 하니 근력을 찾았고, 평생을 달려야 하니 유산소를 편성했다. 이 두 가지의 밸런스와 항상성을 위해서는 스트레칭도 한 자리 꿰차야했다.




의자모양으로 굳은 몸과 반대급부인 ‘비둘기 자세’를 매일의 동작으로 선정했다. 한 쪽 다리는 기역자로 바닥에 붙이고 다른 쪽 다리는 뒤로 뻗어 바닥에 붙이는 동작이다. 기역자는 근처도 안 되거니와 뾰족 산을 만들었다. 반대 쪽 다리도 바닥에 닿기는커녕 앉은 건지 선 건지 어정쩡했다. 척추관협착증의 우열을 가리자면 왼편이 오른편보다 눌린 정도가 더 심해 평소 방사통에도 노출이 잘 되는 편이었다. 몸은 그거 하나도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양 다리가 공중에 뜬 건 마찬가지인데 왼쪽 다리가 더 높게 고개를 쳐들었다. 이 동작 이름이 왜 비둘기 자세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둘기가 한쪽 날개를 다쳐 푸드덕거리는 모습하고 꼭 같았다.  


진정한 운동가라면 근력운동을 하느냐, 유산소 운동을 하느냐에 따라, 또 운동 전에 하느냐 마무리 단계에서 하느냐에 따라 스트레칭의 종류와 방법이 달라진다. 난 진정한 운동가라기보다는 종일 꼼짝 않고 있다가 이렇게라도 움직이는 게 어디냐는 진정한 노동가이기에 매일 3분만 투자했다. 진정한 운동가는 스트레칭 동작 하나에 10초 이상 머무르며 다양한 종류를 여러 번 반복한다. 진정한 노동가이기에 3분이 곧 명상시간이다. 종일 취한 자세의 복기 시간이다. 생각을 그 안에 누이는 시간이다. 산만한 성격이 느림의 미학을 선보이는 시간이다.





자세가 쌓이다보니 어느 날부터 비둘기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종아리와 허벅지가 기역자를 선보였다. 기역을 거역했던 몸이 정신 차렸다. 뒤로 뻗은 다른 쪽 다리도 바닥에 닿기 시작했다. 닿는 체표면적도 서서히 늘어나 종아리부터 시작해 허벅지 앞면까지 다다랐다. 방바닥의 온기를 다리 전체가 느끼니 공중부양으로 불안했던 마음까지 가라앉는다. 양 팔과 가슴도 덩달아 바닥에 찰싹 안긴다. 안 그래도 기적 같은데 때마침 두 팔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만세 부른다.  


비둘기 날개교정술에 성공했다. 이제 마음의 가동범위를 넓혀야 할 때다. 실은 비둘기 동작 첫 모습에 어째 그리 마음 씀씀이 가동범위와 비슷한지 뜨끔해서 혼났다. 더 많이 뻗고 더 넓게 벌어지는 만큼 마음도 확장공사가 필요하다. 가동범위 넓히려면 몸을 또 부지런히 놀려야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 그림처럼 이제 삐뚤어진 내 몸도 비(飛)례도 한 장 남겨야 하지 않을까. 마음도 따라붙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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