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나의 20대를 황홀하게 불태웠던 나의 작은 교회.
어느 날 청년헌신예배를 드리며, 모든 청년들이 전교인 앞에서 한사람씩 성경구절을 암송하는 순서가 있었다.
나의 젊음을 주님 말씀 붙잡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일종의 다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청년헌신예배를 드리기 몇달 전부터 저마다 마음에 남는 말씀 한 구절씩을 정하여 묵상하고 외웠다.
그때 나는 왜 욥기를 선택했을까.
물론 욥기 23장 10절 말씀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이기도 하고, 그 말씀의 결국은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아간다는 해피엔딩이고, 실제로 욥의 결말도 해피엔딩이 아니던가.
나는 청량한 목소리로 욥기 23장 10절 말씀을 또렷이 외웠고, 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욥의 고통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철저하게 그를 내버려 두셨는지, 욥이 어떻게 울부짖었고, 주변으로부터 어떻게 버림받았는지.
나는 욥을 사랑한다.
아니 나는 욥이 애닲다.
아니 나는 욥이 싫다
아니 나는 욥을 사랑한다.
나는 욥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고난 앞에서 욥기를 읽으며 하나님과 그리고 자신과, 말씀속의 욥과 온갖 씨름을 겪은 끝에 이 책을 써내려갔다.
저자의 수준높은 묵상과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해석은 그동안 내가 욥기를 읽었던 것은, 껍데기에 혀끝만 살짝 대고 맛이 짠지 쓴지 단지도 모르고 밍숭맹숭한채로 멀뚱거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구나... 깨닫게한다.
수박 겉면을 핥아댄 수준도 아니었던 것이다.
저자는 분명 서문에서, 이 책은 욥기에 대한 학문적 주석이 아니라, 개인의 묵상이라고 명시한다.
그러나 폭풍의 한 가운데와 같은 고난의 지경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떠올릴 수 없는 묵상이며 해석이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거칠다. 날 것 그대로이다.
마치 욥의 심정을 대변하듯, 울퉁불퉁 거칠고 모난 욥기의 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인상깊었던 몇 구절이 있다.
"고난은 창조적 고통이다. 고난은 나를 파괴하고, 고난은 나를 창조한다"
고난이 나를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이 무력하게 허물어질 때, 그 허물어지고 불 타 없어져 버린 잿더미 위에 새로운 집을 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욥과, 저자는 목격했다.
그렇기에 고난은 창조적 고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고난을 통과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나만 고난 받는 것이 아님을 인지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고난 받는 타인의 얼굴이 보이고, 그 얼굴 속에서 고난받는 예수의 얼굴을 보는 이는 고난을 통과한 것이다"
고난의 이유과 과정, 결과에 대한 놀랍도록 깊은 통찰이다.
결국 고난의 최종 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그래서 저자는 소리높여 외친다
"고난에 관한 물음의 해답은 바로 나다!...나는 누군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어떤 대답인가? 내 삶은 하나님이 옳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사탄이 이겼다는 증거인가? ...고난과 싸우는 자, 고난받는 자를 위해 싸우는 자가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물으신다. 대답하라!"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고, 그 해답이 어디에 있는가
고통 가운데 울부짖는 우리의 물음의 대답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욥의 물음에 하나님은 대답으로 반응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물으셨다.
'너는 누구냐?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래서 나는 누구란 말이냐?'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강권한다. 고난에 대답하는 자가 되라고.
고난에 대답하는 자가 되라는 부르심은,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역전시킨다.
"나는 확언한다. 욥은 고통을 이겨 낸 것이 아니라, 다만 고통을 통과했을 뿐이라고."
저자는 모든 고난이 끝나고 다시 해피엔딩을 맞은 욥 스토리의 후반부에 대하여 이렇게 묵상한다.
비록 모든 것을 두 배로 채워주셨지만, 자식을 잃은 상처를 죽는 날까지 안고 살았을 것이라고. 고난은 말끔히 이겨내고 씻어내어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뎌내고 통과할 뿐이다.
사실, 호기롭게 이 책을 꺼내어 들었지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가며 읽어나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일주일이면 될 일을 3주나 끌어버렸다.
막상 읽기 시작하면 눈물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뜨겁고 어느 문장 하나 소홀히 할 것이 없는데,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기 까지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감정을 억누르고 글을 쓰기까지는 더 오래 걸렸다.
나는 지금, 아주 오랜 시간동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주 긴 터널을 아주 느리게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지나가는 이것이 터널인지 동굴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막힌 여정을 걸어가며, 나보다 먼저 이 시간을 살았던 욥을 깊이 읽는 것은, 나에겐 위로이기도 했지만, 정서적으로는 고통이었다.
자기를 정죄하는 친구들에게 항변하는 욥, 자신을 저주하는 욥, 하나님에게 질문하는 욥, 하나님에게 반항하고 대드는 욥이 곧 나이듯,
결국에는 욥에게 나타나셔서 대답대신 질문을 하시고, 욥에게 잘못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라고 꾸짖어주시고, 그에게 행복한 말년을 주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
마지막에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욥의 결말을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부디 욥처럼 경건하기를, 부디 욥처럼 고난받기를, 부디 욥처럼 행복하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한 우리는 결국, 욥이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이 겪어야 할 고난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깊이있게 해석해보고, 그로 인해 얻는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삶이라는 시련앞에 당당한 당신, 욥이 되어보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