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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y 09. 2024

춥겠다

내 안에 너 있다  너 안에 나 있다

어린이날 어린이가 되었다. 스무살이 되고서야 아이는 아이다웠다.

"엄마, 나 힘들어"


이 소릴 태어나 처음 들었다. 어린이날이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들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아이에게 늘 바랐다. 아이답게 땡깡 좀 피웠으면. 뭐 좀 사달라 졸랐으면 했다.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만나는 선생님마다 '선비' 소릴 했다. 친구 엄마들은 '어른' 소리를 했다. 듣기 좋으라고 칭찬한 건데 내 가슴은 미어졌다. 남 모르게 참고, 견디고, 버티는 건 아닌지. 


술 취한 모습도 처음 보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술 마시면 큰일 날 몸이란 걸 두 모금에 알아챘다. 이후 큰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 같이 하는 저녁 자리에서 게임에 걸려 맥주 2잔 마시고는 간신히 살았다. 매주 과제 발표로 휴일 없이 주7일 학교를 갔다. 5월4일도. 5월5일도. 과제로 밤을 세우고 아침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왕복 전철시간(3시간)이 끼니를 거르게도 했다. 술이 끼어들어갈 틈 없이 살아 다행이었다. 어린이날은 틈 없이 살아 한 잔을 걸치자는 분위기였단다. 게임에 또 걸렸다. 분위기 흐릴까봐 술에 최선을 다한 듯했다.


5월6일 새벽 2시. 알콜이 들어가면 큰일 날 몸으로 큰일이 났다. 아이는 비를 쫄딱 맞고 휘청대었다. 싸늘해진 사지로 경련하듯 바르르 떨었다. 담요를 겹겹이 싸매도, 내 머리칼이 휘날리도록 사지를 주물러도 체온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 눈 주변 다크서클은 반지름이 커지며 판다로 변했다. 아이 위장은 거꾸로 매달린듯 위아래를 구분 못했더.


"엄마, 나 힘들어" 소리에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토록 듣고 싶던 말이었지만 건강한 몸으로 내뱉었음 좋았을 걸. 속은 얼마나 쓰릴까. 속쓰림도 전염병인가. 덩달아 쓰려 뒤척이다 보니 아침이었다(다행히도 힘든 건 학교 공부가 아니라 술이라고 한다). 아이 모습 속에서 내가 보였다. 30대에 난 윗분들과 고객 사이에서 분위기 깰까봐 술이 떡이 되곤 했다.


아이는 과제 준비로 쓰린 속을 이끌고 또 학교를 갔다. 잠바를 걸쳤건만 부모 눈엔 마냥 춥게만 보인다. 아이를 바라보며


"춥겠다" ...


뜬 눈으로 지낸 연휴를 끝내고 어젠 정장 쟈킷 하나 걸치고 출근했다. 엘리베이터까지 쫓아 나온 친정엄마가 문이 닫힐 때까지 날 보며 말한다.


"춥겠다"...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던 내 뒤엔 가슴이 미어지고 쓰라린 친정엄마가 있었겠구나. 


나를 바라보는 엄마 눈빛은 "내 안에 너 있다"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빛은 "너 안에 나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한 날인 것만 같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이가 준 편지


어버이날인 어제 아부지가 준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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