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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1. 2022

지구(력)에서 살아남기, 유산소에 저축

마흔까지 입에 달고 산 단어는 "피곤”이었다. 몸의 디폴트는 '피곤', 덮어쓰는 게 '책임감'인 삶. 운동을 시작하면서 ‘유산소’ 말도 배웠다. 유산소는 이름 그대로 산소를 태우는 거다. 산소 없는 운동도 있나, 라고 따지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나 보다. 최근에는 유산소와 무산소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하니. 산소를 완전히 태운다는 측면에서 유산소운동 하면 보통 걷기, 달리기, 수영, 자전거, 줄넘기를 떠올린다. 통상 다이어트나 체력에는 유산소, 근력 강화에는 무산소운동을 한다. 똑같은 운동이라도 나의 기초체력에 따라 유산소와 무산소가 갈린다. 시대가 바뀌고 트렌드가 변하고 산소가 뒤집혀도 흔들림 없는 진리 하나, 유산소 운동을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는 사실.         


내가 택한 유산소 운동은 달리기다. 인간이 사냥하면서 쫓고 쫓길 때 쓰던, 진화와 함께한 운동 말이다. 학창시절 가장 도망치고 싶던 순간도 오래달리기였으니 진정 진화 동물인 셈. 20대는 특이한 임신과 출산으로 내 무릎은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통증~’ 노래를 불렀다. 30대는 골감소증에 틀어진 골반, 물러터진 허벅지로 팔자걸음이 심했다. 40대에 들어선, 목부터 허리까지 급한 불 끄느라 근력운동에 신경썼다. 골골대던 신체 부위를 근육으로 땜질한 후 도전한 유산소 운동이 달리기다.      


걷기는 집안일이나 회사 다니는 데 뭘 또. 자전거는 게을러 반려동물도 못 키우는 판에 자전거까지 애지중지? 종일 컴퓨터와 씨름했던 구부정한 자세를 또? 가슴 열기에도 바쁘다(자전거 가격에도). 수영은 물 공포증에 맞서 화이팅 하고싶지 않다. 빨래도 귀찮은데 탈수기를 또 돌리나. 줄넘기는 점프의 효과가 큰데 콘서트 현장에서 할 일이다. 하여, 내 몸과 정신머리도 뜯어고칠 겸, 일상 패턴에도 거스를 겸, 달리기를 선택했다. 대부분 앉아 지내고 돌발 상황이 많은 업무라 굵고 짧은 한 방이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골반을 중심으로 엉덩이, 허벅지, 배, 허리 근육을 주로 쓴다. 그야말로 ‘핫플레이스(Hot Place)’다. 뒷발이 힘껏 차 주어야 다른 발이 추진력을 발휘한다. 이 때 쓰는 근육이 햄스트링이다. 평소 자세에서 억압받는 곳이 핫플레이스와 햄스트링이다. 달리기는 자세를 점검해 준다. 팔자가 아닌 11자 걸음이어야 뛸 수 있다. 걸을 때 스마트폰 보던 습관도 뜯어고친다. 눈 내리깔고 바닥보던 시선도 정면으로 되돌린다. 누가 내 뒤통수 치는 건 싫어도 달리면서 포니테일(하나로 묶은 말꼬리 머리)에 얻어맞는 건 좋다. 곱슬머리에 부스스한 머릿결, 부지기수로 빠지는 머리칼이지만 달리기 헤어를 고수한다.


처음 달릴 땐 5분이 50분처럼 느껴졌다. 모래사장이나 물속, 꿈에서 뛰는 것만 같았다. 손이 런닝머신 'STOP' 버튼 주변을 얼마나 알짱댔는지 모른다. 5분을 넘기고, 10분을 넘어 40분까지 달릴 땐 눈에서도 땀이 났다. 뛸 수 있는 다리가 있음에 짭짤한 눈물이 났다. 가만보니 학창시절엔 의지를 양심에 팔아넘긴 거였다. 밖에서 10km이상 달리는 러너들에겐 코웃음 거리지만 나로선 개천에서 용 났다.


코에서 김 나는 용 된 김에 밖에서 뛰어보겠노라. 회사 동네인 원주에 '2030 러닝크루' 동호회가 있었다. '달리기 실력과 관계없이 어느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와우 슬로건도 좋다. “월요일 모임이니 구경 한번 와보세요.” 리더가 건네 준 대사까지. 주말에 분당의 나이키 할인 매장을 찾아가 러닝 전문 민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운동화를 샀다. 예습 삼아 5km도 달렸다. 월요일 7시. 스포츠 쇼핑백 끌어안고 원주행 버스에 올라탔다. 사무실에서는 설렘 레이스를 달렸다. 저녁 8시. 모임 전 단톡방에 입장하라는데 나이트클럽 입구마냥 못 들어가게 막혔다.     


“안녕하세요. 오늘 참여하기로 한 이지입니다. 기계치인지 단톡방 입장이 안되네요.”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여긴 2030 모임인데...”

"2030년이 아니고 20대 30대였나요?..."     


나이를 먹으면서 먹고 들어가는 게 있다. 서운함이다. 이 얘길 들은 직원은 전화로 말하는데 곧이 곧대로 40대라 하는 걸 보니 진짜 40대라며 서운한 위로를 했다. 무릎연골이 40년식이면 안 된다는 국제 가이드라인이 있길 하나, 40대도 중턱을 훌쩍 넘긴 것도 아닌데. 코에서 나던 김이 머리에 옮겨 붙었다. 울 아버지 메리야스처럼 어제 산 러닝 난닝구는 구멍 슝슝 뚫어질 때까지 입고 달리마. 경주마처럼 곱슬 갈기 휘날리며.


그 후로 다채롭게 달린다. 가볍게 뛰기도 하고 발뒤꿈치를 엉덩이까지 차 올려 뛰기도 한다. 팔굽혀 펴기 자세로 엎드려 달리기도 하고 발은 고정한 채 두 손이 대신 달리기도 한다. 마스크 쓰고 호수 주변도 달렸다가 마스크, 양말 다 집어던지고 집에서 창밖 바라보며 달린다.


회사 사무실이 19층일 땐 하루 한 두번 19층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부서가 62계단을 품은 3층이라 출퇴근 걷기로 유산소를 거든다. 하루 평균 ‘금강산 찾아가자 1만2천보’ 정도로. 20분 이상은 뛰어야 지방을 태워 다이어트에 효과적인데 달리기까지 눈치보고 살 일은 아니라서 삶의 박자에 맞춰 리듬 탄다.  


살보다도 체력이 우선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일주일에 150분 적당한 강도로 운동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수피의 「헬스의 정석」에서도 기초체력을 위한 트레이닝으로 달리기 같은 중강도의 운동을 20분 내외로 주3-4회 할 것을 권장한다. 유산소 운동 해 보니 지방 태우는 일보다 심폐 기능에 신비감을 느낀다.     

심장은 1초에 1번 남짓, 하루에 약 10만 번, 평생에 35억 번을 뛰면서 온몸으로 피를 밀어낸다. 심장의 대동맥이 잘린다면 피가 3미터나 솟구칠 만큼 힘찬 수축을 한다. 피가 온몸을 한 번 도는 데에 약 50초가 걸린다. 다리 근육이 수축할 때 판막 펌프질로 하체의 피가 심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건강한 사람은 어깨와 발목의 혈압 차이가 20퍼센트 미만이라고 한다(빌브라이슨의 「바디」, 160p-162p 참조).    

   

유산소운동을 20분만해도 피가 몸속을 24바퀴 도는 셈이다. 심장과 다리 판막의 성과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거들랑 발품을 팔아야겠다. 발에 매몰된 피가 중력을 이겨내고 심장으로 귀환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심장 근육이 무거워지는 ‘심장비대’라는 질병이 있다. 유산소운동 하면 심장도 바빠져 비대해질 틈이 없을 듯. 오히려 마음 근육이 비대하면 했지. 심장에 유산소 마스크를 씌운다.      


근력운동이 무게를 순간 포착하는 힘이라면, 유산소운동은 국수가락 길게 뽑는 힘이다. 호흡에 비유하면 근력운동은 '훕!', 유산소운동은 '후우~'. 달고 살던 '피곤'은 '집중'과 가스 교환 되었다. 일의 가지 수는 더 늘었는데 ‘집중 지수’가 올랐다. 그나마 있던 체력을 미래까지 끌어다 쓰는 데 낭비했다면, 늘어난 체력은 현재만을 빨아들인다.   

   

체력이 국력이란 말을 이제 실감한다. 체력이 ‘나’를 세우고 ‘나라’도 세우니.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도 유산소가 딱이다. 기대지 않고  체력으로 산다는데 자식들도 환영할 일이다. 생긴 건 아니지만 하는 짓은 산소 같은 여자다. 탄소 같은 성격이라 단속이 필요하다. 괜히 유산소운동 건너뛰어 몸에 탄소 쌓이면 누군가를 질식시킬 수도.      


무슨 일이든지 지속하는 힘이 중요하다. 그 원천이 지구력이자 유산소운동이다. 지구에서 지구인답게 살아남으려면 틈틈이 비축해야 한다. ‘관계’에서도 지구력이 필요하다. 고맙게도 지인들의 지구력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2030년에 20대 30대와 손 잡는 나이테를 그려봐야겠다.


From : 뒤끝 있는 산소 같은 여자 드림(Dream)  


호주 출장지에서 회의 마치고 노을과 함께 달리기
호주 출장 회의 전 5:30 휘트니스센터에서 달리기 + 로잉(노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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