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쓰기 이유가 이래도 괜찮지요

by eunjoo


생을 다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영화가 있습니다. 리 언크리치 감독이 만든 영화 <코코>(2018,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입니다. 주인공인 열두 살 미구엘은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기리는 ‘망자의 날’에 그들이 살고 있는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미구엘은 그곳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놀랍고도 경이로운 경험을 합니다. 그곳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살아 있는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잊히는 거란 사실을 발견하는데요.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질 때 진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영화 속 ‘죽은 자들의 세상’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동안 사느라 바빠서 힘들어서 이런저런 핑계로 엄마 산소를 자주 찾아가지 못한 죄스러움이 앞서,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도 쉽게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엄마가 그쪽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란 꿈같은 희망을 간직하며 엄마 사진을 좀 더 자주 들여다 보고 더 오래 엄마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엄마에 대한 기억을 할 수 있는 한 오래 간직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을 되짚으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글은 내 기억보다 오래 남아 우리 엄마를 내 곁에서 다시 살아가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일기를 쓰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합니다. 딸과 제가 그렇듯이,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그곳에서 올 추석에 모녀가 모여 하하 호호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송편을 만들었을까 하는.


엄마와 다시 만날 때가 오겠지요. 나이 든 내 모습에 못 알아볼지도 모른단 기우에, 열심히 필력을 다져서 엄마에 관한 책을 한 권 써야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내가 쓴 책 한 권 가져가서 삼십 대였던 딸이 당신의 바람처럼 오래 이곳에서 잘 살다 당신보다 더 나이가 들어 찾아왔다고 기쁘게 말할 수 있음 좋겠거든요.


이십 년이 훌쩍 지나도 엄마 생각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퍼내도 퍼내도 그리움이란 녀석은 끝이 없는 듯합니다. 글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진하디 진한 이 그리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지, 글쓰기란 여전히 어렵고 버겁지만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날에 다정한 포옹을 생각하며 오늘도 내 삶을 기록하고 나누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