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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Sep 24. 2023

가족들 다 떼놓고 신나게 놀아야지

유부녀의 진짜 자유

유부녀니 애엄마니 하는 단어들은 어딘지 사람을 억척스럽거나 고루해 보이도록 한다. 제3의 성이라는 아줌마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음 그건 너무 별로니까 PASS. 단어를 조금 바꿔 결혼한 여성이나 아이 어머니라는 표현으로 해보자. 중년을 향하는 나이와 외모에 맞는 성숙함이 단전에서부터 차올라 누구에게나 고상해 보여야 할 것 같은데 해당사항 없으니 이것도  PASS.


뭐야! 남편과 아이를 부정하고 싶은 거야? 물론 그렇지는 않다. 다만 변화한 내 역할과 위치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좀 늦을 뿐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상태를 무슨 말로 해야 내 인생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를 책임지거나 챙겨야 할 일이 없었다. 강아지를 가족같이 키워보기는 했지만 다른 차원이다. 출산의 기본값은 새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챙기지 못하는 나의 취약점이다. 태초의 인간이 이렇게나 약해 빠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기 다루듯이 라는 말을 대충 넘치기 직전의 국그릇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정도의 조심성으로 이해했었다. 실제 신생아를 키워보니 행여 사소한 실수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할까 끌어안고 놓지 못한 채 먹지도 싸지도 자지도 못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작 국그릇 따위와 비견할 수 없을 일이었다. 내 선택으로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거대 권력으로부터 일생일대의 임무를 부여받은 느낌이었다. 세상 둘도 없을 중압감이다.


연애를 할 때만 해도 세상의 중심이 오로지 우리였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던 남자친구(현 남편) 덕분에 겁 많은 나는 혼자서는 하지 못할 많은 것들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었다. 가정을 이루고 보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심엔 새롭게 엮인 가족관계가 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에 계신 남편의 작은 이모님 께서 말기 암으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살 날이 채 몇 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소식에 곧바로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 어머니와 큰 이모님과 우리까지 모두 넷이서 영국으로 향했다. 7일 중 3일은 작은 이모님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남은 4일은 런던에 머물렀다. 시가의 어른들과 함께하는 여행에 내 의견은 있을 수 없었다. 그저 긍정의 대답만 하면서 어른들의 취향과 체력에 맞게 움직였다. 물론 여행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무려 런던 한복판에 서있게 됐는데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니 따분한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 아쉬움이 많았다. 앞으로의 모든 여행은 꼭 우리끼리 하겠다고 다짐했다.
일과 육아에 꼼짝없이 가게와 집만 오가야 했을 땐 남편과 둘이 심야영화를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늦도록 밤거리를 거닐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기 물건들로 바리바리 싸놓은 커다란 짐 말고 작은 핸드백에 핸드폰과 수정용 화장품만 덜렁덜렁 넣어 다니던 과거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따뜻한 봄날의 피크닉, 아이를 잡으러 다니느라 강의실을 몰래 빠져나오듯 구부정한 자세로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고 나만의 보폭으로 유유자적 걷고 싶다. 꼭 기회를 만들어 아이 없는 시간을 누려보겠다는 심산이 커져만 갔다.



육아를 시작한 지 45개월쯤 지나자 기회가 왔다. 오랜만의 서울 방문에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친구들과 약속도 하고 남편과 심야영화도 볼 짬이 생겼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온전한 자유를 드디어 찾은 것이다. 친구들을 만날 땐 결혼 전의 내가 되면 되고 남편과 심야영화를 볼 땐 출산 전의 내가 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머릿속엔 온통 가족 생각뿐이다. 친구들과 함께하며 틈틈이 아이의 안부가 궁금하다. 나는 지금 이런 음식을 먹고 있는데 아이는 저녁으로 뭘 먹었을까? 지금 난 이런 이야기들로 즐거운데 아이는 어떤 신나는 놀이를 하고 있을까? 종알종알 떠드는 귀여운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휴일을 맞아 명동으로 가시겠다는 시어머니를 내려 드리려고 함께 차를 탔다. 매번 함께 했으니 이번만큼은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했는데 벌써부터 신경 쓰이고 우리끼리만 가려니 영 마음이 불편하다. “저희 한남동 갈 건데 혼자 명동 가지 마시고 저희랑 같이 가세요.”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진짜 자유는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할 때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함께함으로써 맞닥뜨리는 불특정한 상황들이 반복될지라도 아이는 눈앞에 있어야 안심이 되고 부모님이 외롭지 않아야 마음이 놓인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만 같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어느새 나의 뿌리가 되어있던 것이다. 유부녀도 애엄마도 아줌마도 좋다. 오직 중요한 것은 호칭에 따르는 의미나 뉘앙스가 아니라 가족의 안녕과 행복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만이 온전히 나를 자유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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