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돈을 푸는 것입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의 입에서는 빠짐없이 ‘지원 확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곧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직접 돈을 찔러 넣어주는 방식이지요.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형태는 다양합니다. 현금을 직접 나눠주는 지원금일 수도 있고, 특정 계층을 위한 보조금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해 일자리와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일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은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좌파든 우파든, 권력을 유지하고 표를 지키고자 한다면 결국 돈을 풀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어떤 정치인은 ‘지금 당장’ 풀고, 또 다른 정치인은 ‘천천히’ 푸는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입니다. 결국 정치의 본질에는 표심 확보라는 목적이 자리하고, 돈을 푸는 행위는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돈 풀기의 본질, 결국은 인플레이션
그렇다면 돈을 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화폐 가치의 하락,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입니다. 사람들에게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 소비는 늘어나고, 수요는 자연스럽게 공급을 초과하게 됩니다. 공급이 즉각적으로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격은 오르고, 이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돈을 풀고, 그 결과 물가는 꾸준히 오릅니다. 인플레이션은 숫자를 떠나 현실에서 내 구매력의 문제로 다가오는데요, 전체적으로는 국민의 삶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돈을 푼 만큼 경제 전체의 비용이 증가하고, 이 비용은 결국 국민 모두에게 전가됩니다. 정치인이 권력 유지를 위해 선택한 방식이 중산층과 서민의 가계를 압박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죠.
정치인은 종종 ‘경제 활성화’, ’경기 부양‘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씌우지만, 실상은 본인의 자리 유지를 위한 방법일 뿐입니다. 돈을 풀면 단기적으로는 활기가 돌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물가 상승이라는 부담을 떠안게 되고, 그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집니다.
중산층은 인플레이션의 큰 희생양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희생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중산층입니다. 물가는 매일같이 오르지만, 연봉은 1년에 한 번 협상해서 겨우 인상될까 말까 합니다. 임금 상승 속도는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소비자는 매일 장을 볼 때마다, 대출 이자를 갚을 때마다 체감하는 물가 상승의 압박을 느낍니다.
부유층은 상대적으로 덜 타격을 받습니다.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가가 오를수록 보유한 자산의 가격도 덩달아 오릅니다. 반대로 저소득층은 정부 지원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산층은 자산에서 오는 방어력은 부족하고, 정부 지원에서는 소외되기 쉽습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심화될수록 가장 애매한 위치에 있는 중산층이 가장 크게 무너집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인의 책임 전가입니다. 물가가 오르면 정치인은 그 원인을 기업의 탐욕, 국제 정세, 혹은 특정 사회 집단 탓으로 돌립니다. 정작 본인들이 돈을 풀어 만든 구조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화살을 교묘하게 다른 곳으로 돌려 국민의 시선을 분산시킵니다. 사람들은 진짜 원인을 보지 못하고, 그때그때 제시된 ‘희생양’에 분노를 쏟습니다. 그렇게 현실은 왜곡되고, 문제는 누적됩니다.
정치인은 표를 위해 돈을 풀고, 돈 풀기는 인플레이션을 낳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중산층을 압박하며, 정치인은 그 책임을 회피합니다. 이 단순한 구조가 반복되며 현실 세계는 누적된 왜곡 속에서 돌아갑니다.
우리가 인식해야 할 점은, 정치인의 정책을 그저 단기적인 ‘혜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인의 돈 풀기는 결국 미래의 나에게 떠넘겨질 빚이자, 중산층의 삶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장치입니다. 정치적 선택은 경제적 결과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의 일상 속 물가와 소득의 불균형으로 나타납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진 느낌입니다. 인구가 줄어서 이판사판이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돈을 많이 풀고 미래 세대가 죽든 말든 지금 내 삶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만연합니다. 존엄성과 공존의식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부추기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