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에 우키요에를 처음 만났다. 경기도 구리 아트홀에서 처음 본 우키요에는 강렬히 나를 사로잡았다. ‘우키요에’(浮世絵)란 일본의 전통적인 목판화(木版画)이다. 17세기 일본 에도 시대부터 시작되어 일반 서민들의 생활 모습이나 자연을 묘사한 풍속화(風俗畵)이다. 처음 본 느낌은 48장짜리 화투를 큰 그림으로 보는 것 같았다. 선명한 원색, 세밀한 선, 무슨 그림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단순함이 시선에 꽂혔다. 왜 18세기 말 인상파 화가들을 중심으로 우키요에를 모방하는 자포니즘(Japonism) 열풍이 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파고 들어온 그림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 北斎, 1760~1849)가 그린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The Great Wave off Kanagawa)였다.
이 그림은 아시아 그림들 가운데서 서양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그림 감상에 처음 입문한 내 눈도 사로잡았으니 사람들이 보는 눈은 다 비슷한가 보다. 이 그림은 우키요에의 대표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지산 36경’ 그림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 그림을 볼 때 푸른 파도의 위용에 가슴이 쩍 갈라지는 듯 압도감이 들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삼키는 악마의 아가리 같이 느껴졌다. 파도의 끄트머리를 낙지의 빨판들처럼 그려서 파도 아래의 모든 것을 다 먹어 버릴듯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한참 동안 넘실거리는 파도의 힘에 몰입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파도 속에서도 버티고 있는 세 척의 작은 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면 배 안에 있는 어부들이 일렬로 나란히 그려져 있다. 굽이치는 파도의 칼날에 쓰러지고 물에 빠지는 모습이 아니라 몰아치는 파도를 맞으면서도 자세를 나란히 하고 끝까지 버텨내는 모습으로 보였다. 저들은 거센 파도를 맞으면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 그림에 대한 간략한 영어식 이름이 ‘거대한 파도’(The Great Wave)라는데, 그 말도 맞지만, 그 뒤에 이런 문장도 추가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거대한 파도, 그리고 그 파도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
1. 오늘을 버텨야 내일이 온다
나는 실직을 한 지 7개월 만에 새로운 일터를 찾았다. 거의 도시에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한적한 시골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이전에 일하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일터이다.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시골살이, 그리고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작은 일터는 내 마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의 내 처지가 사회에 적응을 못해서 내쳐진 듯한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다. 물론 오래 가진 않고 잠시 스치듯 든 감정일 뿐이었지만, 그 감정은 자신감을 앗아가는 감정이었다. 나를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발로 밟는 듯한 생각이었다. 남들은 날개를 치며 비상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시골 한 구석에서 먼 바다만 쳐다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 때면, 속으로 생채기가 생겼다. 날개 잃은 새처럼 초라하게 하강(下降)하고 있는 듯한 나 자신이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습기를 머금은 바닷 바람을 맞으며 혼자 앉아 있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안개처럼 가슴에 스며 들었다.
모래 사장에 주저앉아서 바다에 돌을 던지던 그 무렵 나에게 찾아온 이 그림 ‘거대한 파도’는 내 마음에도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파도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버티고 있는 어부들이 나의 스승으로 다가왔다. 영차 영차 외치며 서로에게 힘을 주는 어부들의 소리는 이 고비를 버티고 또 버티면 살 길이 보인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아무리 무서운 파도라도 힘을 모아 견디다 보면 마침내 풍랑이 그치고 잔잔한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던져주는 것 같았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에세이 [흐르는 강물처럼]에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가 나온다. 편지를 쓰던 할머니는 손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어.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거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길은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나에게 닥치는 실패와 좌절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는 데서부터 내일의 문을 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내 인생을 집어삼키는 파도에 휩쓸려 버린다면 새로운 미래는 영영 맛볼 수 없다. 현재 나를 두렵게 만드는 파도가 있다면, 그 파도의 시간을 연필 깎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이 지혜롭다. 달리다가 잠시 멈추어서 연필을 깎아야 이 다음에 더 효과적인 가속이 가능하다.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인생은 언젠간 급작스런 브레이크 파열을 만나기 마련이다. 멈춤의 때를 가져야 하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챙겨야 한다. 오늘 나의 삶에 몰아치는 파도가 나를 더 예리하게 다듬어주는 칼날이라 여기면 이 태산 같은 파도를 견뎌낼 이유가 생긴다.
2. 오늘에 안주하지 말고 더 치열해야 내일이 온다
그렇다면, 파도를 견디는 시간 동안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 '버티는' 자세는 오늘을 지탱하는 힘일 뿐 내일을 여는 열쇠는 '어떤 모습으로 오늘을 살 것인가?'에 달렸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1775-1851)의 그림에서 찾았다. 낭만주의 시대의 화가 윌리엄 터너는 영국의 20파운드짜리 지폐에도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영국의 대표 화가이다. 그가 그린 풍경화는 후대의 풍경화가들에게 교과서처럼 여겨진다.
터너는 인상주의가 태동하기 40-50년 앞서 빛에 대한 치열한 탐구를 했고, 그 노력을 그림 속에 불어 넣었다. 그는 화실에만 머무르기 보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대자연에 가득한 광채의 효과들을 관찰했다. 그러면서 사물의 본질과 자신의 감정까지 그림에 담으려고 했기에 추상주의와 표현주의에도 영감을 주었다. 그가 그림 한 장에 얼마나 정열을 쏟아 부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유명한 작품 '눈보라-항구 어귀에서 멀어진 증기선’(Snow Storm-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 이다.
이 그림은 자세히 안 보면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한참 살피면 회오리바람같이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보인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눈과 파도의 포말들이 뒤엉켜 돌아가고 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광풍이 몰아쳐서 모든 것이 다 붕괴될 듯 하다. 그런데 그림 한 가운데 희미하게나마 돛대가 보인다. 배의 형상은 분간하기 어렵지만 돛대를 보고 “이것이 배겠구나.” 하는 추측이 된다. 이 그림 속에서 눈보라의 무서운 에너지가 느껴지지만 그 가운데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도 나아가려고 분투 중인 배의 꿋꿋한 기상도 마음에 다가온다.
이 그림은 원제목이 무척 길다. ‘눈보라-항구 어귀에서 멀어진 증기선. 얕은 바다에서 신호를 보내며 측심줄(lead line)로 깊이를 재는 중. 이 작품의 저자는 에어리얼(Ariel)호가 해리치(Harwich)를 떠난 그날 밤, 이 폭풍 속에 있었다. 1842’.
윌리엄 터너가 이렇게 그림 제목을 길게 정한 데는 사연이 있다. 제목 속에 얘기한 그대로 터너는 ‘에어리얼(Ariel)호’라는 증기선을 타고 영국 동부 해리치(Harwich) 항구를 떠나던 중 거대한 폭풍을 만났다. 그런데 터너는 폭풍이 불자 선원들에게 자신의 몸을 배의 돛대에 묶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약 4시간 동안 돛대에 묶인 채 눈보라와 파도를 온 몸으로 견디며 폭풍의 소용돌이를 관찰했다. 그는 이 엄청난 광경을 후에 화폭으로 옮기기 위해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자연의 힘과 인간이 느끼는 공포 등 모든 감정들을 실제로 체험해보고자 한 것이다. 그 때 그의 나이는 무려 67세였다.
나는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 스토리를 생각하면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작품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릎쓰고 온 몸을 거센 바람과 파도의 물살에 내 던진 것이 아닌가! 자연의 파괴적인 힘을 체험하기 위해, 눈보라 가운데서 느껴지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을 실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몸이 부서질듯한 고생도 마다 하지 않은 터너의 장인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이 모습이 내가 인생의 거친 풍랑을 통과하는 태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도전을 받는다.
인생의 풍랑이 몰아칠 때, 조용히 웅크리고 견디는 것만으로도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웅크림만으론, 인내하는 것만으론, 고통의 순간은 지나갈 수 있지만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는 없다. 터널을 통과하는 정도까진 가능하겠지만, 터널 너머에 있는 찬란한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들 순 없다. 더 높이 날아 오르는 새처럼 비상하기 위해서는 연필심을 더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 더 멀리까지 달리기 위해서는 보폭을 더 넓혀야 한다. 이전에 하던 행동에 변화를 가해야 하고, 예전의 모습에서 한 차원 더 진보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앉았던 편안한 소파에 안주하고 있다면, 나 자신을 더 성숙시킬 순 없다. 과거의 성취에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다면, 새롭게 변신할 기회는 잡기 어려운 법이다.
윌리엄 터너의 경우, 그대로 눌러 앉아만 있어도 이미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타고난 그림 천재였다. 이발소를 운영하시는 아버지의 가게에서 이미 10살 이전부터 손님들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14살 때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니, 그야말로 천재 탄생이었다. 약관 21살 때 그의 그림 ‘바다의 어부들’을 전시했는데, 한 평론가는 “터너가 천재인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27세에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고, 교수가 되어 가르치고 29살 때에 개인 화랑을 개업했다. 남들이 평생의 목표로 삼는 것들을 터너는 20대에 다 성취한 셈이다.
그렇게 일찌감치 모든 것을 이룬 터너였지만,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림 연구에 치열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물을 묘사하는 데서 더 나아가서, 빛의 변화와 색채의 다채로운 사용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림에 담는 것까지,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했다. 게으른 천재가 아니라 일생 동안 노력을 지속하는 탐구 정신을 가졌기에 거장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끈질기게 파고 드는 데는 적수가 없는 법이다.
3. 오늘 한 뼘이라도 전진하면 내일이 온다
또 하나, 내가 나아갈 방향과 삶의 자세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 준 작품을 만났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갔을 때 눈길을 사로잡은 그림이다. 미국의 국민 화가라 불리는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1917-2009)의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였다. 한참 보는데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 자리에서 검색해보니,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 중 하나라는 소개가 있었다. 이렇게 유명한 그림을 내가 몰랐구나 싶었다. 이 그림이 허구의 세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인 것을 알았을 때, 왜 내 마음이 이 그림 앞에서 움직였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왜 미국인들이 이 그림을 좋아해서, 이 그림의 배경 현장인 농장과 집이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올슨(Christina Olson, 1893~1968)이다. 그녀는 미국 메인(Maine) 주 커쉬윅(Knox County, Cushing)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다리 근육이 약화되는 마비성 질환을 앓아서 20대 후반부터는 혼자서 걸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휠체어 사용을 거부하고 손과 팔로 몸을 끌면서 이동하는 걸 선택했다.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는 1939년부터 매년 여름철에 이 곳에 와서 휴양했다. 와이어스는 창 밖으로 농장 마당을 보다가 멀리 자기 집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기어가는 크리스티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필사적으로 집을 향해 기어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와이어스는 강한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와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의 강인한 정신력에 감동한다.
그녀는 종종 말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해. 몸은 불편하지만 내가 지킬 수 있는 집과 땅이 있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것도 싫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와이어스는 크리스티나가 자기 연민을 품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런 와이어스의 마음은 크리스티나에게도 전달되었다. 크리스티나도 와이어스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앤드루 와이어스는 내 고통을 보지 않고 내 힘을 본 사람입니다”. 앤드루 와이어스는 크리스티나의 허락을 받고 땅을 기어서 집으로 가는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옮긴다. 와이어스는 이 그림을 통해서 어떠한 제약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품이 마음을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삶의 형편이 다르지만 저마다 나름대로 한 가지 이상의 불편함과 결핍,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걱정거리와 환경의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 크리스티나 같이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황은 최악의 고통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정신력을 소유했다. 자신의 질병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고통을 헤쳐 나가는 그녀의 의지가 화폭을 통해서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이다.
기어서 저 멀리까지 언제 도착하겠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기어가기에는 너무 멀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인내하면서 한 치 한 치 움직이다 보면 언젠간 집에 도달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고지에 오른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이 아무리 척박할지라도, 내가 가진 것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전진하면 어느새 꿈은 현실로 변할 수 있다. 그 날 이후부터 땅바닥을 기어서 이동하는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되었다. 땅바닥을 기어서라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그녀의 용기가 내 마음에 강한 도장을 찍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속에서도 한 걸음씩 내딛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가왕 조용필의 노래 ‘고독한 러너’(Runner)는 이렇게 읊는다.
지쳐 쓰러져도 달려가리라 푸른 바다에 파도가 되어
우리 인생이란 머나먼 길에 나는 고독한 러너가 되어
아침 햇살에 솟아오르고 저녁 노을에 지는 날까지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뛰어가리
이 노래 가사처럼 나는 매일 푸른 바다를 본다. 거의 날마다 동네 바닷가를 걷는다. 바닷가 바위 위에 잠시 앉아서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발 앞에서 파도가 철썩 철썩 밀려온다. 파도는 저 멀리까지 밀려 갔다가 다시 우르르 달려와서 바위를 때린다. 매일 파도에 휩쓸리는 바위는 조금씩 깎여져 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바위는 변형되고 있다. 매일 몰아치는 물살의 힘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다.
나는 지금 세월을 죽이고 있지 않다. 별 볼일 없이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 않다. 남들이 알아주는 성과는 없고, 세상이 인정할만한 성취는 없을지라도, 알게 모르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매일 한 뼘씩 자라가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날마다 성장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지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바위를 깎는 물살처럼 언젠가는 열매를 거둘 것이다.
호쿠사이의 어부들처럼 오늘을 버티고, 터너처럼 폭풍속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크리스티나처럼 기어서라도 계속 전진할 것이다. 지쳐 쓰러지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갈 것이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더라도 나는 고독한 러너로서 내 길을 달리면 되는 것이다. 매일같이 묵묵히 달리다 보면 아침 햇살이 찬란히 떠오르는 아침도 문득 내 앞에 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