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어떻게 할래?

또 잡아뗄래?

by Presidio Library

물이 와다다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희뿌연 물방울이 또오오옥 또르르를 하고 떨어졌다. 소리로 보아하건대 욕조에서 콸콸 쓰는 것 같진 않고 '이 정도면 안 새겠지?' 같은 느낌으로 '투르르르륵' 하고 잠그고, '타라랏' 하고 잠그기를 반복했다. 페인트 칠 하고 브러시를 닦는 듯 했다.


S가 물 쓰지 말라고 했는데! 집주인이 자기네 집에서 일하는 업자에게 말 했다고 했는데! 집주인이 그짓말을 하는 것인가, 집 리모델링을 담당하고 있는 부동산 업자가 그짓말을 하고 일을 안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업자가 그냥 의견을 무시하는 것인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일인지.


저녁에 다시 물이 새는 영상을 찍어 이메일 라인에 보냈다. 남편이 좁은 구멍으로 힘껏 팔을 들어올려 찍었는데, 물이 어디서 새는지 딱 보였다.


안녕하세요, 윗층에서 누가 오늘 저녁에 욕조를 사용한 모양인데요(물 튀기는 소리가 들립니다), 물이 또 샜습니다. 물넘김 방지구에서 새는 것 같아요. 새는 게 희뿌연 액체인 것으로 보아 페인트 붓을 씻는 것 같습니다. 내일 검사에 도움이 될 영상을 첨부합니다.


다음 날 들르기로 한 배관공 업체에서 영상이 많이 도움이 된다고 바로 답장이 왔다. 저녁이니 매니지먼트 담당자 S는 내일즈음 답장하겠지.






다음날,


'똑똑똑'

약속한 시간에 두 명의 배관공이 왔다. 한 명은 숙련공인 듯 하고, 다른 한 명은 도제식으로 배우는 조수인 듯 했다. 아직 윗 층에는 안 가봤고 우리집을 먼저 들렀단다.


앞서 6월에 먼저 왔던 배관공들은 누수를 재현해내기까지 (윗층은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떼고 있지만) 다섯 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그 때는 우리도 이게 윗집인지 아닌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미 보내준 동영상도 있고, '욕조 물넘김방지/수도꼭지/혹은 그 근처의 타일' 이라는 타겟이 좁혀져 있었기 때문에, 윗 집을 왔다갔다 했더라도 한 두 시간 만에 금방 끝이 났다. 직원은 윗집 물넘김방지구가 원인인 것 같다고 하고 금새 떠났다. 그리고 떠나자마자 이메일 라인에 배관공 회사로부터 새 이메일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결과 리포트를 첨부합니다. 윗층이 욕조 수리를 끝내면, 샤워벨브와 물넘김 방지구 견적을 승인한 뒤 우리와 수리 예약을 잡아주십시오.


보고서-

우리 직원은 아랫층(우리집) 복도화장실 천장의 팬넬을 통해 안쪽을 볼 수 있었음. 직원은 물이 새는 것이 물넘김 방지구에서 떨어져 흐른다는 것을 확정한다고 진술함.

윗집은 현재 비어있고 리모델링 중인데, 페인트 칠하는 사람들이 페인트 브러시를 씻는다고 욕조를 사용해 왔고 그 물이 아랫층(우리집) 화장실로 떨어지고 있었음.

우리 직원은 윗집 부동산 업자 Charls(가명), -풀네임과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에게 구두로 이 사실을 전달했는데, 그는 그 집의 샤워밸브 등이 낡아서 새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대답함. Charls는 욕조에 에폭시를 칠해서 고쳐야 하고 그 때 어차피 밸브를 떼어내야 하니, 그 때 까지 이 누수에 대한 수리를 잠시 멈춰달라고 요구함.

우리 직원은 이 누수에 대한 부품 교체 비용 견적을 윗층에게 써 주었음 (승인 기다리는 중). 위층이 에푹시를 끝내는 즉시 우리가 누수 부품 교체를 시작할 수 있음.

샤워밸브 교체 -$1450
물넘침방지구 교체 - $795



거봐, 이 똥멍청이들이. 이번에도 윗집이라고 하잖아! 타일이 아니고 물넘침방지구지만, 어쨌든 지들 탓인 것이다.


여기에 웃긴 포인트는 무려 두 가지다.

첫째는 이번에는 보고서에, 배관공 직원이 확실히 대화를 했다며 윗집 부동산업자의 풀네임, 전화번호, 이메일 번호까지 또렷하게 적어놨다. 왜냐면 저번에 자기는 배관공직원한테 아무것도 들은 적이 없다고 잡아 뗐거든.


두번째는 '리모델링'을 한다면서 욕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욕조에 '에폭시'를 칠한다는 점이다. 그래, 사실 미국에서 욕조에 에폭시 칠하는 건 흔하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에폭시가 칠해진 욕조를 보신 분이 있나 모르겠는데, 엄청 잘 해 놓지 않는 이상은 영 좋은 생각이 못된다. '욕조에 방수 페인트 칠해 놓은 느낌' 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말이 리모델링이지, 어떻게든 최저의 비용으로 발악을 해보는 중인 느낌이 났다. 앞서 몇 달 전에는 그 정신나간 부동산 업자가 타일에서 물이 새는 거면 에폭시를 칠할 거니까 괜찮다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S가 곧 대화에 이메일을 더했다.


보고서 고마워요.

그래서 확실히 어떤 부분이 누수의 원인이었던 것이죠? (배관공에게 묻는 것)

그리고 윗집 집주인씨, 전에 분명히 이 누수 문제가 해결이 될 때 까지 욕조를 사용하면 안된다고(CANNOT 이라고 대문자로 씀. 강조할 때, 혹은 구어체로는 소리지를 때 주로 씀) 얘기했었는데요. 당신의 업자들이 아직도 쓰는 것 같군요. 일을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누수가 해결될 때 까지 물을 쓰지 말라고 확정해 주세요


그래! 물 쓰지 말라니까 좀!


배관공에서 답장이 또 왔다.


"윗집이 페인트 브러시를 씻을 떄 그 물이 튀어서 물넘침 방지구로 들어갔고, 그게 아래층에 누수를 초래했다" 며, 아랫집 욕조 사진을 찍어 깜찍하게 물까지 그려서 첨부해서 보내줬다. 사진을 그대로 쓸 순 없으니 휴대폰에 손가락으로 대충 그리면 다음과 같다.


저 위에 세 개의 레버가 무언가 묻는다면 아마 두 개는 각 각 찬 물, 뜨거운 물 레버일 것이고, 중간은 모르겠다. 아마 샤워탭과 수도꼭지 물 나오게 바꾸는 건가? 아이, 미국에서도 이제 저런 세 가지 레버는 별로 흔하지 않다. 찾아보니 어디에는 이제는 법규에 적합하지 않다(not-up-to-code)라고도 써 있다. 적어도 20년 이상은 한 번도 고친 적이 없다는 뜻이다. 물넘침 방지구도 저렇게 생긴 건 본 지 한참됐다. 저 정도 썼으면 물이 새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렇게 자신해 왔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저 웃겼다. 아니 고치는 비용이 몇 천만원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자기네 리모델링 한다고 이미 고용한 사람들 써서 고쳤으면 저거보다 훨씬 저렴했을 것을. 도대체, 왜?



자, 이제는 어떻게 할래? 니 요청에 의해서 빌딩 측에서 배관공을 또 불렀고, 이 배관공도 너네 집 욕조가 문제라고 하는데? 또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뗄거야? 또 배관공 탓 하고 그 사람들이 문제를 지어냈다고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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