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 임대주택을 강제로 포함시키는 정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적이고 서민을 위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요, 좋은 입지는 부자들만 차지해서는 안 되고, 소득이 낮은 계층도 강남과 한강변 같은 핵심 지역에서 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논리는 맞습니다. 한강변은 상급지로 취급 받지만, 소수의 부자들만 누려서는 안되는거니까요.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통해 도시의 균형 발전을 이루고, 계층 간 벽을 허물겠다고 주장합니다. 해외 사례 역시 자주 인용됩니다. 런던이나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도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일정 비율의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고 있음을 들어, 이 제도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방식이 아니라고 강조하지요.
이러한 명분만 놓고 보면 정책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집니다. 사회적 혼합은 단순히 물리적 거주 공간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통합과 형평성이라는 큰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원칙이 실제 사업 구조와 비용 분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하는 부분에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모두를 위한 평등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특정 집단이 그 비용을 홀로 떠안는 모순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조합원에게 떠넘겨진 비용
임대주택은 일반 분양과 달리 수익성이 낮거나 사실상 손실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임대 물량은 시장 가격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공급되거나 장기간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재건축 조합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차이는 고스란히 조합원의 분담금으로 메워집니다. 한강변 재건축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이미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분담금을 감수하고 있는데, 거기에 임대주택이라는 명목의 추가 비용까지 떠안게 되는 구조인 것입니다.
임대주택은 정부가 직접 세금을 들이지 않고도 ‘공공임대 공급’이라는 성과를 얻는 효과를 냅니다. 조합원 입장에서 보면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 비용을 자신들이 대신 지불하는 셈이고, 이는 사실상 세금과 다르지 않은 성격을 띱니다. 다만 국세청 고지서로 오는 게 아니라 분담금 고지서로 오기 때문에 ‘세금’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흔히 ‘보이지 않는 세금’ 혹은 ‘그림자 세금’이라는 표현이 붙습니다. 조합원과 분양자 입장에서는 정부가 복지를 명분 삼아 개발이익을 사실상 강제로 환수하는 꼴이니, 흔히 “삥뜯기”라는 인식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 비싼 임대주택은 누가 들어가서 살게 될까요? 과연 서민이 이 돈을 지불할 여력이 있을까요? 서울 시민들은 한강뷰 임대아파트, 강남 핵심지의 장기전세 아파트에 당첨된 행운아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가족 또는 친구 그리고 집권당원들에게 한강변 임대주택을 선심쓰듯 주지 않겠다는 보장이 없죠. 여기서 이 제도에 가장 중요한 맹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제도가 과연 실질적인 효과를 낼까요? 실제로 한강변 임대주택에 입주한 저소득층 가구는 임대료는 저렴하게 감당할 수 있어도,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하는 관리비나 생활비 부담 때문에 오래 버티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고급주택 관리비는 월 300만원 이상인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임대주택에 50만원 월세 내며 살면서 월 300만원의 관리비를 내는 사람이 서민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과연 누가 이 비싼 임대주택에 들어갈 것인가?
사회주의적 장치와 자본주의적 외피
이 정책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적 재분배 요소를 품고 있습니다.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의무 비율을 정하며, 고급 입지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 일부를 사회적 약자에게 이전하겠다는 사고방식은 사회주의적 평등주의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재산권 자체를 박탈하지는 않으며, 민간 개발을 허용하는 자본주의 틀 안에서 공공성을 억지로 끼워 넣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본주의 속에 사회주의적 장치를 섞어놓은 혼합경제적 실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서는 극히 소수의 상징적 사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혼합이라는 대의명분은 정치적 상징으로 남고, 비용은 특정 집단이 떠안으며, 사회적 약자는 실질적 도움을 얻지 못하는 모순이 생겨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