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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Feb 20. 2022

뚜껑 열리는 날

나를 발견하는 순간

"아니, 이래 가지고 어디 혼자 살겠나."

"이거, 어디 혼자 밥이나 해 먹겠나."

엄마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도마 칼질 보다 높다.


나름 맛있는 요리를 선보인답시고 새로 산 양념병을 집어들었지만 뚜껑이 열리질 않아 엄마가 뚜껑 열렸다. 엄마는 열손가락에 웅크린 상체, 오만가지 인상까지 동원했지만 병뚜껑은 끝내 입을 굳게 닫았다. 내 손에 쥐어 준 양념병.


(엄지+검지+중지) × 2 = 스르륵 '펑' 딱!


사무실 저만치에서 직원 둘(男+女)이 서서 실랑이 한다. 그들 틈바구니에 낀 사무용품, 아세톤병. 설마 뚜껑? 이번에도 약지와 새끼 손가락은 잠자코 있고 여섯 손가락으로 흐이짜! 20대 男직원에게 2분할 된 물건을 건네는 데 왜 내 머리뚜껑이 후끈하고 가려워지는 건지.


연거푸 뚜껑 열리니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알라딘과 지니 10명은 태울 법한 양탄자 카페트를 세탁소에 맡기고 올 때 가족들은 놀랬다. 회사에서 정수기 물이 똑 떨어져 물통 들어올려 내리 꽂을 때 직원들은 놀랬다(지금은 내장용 정수기지만). 일회용 포크와 젓가락을 쓰는 족족 부러져 졸지에 환경보호 ESG 경영을 실천하게 됐다.


헬스장에서 푸시업 하는 모습에 바디프로필 사진을 추천 받아 찍게 됐다. 체험 수업 때 봉(돌) 잡고 올라가는 모습에 폴댄스와 클라이밍을 권유 받았다. 막상 수강료를 지불하니 팔 힘 쓰는 건 극히 일부, 다리 힘이 실력에 다리 놓더라.


그래도 괜찮다.


두 발 달린 동물에겐 날개를 주고

윗니 없는 동물에겐  뿔을 주었듯

틀어진 골반과 부실한 다리인 내겐,

신은 팔힘과 악력을 주었으니.


장바구니 세 번 나를 걸

한 걸음에 끝내도록,

악으로 버티지 말고

악력으로 삶을 영위하라고

오른손이 모르게 왼손도 주었으니


파리의 여인은 못 되더라도

팔위의 여인은 되었으니


'나'라는 사람,

뚜껑 열어보니 이제 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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