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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체 Oct 27. 2022

식물성 인간

철없는 시절을 건너간다

꽃이어, 허망한 삶이어. 빛나거라, 어쨌거나 빛나거라.

식물성 인간




철없는

시절을 건너간다


철없이

가을 한가운데

철쭉이 피었어요.

어쩌자는 겐지 물어보려

하염없이 보는 수밖에요. 한참 보았어요,

말할 수 없이 길고 먼 사연 있다는 듯

하늘 향해 꼿꼿이 허멍허멍 죽은 듯 솟은 꽃.


낡고 닳은 저 서걱이는 줄기 대궁과 잎사귀들이

홀로 무색하게 피어오른 꽃에게 힘없이 오롯이

들으라는 건지 아닌지 나지막이 말하고 있어요.


꽃이어,

허망한 삶이어.

빛나거라, 어쨌거나 빛나거라.


살아있으라,

허망한 이어. 

빛나거라, 어쨌거나  빛나거라. 

 

더러

빚진 채 살아있어요. 

모르는 꽃들도 하늘도 바람도 구름도

저절로 가는지 속으로 울음 삼키며 멎으며

시절에 빚진 채 저는

마저 건너가고 있어요.


고구마

좁은 창문 그 볕의 쓸모가 되어

뽀오얀 줄기와 잎새 올리고 올리고 있어요.

밀어 올리고 숨 돌리고 다시 밀어 올리다

한 뼘 두 뼘 키가 자라는 나를 보아요.

우리는 어디에서 온 걸까. 찬란한 뒤늦은 생이여.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철쭉 사라지고 다시 진짜  피어오는 월동越冬

땅에 묻힌 어둠의 지평선 훑으며 뿌리와 씨알

키우고 두터워지는 고구마의 어둠과 저장과 흙들.


그 세상에 닿고

그 세상을 넘고

그 세상을 사는 것


그대는 홀로 멀리 있고

꽃도 잎새도 보랏빛 줄기도 사그라드는 밤


보고픈 시절

철없이 피어난 느닷없는 꽃처럼

밤새 한 움큼씩 솟아난 고구마의 암흑처럼


시절을 건너는 식물 하나 되어

그대를 보내고도 저는 또 이 가을 맞고 있어요.

어디서 들리는 머언 별 지구를 돌아가는 안부

그 목소리 들으며 이 가을 살아있어요.


그대도 고이 잘 지내고 있어요.

꽃은 지고 잎새는 오르고 별들은 돌아가고

어쨌거나 그런 시절 지나고 있어요.

그대도 고이 잘 지내고 있어요.

가을은 앞서 달리고 바람도 사막도 무덤도

식물의 온기로 살아 있으니 숨 쉰다 하니

그대도 고이 잘 지내요..



     (20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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