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고백

by 알럽ny


#현주와의 저녁



고등학교 동창 현주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라 대학을 다니면서 소설책을 끼고 살았다. 소설을 읽으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수는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3학년이 된 현주는 고등학교 때의 현주가 아니었다. 그간 읽어온 책들과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 방학때마다 떠난 장기간의 여행으로 지수는 넓어졌고, 사람을 이해하려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현주의 마지막 상담이 5시에 마치는 터라 현주가 강남으로 오기로 했다. 지수는 현주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BURU를 예약해두었다. 지수 회사에서 멀지 않아 먼저 도착했다. 메뉴판을 보면서 어떤 것을 시키면 좋을지 살펴보았다. 7시 까지 도착하니 알아서 적당히 시켜두라는 현주의 전화가 있었다. 현주가 좋아하는 하몽이 곁들여진 샐러드와, 엔초비 파스타, 트러플 버섯파스타를 주문하면서 7시까지 준비해달라고 했다. 현주를 기다리는 30분 동안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있으려니 마음이 쓰여서 스텔라 한잔을 주문했다.




빈속에 차가운 맥주를 마셨더니 취기가 바로 올랐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지수는 마음이 우울하고 무거웠다. 원석의 고백을 들은 후 한 달여 동안은 물속에 잠겨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잠도 잘 자지 못했고, 몸은 늘 무거웠고, 피곤했다. 업무 효율도 떨어져 며칠 전 대출 건에 반드시 확인해야할 서류를 확인하지 않는 큰 실수를 할 뻔 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자신이 검토해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자 차장님이 발견했다면 무능한 사람이란 뒷담화와 더불어 이번 인사에 또 어디로 튕길 지 모른다. 그러면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유진이는 학원에 더 오래 머물러야한다. 지수는 한숨이 나왔다. 답답했고 끝모를 삶의 과제들을 소화하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현주가 오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현주가 맞은 편에 앉아 있다.



뭐야 혼술하는거야? 안주도 없어? 이제 안주없이 먹을 나이 지났는데. 그러나저러나 너 무드는 왜이래? 너무 청승인데? 안색은 또 왜그렇구? 어제 잠 못잤어?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서 반가운 마음이 드러나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현주가 줄줄이 쏟아내는 말에 지수는 따뜻함을 느꼈다. 엄마가 되고나서 자신에게 누군가가 이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준 적이 있는가? 지수가 무얼 먹는지, 무얼 하는지 관심을 보여준 사람이 있었던가. 지수는 피식 웃으면서 얼른 앉으라고 말하며 주문한 메뉴를 이야기하면서 현주의, 현주에 의한, 현주를 위한 메뉴를 주문했음을 어필했다.



역시 내가 지수 너한텐 '알아서 시켜'라고 말 할 수 있다니까. 잘 시켰어.



때마침 메뉴가 나왔다. 하몽과 오렌지를 곁드려 먹으니 입안이 싱그러웠다. 근황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오랜만에 지수는 웃었고, 즐거웠다. 아무생각 없이 떠들면서 상사 이야기, 특이한 동료 이야기, 현주의 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걱정도 잠시 잊어졌다. 현주가 시간이 괜찮으면 디저트 하나 먹고 가자고 했고 지수도 오늘은 원석에게 부탁을 하고 온터라 흔쾌하게 그러자고 했다.




근처 카페에 들어간 현주와 지수는 따뜻한 차를 앞에두고서 아까했던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그러다 현주가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물었다. 지수는 망설였다. 이런 말을 현주에게 해도 되는걸까? 나의 이런 괴로움을 고백해도 되는 걸까? 그동안 지수는 그 누구에게도 말 할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도움을 얻고 싶고 조언을 얻고 싶었지만 자기 가정의 상황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에 가슴에 말을 삼키고 지탰다. 그렇지만 지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그것이 현주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지수는 현주에게 고백했다. 원석의 일, 이후 부부의 상태, 자신의 상태를.





# 원석의 고백


현주야,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간단하게 한 줄로 이야길 하면 오빠가 한 투자로 지금 우리 가정이 몹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거야.



지수는 현주에게 이야길하면서 역시나 자신은 두괄식 인간이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게 뭐라고 이 말을 하는 과정에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순서로 현주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고, 한 번에 이해하고 빠른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지수의 업무스타일은 그랬다. 보고는 언제나 결론을 한문장으로 만들어 먼저 말하고, 이후 그 문장을 뒷받침하는 것들을 우선순위와 사건이 일어난 시간 순서로 배열하고, 결론에 다시 한번 본론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쳤다. 그녀의 보고 스타일을 상사들이 마음에 들어했다. 지수가 불만고객을 응대할 때도 지켜보면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이 무슨 일이고 어떤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고들 했다. 지수는 이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스치는 자신을 보면서 사람의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나도 모르게 오빠가 오피스텔 투자를 했어. 그것도 두 채나. 2022년에 그랬다고 하더라구. 너도 알겠지만 킹십리 그 집 영끌로 마련해서 대출갚으면서 생활하고 있었잖아. 여유자금이 하나도 없었어. 나는 신용대출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어서 그때 취득세랑 이사비용, 가구 구입비 정도만 사용하고 그대로 뒀지. 그건 우리 부부사이에 암묵적인 합의였어. 그건 정말 극한의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오빠는 그걸 이용해서 나와 상의 없이 투자를 했더라구.




음...원석오빠가 그랬단 말이야? 그 착하고 성실한 원칙주의자 원석오빠가?




현주는 놀랐다. 원석과 지수가 사귀기 시작하면서 부터 자주 봐왔다. 원석의 성품을 현주는 알았다.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깊었고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 현실적인 사람. 야망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품이 너른 사람이었다. 지수는 안정지향적인 성향이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좋아했다. 무리한 투자는 지수와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원석이 만약 지수에게 말했다면 아마 지수는 반대했을 것이다. 그런 걸 알고 그런 무리수를 둔걸까?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6화워킹맘의 플레이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