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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Nov 10. 2022

안 가본 곳을 다니면 그게 여행이지

(1) 센터커피, 피키니키 라자냐

11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 일정이 있어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목적지는 성수. 특히 이번 여름과 가을에 여러모로 갈 일이 많았던지라 그 매력에도 푹 빠진 동네다. 다소 공적인(?) 일정이었지만, 동네가 성수여서 나름 기대를 했다. 아예 외진 동네였으면 아쉬웠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다녀오고 싶지 않아서 주변 볼거리나 먹거리들을 분명히 찾아봤을 것이다.)


이날 나는 성수와 서울숲 지역에서 몇 군데 스폿만 둘러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했던가. 나의 계획은 역시나 멋지게 빗나갔다. (그러나 순간의 결정들은 내가 했기에 할 말은 없다.) 나의 체력이 걱정되었을 뿐, 무척 재미있었다. 안 가본 곳들을 이렇게 다녀보니 여행이 따로 없었다. 이번 글에는 이날의 여정을 나누어 소개하려고 한다.






 센터커피


예전부터 듣고 궁금했던, 서울숲에 있는 카페였다. 매년 블루리본을 받고, 갈 때마다 사람이 많다는 센터커피 서울숲점. 앞서 일정이 10시 무렵에 끝났으므로, 걸어가면 오픈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할 수 있었다.


골목골목을 지나 구경하면서 도착한 서울숲 카페거리. 매번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만 보다가, 조용한 풍경을 보니 낯설었다. 아직 열지 않은 상점들 사이, 오픈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보였다. '뭔가 새로운 나라에 와있는 기분이야.' 무작정 직진하며 신나게 걷다가, 문득 익숙한 골목이 보여 왼쪽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서울숲의 한 입구에 자리 잡은 센터커피에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서니 흰색 톤으로 꾸며진 내부가 보였다. 공간의 거의 반을 메우고 있는 카운터와 커피머신에 눈길이 갔다. (가고 싶은 카페의 오픈 시간에 가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인 듯하다.) 화이트 커피, 따뜻한 라떼를 주문하고 1층을 둘러보다가 문득 화장실을 찾았다. 2층에 있다는 말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여기가 다가 아니었구나!'




그렇게 외부 계단을 올라가 보니 더 조용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제일 맘에 들었던 곳은 바로 창가 자리. 등받이가 없는 스툴형 의자와 카운터 테이블이 있던 곳. 창가에는 서울숲의 가을 나무 풍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주문한 커피를 받자마자 다시 2층으로 조르르 올라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오픈 시간에 오니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구나.




사실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눈앞에 펼쳐진 초록 풍경과 맛있는 커피. 이따금씩 아무 생각 없이 바깥 풍경을 보며 멍을 때리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이 언제 올지 내심 초조해하며 기다리는 것보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있으니 조금씩 다른 손님들도 들어와 고요함은 사라졌지만, 짧고 따뜻했던 힐링 타임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피키니키 라자냐

이날 나의 점심은 라자냐로 정해두었다. 센터커피에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피키니키 라자냐. 예전에 서울숲 카페거리를 구경하다가 알게 된 곳이었다. 라자냐가 메인인 식당, 그것도 꽤 가격이 착한 편이었다. 사실 센터커피도 피키니키 라자냐가 아니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루트였다. 피키니키의 오픈 시간까지 기다릴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잘한 탐색과 결정이었다!


메뉴는 이곳 시그니처인 하우스 라구 라자냐로 주문했다. 그리고 외관에서는 보이지 않는, 안쪽 넓은 자리로 들어섰다. 이런 공간이 숨어있었다니! 센터커피 때와는 다르게 이미 한 팀의 손님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게 라자냐는 뭔가, 애절함이 담긴 음식이다. 어느 해 연말 모임의 저녁으로 라자냐를 먹을 계획이었는데, 그날 점심에 무언가를 잘못 먹었는지 크게 체하고 말았다. 그래서 정작 라자냐는 거의 먹지 못하고 뛰쳐나와버렸다. 그래서인지 라자냐는 내게 눈물의 아쉬움을 남긴 음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런 라자냐를 나 혼자,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니!


앞접시와 함께 나온 나이프 또한 독특했다. 커트러리를 풀었을 때 작은 손도끼(?)가 나와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이곳만의 독특함이라 생각하니 마냥 재밌기만 했다. 평소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면서, 와인이나 맥주도 시켜볼까 하는 생각도 감히 잠깐 해보았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신이 났었나 보다.


다음에는 여러 사람이 와서 다양한 메뉴를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파스타랑 당근 라페도 있다고 하니 다음에 또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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