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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플레이 데이트

by 알럽ny

유진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름이가 유진이랑 통화하고 싶다고 해서 연락드려봐요.



유진아~~ 이리와봐. 아름이라고 알아? 그 어머니가 이렇게 문자를 보내셨어.



응 엄마! 아름이도 휴대폰이 없어서 내가 엄마 전화번호 종이에 적어주고, 아름이도 이렇게 자기 엄마 번호 적어줬어.




꼬불꼬불 쓰여진 아름이 엄마 : 010-4**2-**** 이라는 메모. 꼬마들이 어쩜 이렇게 귀여운가 싶어서 지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둘이 전화를 할 수 있게 아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고 인사를 하고 잠시 이야길 나누고 나서 유진이를 바꿔주었다. 아름이네도 같은 라떼캐슬에 사시고 워킹맘 이었다. 어색하긴 했지만 워킹맘이라는 말에 안도감을 느꼈다.



지수는 학부모님과 이야길 나누는 상황이 늘 어색했다. 지수나름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부족한 시간과 자신의 체력적인 한계로 제대로 유진이를 양육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없었다. 가끔 만난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 가서도 최선을 다해서 어울리려고 노력했지만 모임에 갈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유치원 엄마들이 나눠주는 교육정보와 남편과의 일화, 가족 여행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쩔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고는 했다. 구김없고 친절한 분들이었지만 지수와는 다른 상황으로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이나 양육지원, 혹은 남편이 '사'자 직업을 가진 분들이라 여유가 있었다.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도 양육의 도움도 받지 못 하는 지수는 모임 이후 돌아오는 길에 늘 '우리 부모님이 여유가 좀 있으셨다면,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남편이 돈을 잘 벌고 내가 주부로 지낼 수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지고는 했다. 그리고 지수는 친구엄마들이 아이를 살뜰히 챙기고 다정하게 대해는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늘 피곤하고 시간에 쫓기는터라 아이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인 적이 언젠지, 피로에 지쳐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낸 짜증이 떠올랐고 유진에게 부족한 엄마라서 너무 미안해졌다.




유진아, 아름이 좋아해? 아름이랑 놀면 재미있어?


응 나 아름이랑 노는 거 재미있어. 좋아해.



유진이는 활발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아이다. 하지만 요즘엔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노력을 해서 플레이 메이트를 만들어주어야한다. 그렇게 해보려 몇 번 시도를 해보았으나 어머니들의 대화에 끼이기도 힘들었고 시간과 비용도 많이 쓰여서 부담스러워졌다. 하지만 혼자 노는 유진을 볼 때마다 내가 더 노력해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엔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아름이 어머니 혹시 주말에 괜찮으실 때 저희 집에 아름이랑 같이 놀러 오실래요?


말씀 감사해요~ 아름이도 좋아하네요~ 그런데 이번에 같은 반 친구들이랑 모여서 키즈카페에 가기로 했어요. 혹시 다음주 일요일에 괜찮으시면 같이 가실래요?




지수는 아름이 엄마가 고마웠다. 아는 엄마 하나 없는 지수와는 달리 아름이 엄마는 아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같은 워킹맘으로서 대단하게 느껴졌고, 보통은 끼워주지 않는데 쿨하게 자신을 초개해준 것에 감동했다.



유진이랑 제가 가도 되는 걸까요? 유진이는 너무 좋아해요. 정말 감사해요.



아이들끼리 친해지고 즐겁게놀면 좋죠. 그럼 다음 주에 뵈어요~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날이 왔다. 플레이데이트를 하는 날. 친해지기까지 오래 걸리는 지수의 성격상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2년 전 유치원 때 딱 한 번 가본 이후 학부모 모임은 처음이다. 더욱이 6년간 다닐 초등학교 학부모님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다. 좋은 이미지를 주고싶었다. 무슨 옷을 입어야하지? 어떤 말을 해야하지? 내가 실수해서 유진이가 아이들과 못 놀게되면 어떻게하지? 긴장과 걱정에 시간을 보냈다.



옆동네에 사는 후배에게 전화했다. 후배는 원래도 사교성이 좋은 편이고 또 휴직 중이라 아는 엄마도 많았다. 후배는 지수의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무슨 걱정이냐고 그냥 아무거나 입고가서 지금 자기한테 말하듯이 말하면 된다고 했다. 지수는 면접보다 더 긴장이 되는 것 같다며 우스게 소리를 했다.



언니! 워워~ 가서 만나보고 나랑 안맞으면 다시 안보면 되지. 꼭 잘 보여야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 큰애보니까 3학년만되두 내가 친한 엄마 딸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랑 놀아요!



차에 유진을 태우고 지수는 10년도 더된 칸타페를 몰고간다는 사실이 신경쓰였다. 초등학생이 되고 아이는 종종 우리는 언제 새차를 사냐고 물었다. 친구들 아빠차 예쁜 것 많더라며 개구리 눈을 한 차도 있고, 커다랗고 검정색인데 뒤에 X랑 7이 쓰인 차고 있더라면서 자기는 그중에 하얀차가인데 천사 날개가 붙어있는 차가 좋다고 했다. 지수는 긴장되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유진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유진아 오늘 친구들 만나는 키즈카페는 빌려서 우리끼리만노는 곳이래. 이런 곳에 처음가본다 그지? 재미있게 놀다 오자~ 가기 전에 빵집에 들러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을 간식을 사가지고 가자. 유진이 무슨 빵 먹고싶어?




오 우리끼리만!! 너무 신난다. 엄마 나는 블루베리 베이글 먹고싶어. 그리고 머그머그 피치만 마시고 싶어.




동네에서 핫한 쌀베이글 집에서 베이글을 한 박스 사고 잠자고 있는 뇌를 깨우기위해 옆집에서 2500원 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목음 마시니 반짝하고 정신이 들면서 오늘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레이데이트 장소에 도착했다. 키즈카페는 깔끔하고 넓었고 아이들은 처음 봤지만 금새 친해져서 즐겁게 놀았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지수는 처음 뵙는 분들이라 어색했지만 노력했다. 여름방학, 아이들 학습, 동네 맛집 이야기 등의 화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지수는 마음이 울쩍해졌다. 여름방학에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유진이를 빼고 해외 영어캠프에 간다고 했다. 태국이 저렴해서 선택했다는 어머니, 필리핀에 간다는 어머니는 본인도 영어공부를 해볼까 한다고 했다. 한 어머니는 제주도에 한 달살기를 하러간다면서 국제학교 근처 마마네집에 렌탈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나같이 장기간 영어와 휴가를 합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지수네도 여름휴가는 늘 해외로 갔다. 고학년이 되면 영어캠프에 보내볼 생각은 했으나 저학년 때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지수가 우울한 것은 지금은 해외로 가는 며칠의 여름휴가도 어려운 상황이기때문이다. 지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인들에게 들었던 정보를 나누었다. 3시간이 지나고 엄마들과 해어졌다. 주차장에서 지수는 또한번 우울해졌다. 뱀떠, 빈츠, 아울디 그 옆에 지수의 차 칸테페. 지수는 애써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유진이를 차에 태웠다. 아이는 피곤했는지 너무 즐거웠다는 말을 하고 잠이 들었다.










아이는 잘 놀았고 어머님들도 생각보다 좋았으나 지수는 우울했다. 몸도 마음도 가라앉았다.





지수는 주눅이 들었다.

친구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들.

유진이를 이 아이들과 경쟁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들이러니 아이를 안낳지! 흥!

이게 다 오빠탓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모든 것이 원석탓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수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핑계와 남탓이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 유진이가 잠들어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혼주의자이자 심리상담전공한 고등학교 동창 현주는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주고 객관적으로 조언해준다. 취향도 잘맞아서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다. 현주도 리화여대에 진학해서 서울로 왔고 연이 계속 이어졌다.






여보세요~ 이게 누구야 지수지수수지수지 아니야?ㅋㅌ 주말에 어쩐 일이야. 주말은 가족과 함께아니야?




주주주쥬현주야. 오늘은 학모님들과 모임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야. 마음이 울쩍하여 옛친구 목소리 듣고 힘내 보려고 전화했지.




어유 그 유명한 학모님 모임 ? 우울하겠는데? 모임 다녀온 회사 동료들도 차에 기가 눌렸네, 학원에 기가 눌렸네 이런 말 하던데?




ㅋㅋㅋ 다 똑같은건가? 그럼 또 위안이 쫌 되네. 내가 너무 못나게 느껴져서 우울해졌는데 말이징! 아 요즘 너무 우울하다 현주야. 사는 개 왜이러냐. 다들 앞으로 쭉쭉 치고 나는데 나는 제자리걸음… 제자리걸음이 뭐야 뒷걸음이다.





그거 몰라?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는거? 너의 뒷걸음이 혹시 알아? 쥐잡게 해줄지! 옛다 쥐주마~ 내가 밥사줄게. 다음주에 얼굴보자. 원석오빠 잘 있지? 하루 윤허를 얻어서 연락줘.




오 내가 그럼 비싼 맛집 검색해둬야겠네! 오빠 전화온다! 연락할게~ 주말 잘보내!







언제 오냐는 원석의 전화였다. 지금 가고 있다고 대답을 하고 끊었다. 원석의 모든 것이 달갑지 않은 지수다. 지수는 다시 현주를 생각한다. 현주와 통화한 지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현주는 늘 그렇듯 지수의 목소리만 들어도 지수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지수가 힘들어함을 눈치채고 보자고 한 것이다. 자신이 겪은 일을 지수에게 고백을 해도될까? 이야기한다고 달라질 게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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