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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쥐방울덩굴 시간

나비 집

by 이주형


쥐방울덩굴 시간

- 나비 집 -


겨울 광나무와 마주 선 시간은

우연이었다, 벽과 담 사이를

건너는 쥐방울덩굴의

이야기를 만난 것처럼!


단풍 진 나무에 걸린 폐가

어디에도 문패는 없었다

출구를 허물고 오로지

하늘로 입구를 낸 폐가에서

나비를 그리지 못한 건

이름에 침몰한 기억의

오류였다


나비 날갯짓이 오류를 역류해

난장의 벽 건너에서 온 것을

사람이 알았다면 쥐방울덩굴은

사람에게 목을 내놓지 않아도

되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각색하는 초록의 시간에도

쥐방울덩굴은 노란 담을 쌓아

나비 집을 지었다

목이 꺾일 때마다 피보다

더 찐한 독을 심장에 저장했다

나비의 주술적인 무늬는

독의 일기였다


나무마다 주렁진 폐가에서

쥐방울 속 세상을 위로하는

나비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겨울 어느 날 허기진 그림자를

접어 나비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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