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는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3편.

무의식을 다루는 나만의 방식 – 사유의 결, 통합의 구조

by 마스터INTJ



우리는 가끔, 스스로의 행동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예상치 못한 분노, 반복되는 회피, 이유 없는 공허함.


그 모든 반응은 내 안에서 비롯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정말 내 것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그때, 우리는 직면하게 된다.

“나의 무의식은 나의 것인가?”

혹은

“나는 나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나의 무의식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칼 융은 무의식을 “의식되지 않은 자아의 일부”라 말하며,

그것이 통합되지 않으면 인간은 그것에 지배당한다고 경고했다.


무의식은 단순한 ‘감정의 저장고’가 아니다.

억압된 경험, 본능, 조건화된 반응, 문화적 패턴, 상처받은 자아의 응어리.

그 모든 것이 엉켜 있는 잠재된 사유의 구조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억제하거나 부정하려 한다.

혹은 그저 충동대로 살아가며 그것을 ‘진짜 나’라 착각한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INTJ인 나는, 반응을 해석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삶을

스스로에 대한 배신으로 느낀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을 억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재배치하기로 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사유적 흐름으로 정리된다.


자각 → 명명 → 구조화 → 윤리화.


이 네 단계는 단지 정신분석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내면을 나의 언어로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며,

자기실현이란 바로 그 재설계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고개를 돌리는 사유 - 본능을 넘어 윤리로


길을 걷다 문득, 자극적인 대상이 눈앞을 지나간다.

그 순간, 시선은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누구에게나 흔한 장면이지만,

나는 그 순간을 사유의 실험실로 삼는다.


내 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자각’하고,

그 이유를 ‘명명’하고,

그것이 만들어낼 결과를 ‘구조화’한 뒤,

내가 원하는 존재상의 기준에 따라 ‘윤리화’한다.


결국 나는 고개를 반대로 돌린다.

그 회피는 억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무의식을 의식의 틀 속에 배치하는 결정’이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 올때마다,

그 즉시 - 나는 본능을 넘어, 고개를 반대로 돌리는 설계도대로 움직인다.


그 방식은 단순한 시선의 문제를 넘는다.


나는 내 삶의 더 깊은 그림자,

어린 시절 테니스를 배우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받은 감정적 상처를 기억한다.


나는 잘하고 싶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기대에 부응하는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화를 냈고,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고, 그에게도 실망했다.


그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그날, 몇 안 되는 펑펑 울었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기억을

억제하지도, 지워내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을 의식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다시 자각하고, 명명하고, 구조화하고, 윤리화한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의 그늘을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그늘을 넘어선 존재로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선택한다.


이 역시, 억제가 아니라

무의식의 윤리적 재배치이며,

그 선택은 나를 반응하는 인간이 아닌

사유하는 존재로 바꾼다.



다중 자기실현 모델과 성향 기반의 통합


이러한 방식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내향적 사고형인 나는 의미의 구조화를 통해 자기실현을 느끼지만,

감정형이거나 외향적 성향을 가진 이는

공감, 영향력, 감정적 연결을 통해 ‘자기’를 체험한다.


이때 프롬, 윌버, 가드너 등의 사유가 유효하게 연결된다.


에리히 프롬: 자기실현을 자기 본질의 자유로운 표현으로 이해

하워드 가드너: ‘자기이해지능’을 자기실현의 핵심 역량으로 제시

켄 윌버: 의식의 스펙트럼을 따라 자기(Self)의 점진적 확장을 강조


즉, 자기실현단일한 성공의 도달점이 아니라

무의식과 의식을 조율하여, 성향에 맞는 구조를 구축해가는 과정이다.



윤리는 사유의 건축이다


결국 무의식은 제거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재배치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재배치는

윤리라는 구조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윤리는 억제의 기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설계하기 위한 언어이며,

사유는 그것을 건축하는 유일한 도구다.


융이 말한 자기실현이란

바로 이 “무의식을 통합하여, 자기라는 윤리적 구조를 완성하는 일”이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여운을 담아...


"나는 내 안의 무의식을 억제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들여다보고,

나의 언어로 구조화하여

나의 윤리 위에 재배치한다.


그것이 나를 ‘반응하는 인간’이 아닌

‘사유하는 존재’로 존재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사유는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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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jpg LLM 기반 챗봇의 활용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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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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