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초 서사
- 멸종의 의무 -
전설의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 기린은
높이를 낮추고
넓이를 넓혔습니다
사람에게 짓밟혀
추락하는 모든 이의
마음을 받아내려고 기린은
뿔을 녹여 두꺼운
잎을 만들었습니다
생명 전후의 어떤 것도
밟지 않기 위해 천지와
생사의 경계를 허문
기린의 마음은
낮고 낮게 노란
별무리를 내렸습니다
용과 사슴이, 소와 말이
각자 이름과 몸을 지우고
한 몸이 되는 시간을 지나온
기린은 땅에서도 하늘의
시간을 열었습니다
그 시간은 사막의 시간을
견디는 지혜로 멸종 위기라는
서사에 갇힌
붉은점모시나비에게
새 길을 주었습니다
나비의 이야기는 물론
기린초의 서사를 외면하는,
나조자 품지 못하는 품을 가진
변종의 사람들은 오늘도 기쁘게
멸종의 역사를 쓰기 바쁩니다
기린초가 별을 거두고
길마다 노란 리본을 피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