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풀 꽃 시간
- 등잔꽃 -
안개가 세상을 지웠다
아장아장 뿅뿅이
신발이 낸 발자국도
교문을 향해 숨넘게 뛰는
운동화가 낸 발자국도
힘 가득 들어간
군화가 낸 발자국도
흙의 구애를 이기지 못한
고무신이 낸 발자국도
뒤축이 닳도록 길을 끌고 온
구두가 낸 발자국도
기름 냄새, 땀 냄새 가득한
작업화가 낸 발자국도
안개가 모두 모두 지웠다
입체를 고집하던 길이
안개의 평면을 받아들였다
먼지처럼 부유하던
길의 문장이 정리되었다
안개가 만든 평면 시간 속에서
문장에 쫓기던 발자국이
숨을 찾을 시간을 벌었다
창초의 모습이 안개가
물러나는 모습과
같지 않을까 생각할 때
안개가 제일 먼저 내놓은 것은
등잔을 켠 등대풀꽃이었다
꽃만으로도 등대인데
이름까지 등대인 꽃
세상 밝힐 알전구를 담은
등잔이 만든 세상 가장 따뜻한
이름인 등대. 풀, 꽃
그 등대를 따라 발자국들이
다시 길의 새 역사를 시작한다
창초의 시간이 새롭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