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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an 24. 2021

성숙함은 나이가 결정하지 않는다.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1954)


프랑수아즈 사강을 처음 접한 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다. 책 제목의 말줄임표까지 책의 '제목'이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그 책을 읽고 나서 프랑수아즈 사강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좋은 책은 읽고 나서 바로 다시 읽고 싶지 않다. 그 여운이 조금 가시고 나서,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다시 읽고 싶어 진다. 그렇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를 두 번 정도 읽고 났을 때, 프랑수아즈 사강을 잊고 있을 때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봤다. 세 번째 번역본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대에 있었고, 읽게 되었다. 


'슬픔이여 안녕' 마지막 인사인지, 첫인사인지도 모를 '안녕'이란 말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제목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집었다. 처음 발간된 것은 1954년이다. 아주 신기하게도, 책에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나 하는 것들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읽을 때 거리감이 없다. 인간의 감정은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성장 소설일까, 가족 소설일까 이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10대 소녀의 감정 선이 길게 이어진다. 소녀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소녀라고 하면 뭔가 '어린' 느낌이 난다. 하지만 세실은 어리지 않다. 내가 그러했듯, 더 넓은 세상과 감정과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 그때의 내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나이에 꽉 차는 인간관계를 맺었고 그 나이 때 가능한 깊은 생각을 했다. 지금 그 때를 되돌아봐도, 내게 주어진 삶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온연히 받아들였다. 그때의 고민은 그 삶의 전부다. 


소설의 주인공인 세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너무나도 쉽게 읽히는 건 상황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현실과 전혀 다른, 프랑스 어느 휴양지에서의 이야기였음에도 그러했다. 처음 발간된 날짜가 놀라울 정도다. 반올림하면 70년이나 지난 뒤에 읽은 셈인데도 세실이 느꼈을 행복, 혼란, 그리고 마지막의 슬픔까지 다 느껴졌다. 단어로 이름 붙이지 못할 복잡한 감정까지도. 


원제가 'Bonjour Tristesse'인 것을 보면 슬픔을 처음 만난이의 인사말이다. 슬픔을 처음 마주한 세실의 말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유명한 말을 이해하려면 이 작가의 책을 읽어야 한다. 담담하지만 깊은 감정의 설명. 그리고 충분히 있을 법하면서도, 상상 속에서 이루어질 듯한 그런 상황들. 인간의 삶은 생각보다 더 영화 같고 생각의 깊이에 따라 소설보다 더 소설스럽다. 


어른이 되어간다. 책을 읽을 때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면서, 그렇게 슬픔도 마주해보고, 사랑도 마주해보고, 한 번씩 단어로 이름 지어진 감정들을 마주하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슬픔이여 안녕, 이 인사말이 마지막 인사가 되기를. 인생의 슬픔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기를. 슬픔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예상할 수 없었던 결말에 먹먹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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