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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Sep 27. 2020

억새의 침묵

제주 억새밭에서

옛 전설은 다 암직한

오름 들판에

바람부는 날이면


가을이 털린다


가만 가만 불어도

움추리는 가녀린 몸짓에

떠오르는 물음

무엇이 그를 억세게 만들었을까


말발굽에 짓밟혀 억세졌을까

전설 속 오름

몸서리친 역사에 질렸을까


답이 없다


세월 만난 억새는

하늬바람인들 부러지랴만

실바람에도 엄살부리며

가녀린 몸이 억세진 이유를

도통 말하지 않아

말테우리 없는

조랑말이 귀찮기만한 지

연신 손을 내젓는구나


시작노트

*말테우리: 조랑말 방목을 책임지던 목동을 이르는 제주방언

해마다 제주 중산간은 눈발처럼 날리는 억새꽃에 눈이 가릴 정도로 그 풍광이 여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들판은 몽골 군대가 제국의 군마를 기르며 백성들을 약탈했던 역사의 현장이요, 4.3 당시에는 수많은 학살이 벌어졌던 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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