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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Oct 20. 2023

지금 내게 필요한 능력

지속되는 경기 침체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코로나 시기만 해도 평균이라는 것이 존재하던 매출 그래프가 끝을 모르고 위아래로 널뛰기를 하며 멘탈을 지배하고 있다. 어제는 만석이던 매장이 오늘은 텅텅 비어있고 어제는 가득하던 예약이 내일은 하나도 없는 식이다. 매장이 분주할 때에는 ‘그래 아무리 경기 침체라고 해도 지난 시간동아 해온 게 있는데..’라고 생각하다가 매장 안은 물론이고 가게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을 때에는 ‘세상에서 우리 존재가 삭제된 것 같은데? 어제 있던 사람들은 신기루였나?’라고 생각하게 한다. 경력이 쌓이며 케이크 만드는 기술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니 이제는 경기 침체에 뒷덜미를 잡혔다.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벽이다.


어제 밤늦도록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최근 몇 개월의 수입과 지출을 따져보고 정확히 망한 기분을 느꼈다. “우리 이렇게 해서는 이 일로 아기 키우면서 먹고살기 힘들겠는데?”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졌다. 별다른 기술도 없고, 직장에서의 경력도 없고, 우린 BTS나 뉴진스도 아니고, 상속이 예정된 조상 대대로의 자산도 없고 이제야 이 일이 몸에 좀 익었을 뿐인데 이게 아니라고 하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은 잠깐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암전이 됐다. 아.. 우리 어떻게 하냐.. 뭐 해 먹고 사냐.. 아.. 아아.. 뭐 대충 이러다가 잠들었다.


어김없이 아침은 왔고 아이는 신나게 어린이집으로 등원하고 뒷마당에 자리를 잡은 얼룩이(고양이)와 다섯 마리의 손바닥만 한 새끼들이 밥 달라고 아우성이다. 얼룩이 저건 번식력도 좋다. 벌써 몇 번째 출산인지 우리는 세는것도 포기했다. ‘고양이가 지구에서 제일 마음 편한 것 같아’ 남편이 말한다. ‘그건 우리가 여기서 밥을 주니까 그런 거지 길 위에서 매 순간이 투쟁이야. 우리 처지랑 똑같아. 고양이나 우리나 끼리끼리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시에 에이씨를 내뱉으며 일과를 시작했다. 잠시 후 우리의 정서적 동료이자 이웃이자 여행작가인 정작가님이 방문하셨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시콜콜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아.. 저희 어제 이런저런 어쩌고 저쩌고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잤어요. 인생 정말 쉽지 않네요.
저는 새벽에 잠이 안 와서 혼자 있다가 저도 모르게 입에서 ㅆㅂ이라는 말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더라고요. 마침 옆을 지나가던 와이프가 늦은 시간에 잠은 안 자고 왜 미친 사람처럼 욕을 하냐고 한소리 들었습니다. 으하하하하
하하하하 같은 거 느끼고 계셨구나 으하하하
그리고 어제는 둘째 아들이 사과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마트에 갔거든요. 그냥도 아니고 너무 먹고 싶다고 하니 아빠로서 아들 사과하나 못 사주겠나 싶어서 봉지사과 하나랑 우유 두 팩이랑 계란 한 판을 들고 나오는데 4만 원이 넘는 거예요. 이건 우리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니겠어요?




대화를 마치고 생각해 봤다. 세상이 미쳤다고 한들 모두가 힘들다고 한들 위안이 될 수 없는 이 시점에 좀 더 나은 현재를 위해 나에게 필요한 능력이 무엇일까.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반전 있는 삶을 살 수 없다면 스스로를 좀 믿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비하하려는 성향이 있다. 지금 같이 무기력함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여러 부정적인 생각들이 급류가 되어 정신을 뒤흔들고 감정을 깊고 깊은 지하세계로 끌고 내려간다. 나는 이만큼이나 무능력하고 상황은 이만큼이나 절망적인데 딱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없네? 우주먼지로 존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난 왜 나로 태어난 거지? 내가 저 얼룩이 새끼일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도대체 왜 나인거지?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경적 소리에 창 밖을 내다보니 어린이집 하원차량이 도착했다. 두 눈을 반짝이며 어린이 집에서 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주방의 모든 냉장고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 아이의 천진함이 무거운 생각의 고리를 단숨에 끊어낸다. 즐거운 일들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말을 하고 집중해서 밥을 먹다가 똥 마렵다며 화장실로 달려가 얼굴을 찡그리며 또 집중해서 똥 싸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이토록 현재에 충실한 존재라니.


앞날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금 같은 시기가 오면 잠시 생각을 멈출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프면 먹고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가면서 하루만큼 할 수 있는 것들에 몰두하는 일상. 앞날은 운명에 맡겨보기로 하고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내면의 나를 좀 믿고 기다려주는 것도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능력 중 하나가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에 휘둘리고 불안한 현실에 쉽사리 무너지고 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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