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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걸 알아, 그래도 함께 겪을게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고

by eunjoo


딸아이가 주말에 학원 강의를 나가면서 토요일 점심을 혼자 먹게 될 때가 있다. 혼자 밥 먹기는 왠지 쓸쓸해서 요즘 유행한다는 밥 친구를 찾기 위해 넷플릭스 방영물을 뒤지다가 15부작 드라마 시리즈 ≪은중과 상연≫을 발견했다. 김고은 배우와 박지현 배우가 나오는 시리즈로, 연기력이나 모든 면에서 믿고 보는 배우들이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은중과 상연은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하면서도 선망과 원망 사이에서 질투와 오해로 얽혀 오랜 세월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20대와 30대를 반목으로 흘려보내고 상연이 은중에게 연락을 하면서 40대 초반이 된 두 사람은 재회한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다짜고짜 상연은 은중에게 자신의 조력사 동반자로 스위스에 함께 가달라는 부탁을 한다.


영화제작자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줄만 알았던 상연은 병을 얻어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처지였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은중은 자리를 박차고 가버리지만, 우연히 상연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회복 가능성이 제로라는 의사의 말에 결국 스위스행을 승낙한다. 자신의 결심을 밝히면서 은중이 상연에게 하는 대사가 있다.


“답이 없는 걸 알아, 그래도 너의 시간을 함께 겪을게.”


답이 없는 걸 알지만, 친구가 겪는 고통을 함께 하겠다고 담담히 말하는 은중의 말이 내 귓가에서 떠나지 못하고 지금도 맴돈다. 은중의 그 한마디에 담긴 마음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한 그 시간의 끝에 홀로 남게 된 지난날 내 처지가, 떠난 자리에 홀로 돌아와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한없이 쓸쓸하고 처량한 삶을 이어가야 할 은중의 처지와 겹쳐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사랑이었을까? 도리였을까? 그때 내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지, 답이 없는 걸 알지만,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마음, 기꺼이 가고 싶은 마음,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은중과 상연≫은 내게 지난 시간과 소중한 사람의 치유 불가능한 아픔을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돌아보게 했다. 100세 시대라며 환갑잔치는 사치라는 시대에 오십 대 중반인 엄마를 영영 잃게 된다는 현실 앞에 뭐든 해야만 했다.


스위스에 가서도 상연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은중이처럼, 엄마가 하루라도 더 내 곁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엄마에게 애써 거짓 희망을 심어보려고 했다. 상연이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태연한 척하는 은중이처럼, 나 또한 그런 마음에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낼 것처럼 행동했다.


그게 순수한 사랑이든, 태산 같은 은혜를 베푼 부모에 대한 자식 된 도리든, 의무이든 안쓰러움이든. 확실한 건 양쪽 모두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고 내 행동으로 인해, 혹시 만에 하나라도 운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실낱같은 희망이 존재한다는 거다. 존재의 끝이 보이는 그 시간을 함께 하는 그 마음은 어떤 말들로 불리든,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마음이라고 단언한다.


상연이를 보내고 홀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오래 칩거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쳐다보지 못한 은중이처럼, 아주 오랫동안 내 안으로 숨어들었고 엄마가 살아있는 자식 같이 행동했다. 그렇게 하면, 엄마의 부재가 현실이 아니게 되기라도 하는 냥. 엄마가 떠난 지 20년 세월이 흘렀지만, 온전히 나눈 마지막 시간들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와 같이 희망 한 가닥 찾아볼 수 없는 비슷한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더라도,


“그래도 너의 시간을 함께 겪을게.”라고 할 것이다. 함께 한 그 시간은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쌓는 일이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 마음을 꺼내보며 그리움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덜 후회하는 삶을 위해 기꺼이 그 선택을 다시 할 것 같다.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 제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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