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신년 강연회 소설가 장강명의 차분한 희망
살다 보면 안 좋은 일만 계속 일어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도전하는 일이 번번이 실패할 때,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갑자기 회사를 그만둬야 할 때, 열심히 달려도 부족한데 몸까지 아플 때,...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하지만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나서 되돌아볼 때, 그때는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행운이었고,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뜻하지 않은 불운으로 연결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세바시 신년 강연회에서 소설가 장강명은 전업작가가 되기 전 지독히도 되는 일이 없었던 한 시기를 이야기했다. 그는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전 기자로 11년을 일한 경험이 있다.
기자에게 기사 수정이나 데스크와의 의견 차이는 늘 있기 마련이다. 11년이나 된 고참 기자였음에도 2013년 8월의 어느 날 그는 기자로서의 삶에 회의와 한계를 느끼고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퇴사를 한 후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칩거하며 다음 해 봄까지 두 편의 장편소설을 쓴다. 소설을 써보고 싶어 절박한 심정으로 고군분투해지만 눈여겨보았던 문학상은 상 자체가 없어지고, 원고를 보낸 출판사에서는 그의 원고를 거절한다. 회사를 그만두었던 시점부터 그다음 해 여름이 될 때까지 계획했던 일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소설을 쓰며 살겠다는 꿈은 요원해 보였다. 그즈음 그는 ‘괜히 퇴사를 한 걸까? 그날 내가 좀 참을 걸.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 좋은 일만 계속되는 자신의 불운에 힘들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학상에 응모하려고 썼던 작품은 기대하지 못했던 다른 문학상을 안겨 주었고, 거절당했던 소설은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며,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그는 지독히도 되는 일이 없었던 그 시간을 보내며 가슴에 새긴 단어가 있다고 강연 말미에 이야기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 때때로 인생은 새옹지마임을 깨닫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정해진 운명을 믿는다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인생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 인생은 알 수 없지만 그 알 수 없음 때문에 삶을 사랑하며 희망을 놓지 않는 것.
그걸 우리는 삶의 연륜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른다.
'차분한 희망'
역동적이고 생기 넘치지는 않지만 은근한 내공이 느껴지는 말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자기의 속도를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힘.
부딪히고 넘어져 좌절할지라도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힘.
오랜 시간 공들인 일이 모두 수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낄 때,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일 때, 막 세수를 한 맑은 얼굴로 가만히 돼 내어 본다.
쉽게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가볍게 들뜨지 않으며, 차분하고 겸허하게 나는 내 삶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