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터치(Touch)가 있는 곳

서울 성동구 '센서리커피 로스터스'

by grape

날씨가 부쩍 더워졌다. 바깥 풍경의 명도도 더 높아진 느낌. 여름이 왔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은 늘 새삼스럽다. 사계절의 변화를 매년 겪지만 매번 놀란다.


테라스나 야장 등 바깥에서 즐기는 콘텐츠들의 제철이다. 나 또한 매일 아침마다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한다(혼자만의 넋두리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오늘, 금요일에는 다른 곳에도 나가보고 싶었다. 원래 다른 동네 카페나 전시 등 놀거리를 찾아 혼자서라도 놀고 오곤 했는데. 한동안은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서만 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다시 예전처럼 나가보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결국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동네'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가까이에서도 나를 즐겁게 만드는 활동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싶었다. 작은 규모지만 나름 테라스 자리도 있던 게 기억나는 '센서리커피 로스터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어떻게 처음 알았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서글서글한 사장님부터 커피 메뉴까지, 그저 좋은 인상들만 남아있었다.



읽고 싶은 책과 노트를 챙겨서 향했다. 시장을 거쳐 동네 안쪽에 있는 '센서리커피 로스터스'. 오늘은 마치 작은 아지트처럼 느껴졌다. 최근 어떤 일로 커피에 대해 알아봐야 해서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었다. 그때 주워들은(?) 관련 용어들이 있어, 이곳의 메뉴판에 적힌 내용들도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 원두 종류와 원산지, 로스팅, 추출 방법 등. 카운터 석에 앉았을 때 보이는 여러 도구들도 몇 가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드립커피를 잠시 고민했지만, 시그니처 메뉴인 라테를 주문했다. 두통, 불면 등 커피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최대한 연하게 마실 수 있는 아이스라테만 찾았던 예전처럼.



이곳은 커피를 주문하면 먼저 물 한 잔을 내어준다. 그 물의 종류는 네 가지나 된다. 산미, 바디감 등 그 특징들이 다르다. 원두와 메뉴마다 어울리는 물로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감각적(Sensory)'인 곳이다. 내가 이곳을 남다르게 기억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내 방에서도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는 데도 왜 이런 카페의 느낌이 나지 않을까. 맛과 공간 등을 일반인인 내가 흉내 낼 수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몰입도라는 것이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오늘 이곳에서도 맛있는 커피,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들이 왠지 내 기분에 꼭 맞았다.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카운터석 네 개, 4인용 테이블 한 개.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카페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내 눈에 보였다. 한쪽 벽면에 진열된 원두를 보려면 안쪽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손님들이 앉은자리 뒤쪽의 좁은 공간을 지나야 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흔쾌히 자신의 공간, 반대쪽에 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커피 머신과 잔 등 온갖 도구들이 놓인 곳이다. 공연 무대의 백스테이지, 식당의 주방과 같은 프라이빗한 공간을.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만 내게는 그저 놀랍게만 보였다.



이밖에도 정감 있는 장면들이 지나갔다. 단골인지 그가 선호하는 원두를 먼저 언급하며 다음번에 챙겨놓겠다고 하는 사장님, 지난번에 딸이 주문해 줘서 메뉴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맛있어서 또 왔다는 손님, 예전에 찾아왔던 손님과 그의 반려견 이름을 기억하며 살갑게 불러주는 직원분까지. 그야말로 커피 향은 물론 사람 냄새도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모두 약 1시간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최근 '터치(Touch)'라는 단어를 자주 말한다. 내 식으로 굳이 의역하자면 '사람의 온기'다. AI의 영향력이 남다른 지금, 글쓰기나 말하기를 웬만한 사람만큼 해내는 결과들을 보며 무섭고 씁쓸하다는 이야기를 지인과 나눈 적이 있다. 하지만 결론은 '아직 멀었다'였다. '터치'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사람의 온기, 마음은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완벽히 구현해내지 못할 거라고 믿는다. AI가 쓴 소설에 대해 '아직 자기 직업은 안전하다'라고 했던 김영하 작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커피 또한 무인 로봇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만 할까. 어쩌면 나는 커피와 함께 하는 기분전환도 그렇지만, 터치가 이루어지는 어떤 현장을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자니까 냈던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