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pe Oct 11. 2022

잘 보이고 싶은 것보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

소시지 야채볶음, 달걀말이, 콩나물무침

최근에 부쩍 친해진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교회에서 만나 처음 인사한 때는 몇 년 전이지만, 우연한 기회로 올해 하반기에 같은 그룹이 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독립해서 지내고 있으며, 요리를 하기보다 단순히 끼니를 채우기만 한다는 근황을 들었다. 그때 든 생각. '엄마들이 걱정하기 딱 좋은 식생활이네!'


이때부터 감히 오지랖 발동. '집밥까진 아니어도, 직접 음식을 차려다 먹여주고 싶다.' 이 오지랖은 내 공간으로 초대해 눈앞에서 요리해 만들어주는 그림보다, 밑반찬 등을 바리바리 챙겨주고 싶은 그림에 더 가까웠다. 마치 엄마가 자식 챙겨주는 것처럼. 잘 보이고 싶은 것보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 하지만 밑반찬을 챙겨주는 건 끼니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부담감을 줄 것 같아서, 한 번에 끝낼 수 있도록 도시락 형태로 결정했다.


레시피를 안 보고도 만들게 된 메뉴들이 있다. 바로 소시지 야채볶음과 달걀말이. (기본 재료부터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누군가가 정해준 양을 따르지 않아도, 그때그때 내 맘대로 양과 간을 조절해가며 만들 수 있는 메뉴. 비교적 간단하고, 많이 해본 만큼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이 메뉴들을 도시락에 넣어보기로 했다.


먼저 소시지 야채볶음. 먼저 식용유를 두른 팬에 다진 마늘을 볶아 향을 낸 다음, 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자른 파프리카와 양파를 넣어 함께 볶는다. 노랑, 빨강 파프리카를 반씩 써서 알록달록한 색감을 내주었다. 그다음 칼집을 내어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놓은 비엔나소시지를 넣어 함께 볶는다. 한번 데치면 소시지를 만들 때 넣는 첨가물이 빠지고, 식감도 보다 탱글 해진다. 야채와 소시지가 어느 정도 익은 듯하면 케첩, 간장, 물엿을 넣어 간을 맞추며 볶아준다. 이때부터 소시지 야채볶음의 맛있는 빛깔이 살아난다.


그다음 달걀말이. 잘게 썬 대파와 스팸을 달걀물에 넣고 함께 풀어준다. 이때 우유를 약간 섞어주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다. 스팸의 짠맛이 있으니 너무 많이 넣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다음 달걀말이용 작은 팬을 꺼낸다. 네모나고 둥근 각이 있기 때문에 달걀을 말 때 보다 수월하다. 하지만 달걀말이를 할 때마다 늘 긴장한다. 풀리거나 찢어지지 않을까, 속이 안 익지 않을까. 약한 불에 차분하게 기다리며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달걀말이다. 이때 내 성격이 참 급하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무사히 다 말고 나면 우선 안심. 뒤집개로 살짝 눌러가며 속까지 익도록 기다렸다. 나중에 접시에 덜어 전자레인지로 한 번 더 익혀주었다.


마지막으로 콩나물무침.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하얀 콩나물무침이다. 냄비에 물을 담고 끓기 시작하면 소금을 넣고, 씻어놓은 콩나물을 넣어 2분 정도 데쳐준다. 중요한 건 뚜껑을 계속 열어두는 것, 그리고 처음에 살짝 숨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뒤적거리며 골고루 데쳐주는 것. 데친 후에는 채반에 받쳐 물기를 빼고 한 김 식힌다. 그리고 다진 파, 다진 마늘, 간장을 넣고 털어주듯이 무쳐준다. 그다음 필요한 간은 소금으로 맞추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무치며 마무리한다.


이제는 플레이팅. 일회용 도시락 용기의 반이 되는 공간에 먼저 밥을 담고, 나머지 공간에는 반찬 컵을 써서 소시지 야채볶음, 달걀말이, 콩나물무침을 담았다. 마지막 한 칸은 단무지와 김치를 작게 잘라서 함께 담았다. 알록달록한 반찬들의 모습에 뿌듯. 이후 설거지까지 마치니 거의 두 시간이 훌쩍. 이전 어느 예능에서 15분 만에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던 셰프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도시락을 다 만들고 나서는 냅킨, 나무젓가락으로 포장했다. 나름 있어 보이도록.


세 가지 반찬을 한 번에 만드려니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들었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생기고. 이렇게 집밥 도시락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단순한 것이 제일 어려운 법이라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