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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May 08. 2018

이주노동자가 카네이션 바구니를 보고 물었다

아직도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이주노동자로 사는 아이들

캄보디아에서 온 판나와 두엉차이는 쉼터에서 만나 단짝이 된 사이다. 농업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둘은 작년 겨울에 처음 만났다. 일하던 농장에서 일감이 없다고 해고되었을 때였다. 한 달 넘게 일자리를 찾던 둘은 판나가 먼저 참나물 농장에 취직하고, 같은 고용주가 운영하는 다른 농장에 두엉차이가 취직하면서 거의 동시에 쉼터를 떠났었다. 


둘은 같은 고용주 밑에서 일했지만 일터가 다른 비닐하우스 안에 들여놓은 컨테이너에서 살았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없었다.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묻던 둘이 5월 연휴를 맞아 다시 만났다. 계절이 바뀌면서 농장이 한가해지자 사장은 일을 시작할 때까지 밖에 나가도 된다고 했다. 월 2회 휴무를 약속받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마저 보장받지 못하기도 했던 두 사람은 뜻하지 않게 무급휴가를 얻은 셈이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염색이었다. 평소 멋 내기에 관심이 많았던 두엉차이를 위해 판나가 먼저 손을 걷어붙였다. 비닐하우스에서 쓰던 비닐을 어깨에 두른 후, 염색약을 골고루 묻히는 작업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캄보디아 남자가 부러운 듯이 뭐라고 하자, 둘은 깔깔댔다. 


“돈 조금, 이렇게~~”


돈이 없어서 이렇게 염색한다고 하는 건지, 돈이 덜 든다고 자랑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참 멋 부릴 나이의 두 사람은 생글생글 젊음 그 자체다. 


연휴라고 호사를 누리는 것도 아니고, 농장에 할 일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쉼터를 이용하고 있는 둘은 맘 편할 처지는 아니다. 그래도 아직은 웃음이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맘 편한 처지는 아닐 텐데, 아직은 멋 낼 기운이 남아도는 젊은이들이다.


이 날, 저녁 늦게 판나에게서 사진이 첨부된 문자가 왔다. 사진은 길거리에 놓인 수북한 카네이션 바구니였다.

 

“오늘, 꽃 많아요.”


어버이날에 대해 설명해 줬다. 둘은 가정사가 비슷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태국으로 이주노동을 떠난 후 맞대면한 지 십 년이 넘은 엄마…둘은 부모에게서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리움과 원망만 있을 뿐이다. 우리 딸아이와 비슷한 연배인 둘에게 어버이날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나를 ‘파파’라고 부른다. 내 눈에 둘은 아직 부모 사랑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이다. 연휴라고 해 준 게 없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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