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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다 Oct 20. 2024

운동화 쇼핑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고객님, OO원입니다~

다섯 번째였나?

아니, 벌써 여섯 번째다.

 

또 러닝화가 결제되고 있다.

 

이렇게까지 운동화 쇼핑에 진심이 될 줄 몰랐다. 인생의 대부분 신발에 큰 관심 없이 살아왔다. 구두 하나, 운동화 하나, 등산화 하나, 그리고 슬리퍼 하나. 총 네 켤레가 전부였다. 신던 신발이 닳아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 사던 게 신발이란 물건이었다. 그저 그 네 켤레로 충분했다.


하지만 달리기가 뭐라고...

평생을 유지해 오던 그 단순한 방정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첫 러닝화 구매는 족저근막염 탓이었다.

하루 1만 보도 걷지 않던 내게 족저근막염이 수개월동안 괴롭히기 시작했다. 푹신한 쿠션이 있는 운동화를 신으면 완화된다는 얘길 듣고 아웃렛에 방문해서 가장 쿠션이 좋았던 페가수스 37을 구매했다. 당시엔 페가수스 37이 러닝화인줄도 몰랐다. 미드솔 후미 디자인이 과하게 튀어나온 게 마음에 걸렸지만 발바닥 통증을 덜어주는 고마운 운동화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다 시작된 첫 달리기에서 페가수스가 없었다면 시작이 어려웠을지도 모르니 이건 우연이 아닌 필연?!


달린 지 두 달째가 되던 중 아웃렛에서 강렬한 핫핑크 러닝화,
베이퍼플라이를 만났다.

페가수스로 달리던 시절이라 베이퍼플라이는 세상 푹신하고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벼워 힘겹게 뛰던 5k도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게다가 30% 할인이라니! 빛의 속도로 결제했다. 그렇게 베이퍼플라이 Next %2가 두 번째 러닝화가 되었다. 그러나 러닝 초보가 카본 레이싱화를 신었을 때 어떤 대가가 기다리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월드레코드를 여러 차례 작성한 베이퍼플라이 Next %2는 내게 너무 과분했다. 무릎과 발목 통증의 후유증으로 100k 정도 마일리지를 쌓은 후 나중을 기약하며 신발장 한편에 고이 모셔두었다.


세 번째 러닝화 선택은 매우 신중했다.

내 발을 분석하고 러닝 레벨을 고려해서 러닝화를 추천해 주는 러너스클럽이란 곳을 알게 되어 방문했다. 30분간 오롯이 내 발을 분석하고 추천해 준 3개의 러닝화(클라우드 몬스터, 브룩스 글리세린 20, 클리프톤 9)를 신고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경험은 매우 신기했다. 그중 일상화로도 신기에 무난했던 클리프톤 9를 구매했다. 아웃솔이 넓어 착지 시 안정적이고 힐컵도 잘 받쳐주고 적절한 쿠션과 반발력을 가진 미드솔을 가졌다. 무엇보다 토박스가 넉넉해서 달리기 할 때 매우 쾌적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첫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통기가 잘 되는 현재 러닝화로는 너무 발이 시릴 것 같았다. 기존 러닝화에 테이핑을 해서 겨울을 나는 분들이 꽤 있어서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지만 마침 새로 출시한 클리프톤 9 GTX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방수도 되고 추위도 견딜 수 있는 내가 찾던 러닝화였다. '어쩔 수 없어! 발이 얼어 버리면 어떻게 달려~ 이건 겨울 필수품이야, 비 오면 여름에도 신을 수 있어!' 셀프 세뇌하며 지갑을 열었다. 반전은 클리프톤 9와 외형만 유사하지 클리프톤 9 GTX는 완전 다른 신발이었다. 기존 클리프톤 9와 동일한 사이즈였는데 토박스의 신축성이 없어 발가락이 매우 불편한 데다 방수 목적으로 혀는 일체형으로 제작되어 뻣뻣했고 미드솔도 딱딱한 느낌이라 불편했다. 신어보지 않은 신발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건 아니라는 값비싼 레슨을 했다. 내 돈...ㅜㅜ


꾸준히 달린 지 1년이 넘어서던 어느 날,
트레일러닝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우연히 보게 된 트랜스 제주 by UTMB 다큐가 시발점이었다. 길이 아닌 산길, 흙길을 달리는 그 경험은 꽤 흥미로워 보였다. 게다가 로드러닝의 보강운동으로 트레일런만 한 게 없다는 여러 사람들의 속삭임? 이 잠시 잠잠했던 신발 쇼핑의 뇌관을 건드렸다. 편집샵, 로드샵을 돌며 트레일러닝화를 시착하기 시작했다. 살로몬은 칼발에 최적화 돼 있어 내 발에는 맞지 않았고 호카의 마파테 스피드 4가 꽤나 괜찮았다. 그러다 경복궁 온유어마크에서 Norda 001을 신어 보는 바람에 망했다. Norda 001의 착용감이 너무 좋았다. 구매를 망설였다. 국내 발매가가 마파테 스피트 4의 2배 정도의 가격차라 쉽게 결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파페치에서 Norda 001이 50% 할인 행사가 뜬 게 아닌가! 마파테 스피트 4와 가격이 유사해졌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네덜란드를 출발 미국 뉴저지를 거쳐 3주 만에 내 품으로 안겼다. 영롱한 Norda의 자태를 만지작 거리며 5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한 나를 칭찬했다. Norda 001를 시험대에 올려보기 위해 한양도성순성길 20k를 뛰었다. 쫀쫀하게 산길에 달라붙는 아웃솔과 매력적인 쿠션과 반발력을 선보이는 비브람 미드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2024년 여름은 역대급 무더위가 2달 넘게 지속되었다.

조금만 페이스가 올라가도 심박수가 170을 훌쩍 넘어섰다. 덕분에 Vo2 Max가 많이 향상됐지만 인터벌 혹은 LT 훈련 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이런 고통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한 찰나! 혜자스러운 대회로 유명한 뉴발의 RYW(Run your Way) 대회 패키지가 포함된 뉴발란스 SC Trainer V3 출시 소식이 들려왔다. '대회 패키지를 껴 주고 뉴발 할인 쿠폰이 있으니 거저야! 초보 러너도 부담 없이 신을 수 있는 카본화 인 데다 전천후 러닝을 할 수 있는 슈퍼트레이닝화니 좋을 것 같아!' 어느새 사야만 하는 이유를 가득 되뇌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위기는 선발매 당일 이 제품을 사려고 새벽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판매 시작 시간에 맞춰 집 근처 매장에 잠시 가 봤다가 기나긴 줄을 바라보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오후 4시 즈음 대기 쿠폰을 뽑고 정말 마지막 남은 민트색 러닝화를 업어왔다.



내 러닝화 쇼핑은 언제 끝날 것인가?

세상 쓸데없는 질문이다.



이건 비밀인데...

얼마 전에 다녀온 오사카에서

젤카야노 31을 모셔왔다.

명분은 클리프톤 9의 마일리지가 꽤 쌓여서 대체...(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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