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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Sep 06. 2024

13. 공기 위로(慰勞)_마침 VS 마침

찰나의 순간을 마주 할 때.

마침 비가 내렸다.


한여름 볕이 너무 뜨겁다 느껴지는 오후.  


  우리의 여름휴가는 이미 시작 중이다. 전국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기사가 난무하고, 아침까지 충청도 지역에 엄청난 폭우로 피해가 있다고 온 나라가 걱정 중인 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벽같이 출발해야 했다. 아이의 방학이었고, 몇 달 전부터 예약한 숙소가 있고, 이미 휴가도 낸 상태니까.


  이름도 아름다운 마을, 무릉도원에 다다를 때쯤 영화같이 비가 내렸다. 조금 전까지 전기카트를 타면서 내 살이 녹아내리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이 무슨 상황인가? 하긴, 이 순간 걱정이라는 고립된 외로움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그와 그는 온전한 즐거움 속에 있는 듯하다!.


[무릉도원 전기카트]

작은 남자의 입장은 이해된다. 8살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동력을 이용한 기구(?) 기계를 조종하여 자연의 흐름에 저항하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 속도감, 자연 속에서 혼자만의 라이딩을 즐겼으니 오죽하랴! 5바퀴째에는 드래프트 비슷한 것까지 시도해 보는 아이를 지켜보며 마음 졸이고, 자꾸만 안전거리를 늘려가는 그의 속도에 불안함만 껴안았다.


그런 와중에 땡볕 내리쬐는 한여름 오후, 손님도 없는 시간이어서인지, 아이의 첫 드라이빙을 응원하시는 마음이신지, 서비스로 자꾸 더 돌아라고 손짓해 주시는 착한 관리자분!  마냥 해맑게 웃어드리지 못해서 미안함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계 탔다!  


 그런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차를 뚫고 내릴 기세의 비라니! 2차 흥분 도가니 아닌가!  차의 와이퍼는 최고 속도로 움직여야 했다. 그 모습도 춤으로 승화시키며 숏츠 찍고 있는 아이.


큰 남자는 어떻게 이해하지?

오늘 여행 끝에 기다리는 차갑고, 땀 흘리고, 거품 뿜어내는 시끄러운 소리로 스타트 끊는 그 노란 액체 녀석을 기대하는 게 분명하다. 그 2는 모든 노동의 대가에 그것 하나면(수량적 개념은 아님을 정확히 한다) 만족하는 욕심 낮은 사람이었으니까.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그 모습을 내가 사랑하긴 했지! 그래도 이렇게 혼자 고민에 빠졌다 생각하니 이 상황이 아주 무겁게 느껴졌지만, 다행히도 그 시간이 길게 가지는 않았다.  


 무릉도원 속의 무릉도원에 도착한 순간 그 빗줄기가 약해졌고, 햇살도 다시 앞 다투어 구름 뚫고 터져 나왔다.


여기가 진정 ‘무릉도원’이구나!


  고즈넉하던 한옥은 금세 아이소리로 시끌시끌해졌다. 아파트 10층에서 갇혀 지내던 아이는 뭐에 끌려다니듯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마당 곳곳에 피어나 있는 꽃이며, 나무들. 윗채, 아랫채 사이에 품어진 안정감 있는 마당. 서까래며, 디딤돌이며 평온 안 느낌을 주고, 방마다 다른 문 크기는 오히려 주변 모든 것과 어우러지는 듯했다.

 아이뿐만 아니라 나 역시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대문으로 돌아왔다. 비는 이제 거의 그쳤고 대문에 서서 바라본 집 전체의 정경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 드로잉화 같다곤 할까?


 그때 눈에 들어온 건 바로 그 ‘마침'이었다.
  

짧지만 굵은 빗줄기가 처마를 거쳐 타고 내려와 마당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 아래 깨진 장독도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땅에 떨어질 물줄기를 대신 몸으로 받아내고 깨진 독 틈으로 천천히 흘려보낸다. 그 사이 나의 아이가 살며시 포개진다. 처마 빗줄기는 아이의 윗도리 주머니를 거처 땅으로 내려간다!  이 순간이 사진이었고, 그림이었고, 아름다움이었다.

 마침 비가 왔고, 아이가 왔고, 내가 왔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 순간이 여기 모여줘서 기대 이상의 행복을 선물 받았다.


그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사진으로 기록한 나를 너무 칭찬한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


때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과 사건들로 위로받을 때가 있다. 분명 그 위로는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닌 누군가의 배려와 걱정으로 만들어진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위로를 받는 나는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나만을 위해 '툭' 하고 떨어진 선물 같이 느껴질 것이다. 놀랍고, 고맙고, 감사할 테지.


세상에는 정말 많은 방법의 위로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위로가 당신에게 닿는다면 그 위로에 꼭 감사 인사를 해주라고 말하고 싶다. 절대 가벼운 위로는 없다. 공기로 전하는 아주 가벼운 위로도 그 마음까지 가볍지 않음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 위로를 전하기 위해  그 누군가는 용기를 내고 실천까지 해낸 과정을 거쳤으니 말이다.


오늘 내가 받은 위로는 그는 몰랐겠지만 자각의 위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곁에 내가 있어요!"



무릉도원에서의 하루를 사랑하는 사람과 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침의 마법으로 마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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