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세습

대니얼 마코비츠, 능력주의 민낯을 직시하는 인문학도서

by eunjoo


프랑스어로 선택된 사람들, 정예, 사회 중추 등을 뜻하는 엘리트(elite)는 대중(마스, mass)과는 대립되는 말로, 엘리트 집단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영역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대중을 지배하고 지도하는 지도자로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엘리트는 현대에 이르러, 자신들의 지식과 능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자녀들에게 대물림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데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자 사법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는 사회가 오직 엘리트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조작되고 있다는 견해를 펼칩니다. 오랜 시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져 온 그는 ‘진정한 평등’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불평등은 능력대로 공정하게 보상받는다고 외치는 ‘능력주의(meritocracy)’에서 기인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능력주의’란 말의 라틴어 어원은 ‘mereo’로, “일해서 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능력주의는 이와 같은 라틴어의 어원을 인용하며 마치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만을 인정하는 공정하고 건전하며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철학으로 포장되어 왔습니다. 마코비츠는 저서를 통해 능력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는데요.

그의 저서 ≪엘리트 세습(The meritocracy trap)≫(세종, 2020)을 소개합니다.

<엘리트 세습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사회학 비평서로, 그는 능력주의의 민낯을 보여줌으로써 엘리트 집단의 자성을 촉구하고 독자들이 직면한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현명함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를 내비치는데요. 능력주의에 물들어 가는 집단을 향한 도덕적 비난을 벗어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정치적 인식의 개선을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그 또한 대다수 전문직 부모와 일류대학을 나온 그들의 자녀들이 거쳐 가는 과정을 밟으며 그가 속한 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이라 불리며 살고 있는데요. 엘리트 집단이 사회를 독점하며 누리는 모든 성공과 지위는 엘리트 교육기관이 제공한 교육과 일자리 덕분이라고 주장하며,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의 현실이라고 강조합니다.

“능력주의 시대 엘리트들은 갈수록 자녀 교육에 재산뿐 아니라 기량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추세다. 부유층 어린이들은 그런 교육을 흡수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부유한 부모를 둔 어린이들은 자그마치 일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에 교육 프로그램 때문에 혜택을 얻고 고통을 받는다.”(p.23)

2000년대 들어서 정점에 도달한 능력주의는 중산층의 빈곤화와 더불어 엘리트 집단의 파멸을 가져오고 있는 추세로, 더 이상 능력주의는 엘리트 계층에게 특혜를 부여하지 못한다고 피력합니다. 다른 국가에 비해 능력주의에 의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미국의 예를 들어 현실을 살펴보는데요. 엘리트 사이에 발생하는 근로 소득 격차입니다.

“미국에서는 상위 1%의 가구가 전체 소득의 20%를, 상위 0.1%의 가구가 전체 소득의 10%를 차지한다. 100가구당 가장 부유한 가구가 평균 소득자 20명분만큼, 1,000가구당 가장 부유한 가구가 평균 소득자 100명분만큼의 소득을 얻는다는 뜻이다. ”(p.61)

20세기 중반의 엘리트와 비교할 때 현재 엘리트의 여가 시간은 줄어든 반면 노동 시간이 현저하게 늘어났는데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너무 바쁘다는 말은 부유층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대답이 되었다고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중산층의 수입으로 부자가 되기란 어렵지만 최상위 연봉이 100만 달러, 500만 달러에 이르는 최상위 엘리트에게는 예외인데요.

심지어 1,000만 달러, 10억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이 미국 최상위 엘리트 집단의 현실이라고 밝히는데요. 우리나라 최상위 엘리트의 연봉도 미국의 최상위 엘리트의 연봉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실상입니다.

이렇듯 능력주의는 경제력을 갖춘 엘리트 집단을 탄생시켰고, 엘리트 집단은 새로운 귀족제도 ‘엘리트 세습’을 탄생시켰습니다. 20세기 중반이 끝나갈 즈음, 기업은 19세기 모형으로 돌아왔지만 21세기 기술에 맞게 최신식으로 모형을 수정하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열심히 부르짖고 있는 혁신, 혁신의 시대가 도래 했는데요. 혁신은 조직에서 중간 숙련 근로자를 없애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미국 통신회사 AT&T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관리자 대 비관리자의 비율이 1대 5에서 1대 30으로 줄인다는 목표로, 구조조정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에는 통틀어 2배 가까운 비율로 감원되었다. 이런 과정은 오늘날에도 진행 중이다. 이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경영 컨설팅 기업은 대놓고 (중간)관리자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방향을 추구한다.”(p.306)

엘리트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엘리트로 키워서 사회로 내보내고, 이들은 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더불어 그로 인해 발생한 부를 축적합니다. 이와 같이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가중시켰고, 불평등은 대다수의 대중을 소외시켰는데요. 소외감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습니다.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능력주의의 민낯을 여지없이 폭로한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가 이로 인한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파괴적이며 파멸을 초래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요. “언제까지 능력주의의 민낯을 외면하며 나만 우리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저자가 던지는 화두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직면한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by eunjoo [브런치 연재북, 엘리트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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