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안미옥
작년 연말, 약 스무 명이 모이는 그룹에서 선물 교환을 했다. 그야말로 누가 받을지 모를 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연령은 내 또래였지만 성별과 직업들이 다양하니 모두에게 어울릴 만한 선물을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책상 위의 먼지나 자잘한 쓰레기를 청소할 수 있는 소형 청소기를 가져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로에게 알맞고 필요한 선물들이 주인을 찾아갔다. 그 센스와 타이밍들이 참 놀라웠다. 이 날 받은 나의 선물은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바로 이 책이었다.
"제목에 끌려 고르게 되었는데, 이 책이 당신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하나님도, 우리 자신도, 타인도 걸어가는 2025년 되길 축복합니다."
책과 함께 있는 손글씨 카드에 적힌 문장. 선물을 준비한 사람을 보니 너무나 그다웠고, 그 마음이 뭉클했다. 무엇보다 그를 이끌었을 제목에 나도 마음이 끌렸다. 조금 더 사랑하는 쪽이라니. 뭔가 따뜻했다.
하지만 작가는 다른 제목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작은 반전이다. 이 책은 아이 '나무(별명)'와의 육아 에피소드와 그 가운데 느낀 것들을 풀어낸 에세이다. 처음에는 '어머니'로서의 이야기 위주일 것 같아 갸웃했지만, 읽으면서 깨달았다. 육아 스킬이 아닌, 아이를 대하는 '사랑과 사람 이야기'임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들. 시인과 작가로서 글과 문장을 대하는 태도들을 보면서 더 공감이 갔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감동으로 대하는 모습이 참 부럽고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는구나. 서툴고 흔들리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도전이 생겼다. 완벽을 목표로 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감사와 행복들부터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못한다는 실망감 없이, 좌절 없이, 그저 할 수 있을 때마다 연습을 하는 나무를 보며 세상의 모든 일이 사실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좌절하고 낙담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뿐 정작 뛰어드는 일엔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리고 날마다 조금씩 연습해 보는 것. 넘어지면 내일 또 해보면 되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무겁게 나를 짓누르던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_'제자리 뛰기 연습' 54쪽
ㅡ엄마, 햇빛이 눈을 가렸어.
햇빛 때문에 눈이 따갑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햇빛에 저절로 눈이 감기니 마치 손으로 두 눈을 가리듯이 햇빛이 눈을 가렸다고 하는 것이었다. 대상을 향한 아기의 태도는 참으로 맑고 아무런 장식이 없다. 있는 그대로 대상을 만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다.
_'낯선 풍경과 함께 살기' 135쪽
매일 나무와 있다보니 나무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것 같다.
_'나무 일기' 210쪽
ㄴ세상을 보는 작가의 또 다른 눈. 그의 아이. 아이의 순수한 마음은 물론, 아이를 통해 교훈을 얻는 열린 마음 덕분에 나도 따뜻해졌다.
손을 풀고 그저 담담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면 떠오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자. 나는 쓰면서 나와 세계를 더 들여다보았고 내 삶을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삶으로 두지 않았다. 붙잡았다. 견고한 악수처럼. 그 시간을 믿어보자._'상자가 생기면 일단 한번 들어가본다.
_시작은 늘' 115~116쪽
생각해보니 나도 처음부터 시가 좋아서 시를 쓰게 된 건 아니다. 시 읽기가 재밌었다. 알 듯 모를 듯 어려운 그 세계가 재밌어서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허수경을 읽고, 김행숙을 읽었다. 김혜순을 읽고, 진은영과 이장욱을 읽었다. 이원을 쓰고 배웠다. 그러다보니 계속 쓰고 싶었다. 쓰는 일은 좋음보다 어려움에 더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안 써져서 울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지만, 재미있다. 좋은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좋은 시를 써보려고 했던 모든 시간이 시를 더 좋아하게 만든 것 같다. 이제는 조금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다. 시가 좋다고. 시 쓰기가 제일 좋다고.
_'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는 것' 141~142쪽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지 않고 늘 정신없이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가만히 침잠하여 고요하게 어떤 생각을 하거나 파고들거나 쓰거나. 그러고 싶다.
_'나무 일기' 203쪽
ㄴ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고민과 깨달음도 곳곳에 있었다. 여기에 공감하는 걸 보니 역시 나도 글을 좋아하는 사람인 걸까. 그리고 나만 이런 고민을 한 게 아니구나.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내가 점점 더 원하게 되는 것은, 벽을 세워둘 수 있는 곳에 커다란 창문을 달고 부드러운 천으로 된 커튼을 다는 일인지도 모른다. 각각의 자리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하게 차단하지 않는 것. 끊임없이 닿으려고 하면서 치열하게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매일매일 새로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관계나 삶에 깊어지고자 할수록 창문과 커튼 사이의 공간만큼이라도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오히려 깊어지고자 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을까.
_'커튼' 169~170쪽
세상엔 처음 보는 것, 궁금한 것이 가득한데 아는 것만 있는 세계 속에 계속 두는 것이 미안하기 때문이다.
_'나무 일기' 199쪽
ㄴ서로를 존중하는 '거리',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힘을 내는 것'.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그 사이에 필요한 '용기' 등... 요즘 내 고민거리를 두드렸던, 그래서 더 와닿은 문장이다.
조금이라도 읽고 나니 마음이 좀 자유로워진다. 어른 혹은 양육자는 아이를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다만 환경을 조성해주는 존재이고, 아이는 스스로 배우고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어쩌면 어른보다 더 훌륭한 존재인데, 어른은 그것을 자주 망각한다. 어린아이들에게서 배울 것이 훨씬 많다. 그것을 생각하면 부담되고 힘들었던 마음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커진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서툴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나도 마찬가지.
_'나무 일기' 202~203쪽
ㄴ서툴다. 부담스럽다. 부족하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지만, 충분히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배우고 있다, 설렌다, 할 수 있다...라고. 이런 게 문장의 힘 아닐까. 충분히 긍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바꿀 수 있고, 그것을 읽으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원동력도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